즐겁게 살아가는 중년 삶의 이야기

골프기사이야기

[모녀 스타 데이트] 조윤지·조혜정

惟石정순삼 2010. 8. 7. 12:13

볼빅-라일앤스코트서 생애 처음 우승한 조윤지, 이달 말 데뷔전 앞둔 프로 첫 여성 감독 조혜정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타이밍이 절묘했다. 5일 경기도 이천 LG인화원 체육관에서 여자배구 GS칼텍스 조혜정 감독을 만났다. 지난 4월 국내 프로구단 사상 첫 여성 감독이 된 그는 데뷔전인 KOVO컵(8월 28일∼9월 5일)을 앞두고 있었다. 인터뷰 중 프로골퍼인 두 딸 조윤희(28)·윤지(19) 얘기가 나왔다. 둘은 KLPGA투어 볼빅-라일앤스코트 J골프 시리즈 2라운드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었다. “둘 중 한 명이 우승하면 모녀가 나란히 지면을 장식하겠네요” 했더니 조 감독은 “희망사항이죠”라며 웃었다. 그런데 둘째 윤지가 6일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6개를 낚으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모녀 스타 데이트’는 이렇게 이뤄졌다.

엄마, 훈련 고통 즐기라던 말씀 알 것 같아요

조윤지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우승 트로피에 입맞춤하고 있다. 지난해 2부 투어 상금왕이었던 조윤지는 이 대회 우승상금 8000만원을 보태 시즌 상금랭킹 7위(1억4100만원)로 뛰어올랐다. [횡성=연합뉴스]
어머니는 딸을 강하게 키웠다. “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훈련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혹독한 승부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작은 새’ 조혜정(56)씨. 프로골퍼가 된 딸 조윤지(한솔·사진)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 하루 500개의 볼을 치고 300번 퍼팅 연습을 해도 마냥 즐거웠다.

결과는 달콤했다. 올해 KLPGA 투어에 뛰어든 조윤지는 시즌 10번째 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또 한 명의 대형 신예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6일 강원도 횡성군 청우골프장(파72)에서 열린 볼빅-라일앤스코트 여자오픈 최종 3라운드. 선두와 1타 차 단독 2위로 출발한 조윤지는 보기 없이 6타를 줄이며 합계 14언더파로 양수진(19·넵스·10언더파)을 무려 4타 차로 꺾고 우승했다. 우승상금 8000만원과 한우 송아지(300만원 상당)도 그의 차지였다.

지난해 2부 투어 상금왕에 오르며 주목받았던 조윤지는 야구인 조창수(60·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대행)씨와 배구인 조혜정씨의 딸이자 KLPGA 투어에서 함께 뛰는 조윤희(토마토저축은행)의 동생이다.

‘스포츠 가족’의 축제 마당이었다. 1시간20분 먼저 경기를 끝낸 언니 윤희(4언더파 공동 17위)는 동생을 응원하기 위해 코스를 되짚어 뛰어갔다. 조윤희는 “윤지가 15번 홀에 있더라고요. 그런데 16, 17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는 거 있죠.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어요”라고 말했다. 조윤지는 “언니의 응원하는 모습에 더 힘이 났어요”라고 했다.

동생보다 8년 일찍 프로무대에 데뷔했지만 아직 우승이 없는 조윤희. 그는 동생이 18번 홀에서 파 퍼팅을 성공시키며 우승을 확정 짓자 그린으로 뛰어가 동생을 끌어안았다. 자매의 뜨거운 포옹에 갤러리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버지도 작은딸의 우승을 지켜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조씨는 작년 하반기부터 큰딸의 캐디를 자처했지만 우승을 합작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첫날과 둘째 날은 큰딸의 골프백을 멨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윤지를 응원하세요”라는 큰딸의 권유에 백을 메지 않았다.

조씨는 “아침에 윤지에게 ‘페이스를 잃지 마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막상 딸이 선두로 나서니 내가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평소 어떤 조언을 했느냐는 물음에 그는 “내가 운동선수 출신이어서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골프를 사랑하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최종 라운드는 단독선두로 출발한 유소연(20·하이마트)에게 유리한 분위기였다. 통산 6승에다 올해 1승이 있는 유소연이 챔피언 조에서 루키 조윤지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유소연은 2타를 잃어 5위에 그친 반면 조윤지는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조윤희는 이런 동생에 대해 “아빠의 느긋함과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닮았다. 그러면서도 도전적이다”고 귀띔했다. 조윤지는 “언니는 겉과 속이 똑같은 토마토 같다. 엄마처럼 모든 걸 다 챙겨준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어머니로부터 ‘행복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받은 조윤지는 “부러움을 받는 선수보다 존경받는 선수가 되라는 엄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다”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횡성=최창호 기자

