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정월 그믐의 매서운 강바람을 맞으며 인조 임금과 소현세자가 꽁꽁 언 맨 땅에 엎드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세 번 큰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바닥에 두드림)’의 예법에 따라 청 태종에게 항복의 예를 올린다.
야만인이라고 상대도 않던 오랑캐들에게 나라가 짓밟힌 것으로도 부족해 이렇게 삼전도의 치욕으로 40여 일간의 병자호란이 막을 내렸다.항복의식을 거행했던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는 삼전도비가 서 있다.
전쟁이 끝난 뒤 청 태종은 자신의 공덕비를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고, 그 결과 ‘대청황제공덕비’가 세워졌는데 이것이 바로 기막힌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삼전도비다. 더욱 어이없는 일은, 한때 이 비석을 나라의 수치라 하여 한강변에 파묻었던 일이다. 이 비석만 없어지면 강토와 백성이 오랑캐에게 능욕당하고, 왕과 세자의 이마가 터지도록 ‘맨 땅에 헤딩’ 해야만 했던 치욕의 역사도 묻힐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마사다(Masada)는 이스라엘 사해 근처 434m 높이의 벼랑으로 된 천연의 요새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함락된 뒤에도 1000여 명의 유대인들은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채 마사다 성에서 1만5000명의 로마군을 맞아 거의 2년을 버텼다. 로마군은 흙으로 요새 꼭대기까지 경사로를 쌓아 올리고서야 겨우 성을 점령했지만, 로마군이 발견한 것은 유대인들의 시신뿐이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부녀자와 어린이 7명뿐이었다.
1965년 마사다 발굴 당시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질그릇 조각들이 발견됐는데, 유대인들이 자결할 순서를 정하기 위해 마련한 제비뽑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사다는 비극의 현장이면서 유대민족 용기의 상징이다. 이스라엘 청년 단체들은 해마다 이 가파른 산을 오르고, 장교들도 산 정상에서 “마사다의 비극을 잊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며 임관선서를 하면서 다시는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는 8월 15일 광복절은 기념하면서 8월 29일 국치일은 잊고 지나간다. 광복절을 기념하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나라를 빼앗겼던 국치일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다. 11월 17일은 우리의 국권을 일제에게 빼앗긴 을사늑