조윤지 & 가족 ● 출생=서울 잠실 ● 키=1m68㎝ ● 혈액형=AB형 ● 학교=육민관중·고-건국대 1년 재학 ● 가족=아버지 조창수(야구인), 어머니 조혜정(배구인), 언니 윤희(프로골퍼) ● 별명=조포스(친구들이 힘이 느껴진다며) ● 취미=춤추기 ● 이상형=유머감각과 센스 있는 사람 ● 좋아하는 음식=횡성 한우(현재 강원도 문막에 살고 있다) ● 부상으로 받은 송아지는=문막의 아는 한우 농가에 위탁해 키울 생각 ● 가족 중 누가 제일 많이 먹나=우리 가족은 많이 먹지 않는다 ● 아버지는 언니가 먼저 우승하길 바랐다고 하는데=아빠가 언니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웃음) ● 올해 목표=신인왕이다. 지난해처럼 시상식장에서 멋진 춤을 추고 싶다


딸, 우리 팀도 너처럼 멋지게 우승할 거야

조혜정 감독이 LG인화원 근처 식당에서 GS칼텍스 배구팀의 방향을 얘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조 감독은 “농구처럼 상대에 따라 다양한 패턴을 구사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박지혜 인턴기자]
“행복합니다. 윤지가 저와 가족, 그리고 GS칼텍스 선수단 모두에게 큰 기쁨과 자신감을 줬네요. 우리 팀도 우승을 해서 이 기쁨을 딸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

조윤지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 전화를 받은 조혜정(사진) 감독은 벅찬 감격을 억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조 감독은 5개월째 선수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그는 “선수들의 생각과 행동이 빠르게 바뀌어가는 모습이 나를 설레게 한다. 매일 뛰는 가슴을 안고 출근할 수 있게 해 준 선수들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가 밖에서 바라본 GS칼텍스는 빠르고 호쾌한 배구를 하는 팀이 아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팀으로 바꿔보고 싶었다. 선수들에게 말했다. “경기 승패의 책임은 감독이 진다. 실수를 하는 것은 코치들이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승부를 떠나서,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배구를 즐겨라.”

선수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면서 몸 상태와 훈련에 임하는 자세도 변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개인훈련을 하는 숫자가 늘어났다. 점심때 짬을 내 근력 보강운동을 하는 선수도 있었다. 딸을 낳고 복귀한 센터 정대영은 “감독님은 여자들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우리가 실수해도 기다려 주신다. 마음이 편해지면서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는 ‘호쾌한 공격, 내실 있는 수비’로 요약된다. 호쾌한 공격이란 득점을 하든 실점을 하든 내가 때려서 결정을 짓는 것이고, 내실 있는 수비란 잡을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잡아내는 것, 어설프게 공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조 감독은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여성 리더십’의 첫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래서 더 외롭다고 한다. “내가 잘 하면 후배들의 진로가 열리지만 잘못하면 여자들까지도 적이 될 수 있다. 믿었던 여자 선배들도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는 시선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조 감독은 여자 지도자가 여자 팀에서 왜 실패하는지를 잘 안다. 같은 여자로서 너무 많은 걸 알고, 지나치게 간섭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웬만한 건 신만근 수석코치에게 맡긴다. 장윤희 코치에게도 적정한 선까지만 선수들을 끌어주라고 한다.

그래도 조 감독과 장 코치는 선수들에게 ‘롤 모델’이다. 여자 선수들도 열심히 준비하면 은퇴 후 지도자로 나설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조 감독은 팀내 고졸 선수 10명 전원이 대학에 등록할 수 있도록 구단에 건의했고, 정종수 사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이들은 야간인 명지대 경기지도학과에 9월 입학 예정이다. 지도자로서 장래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딸 같은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조 감독은 두 딸 얘기를 자주 하고, 종종 서로 경쟁도 시킨다. 예컨대 “우리 윤지가 하루에 퍼팅 연습을 300개씩 한단다. 너도 하루에 토스 연습 300개를 해라”고 선수에게 말하고, 딸한테도 “네가 퍼팅 300개를 하는 동안 누군가 그 이상 연습을 하고 있음을 기억해라”고 얘기한다.

시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목표를 묻자 조 감독이 말했다. “당연히 우승이다. 그렇지만 당장의 성적보다 중요한 건 GS칼텍스가 빠르고 호쾌한 팀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이천=정영재 기자
사진=박지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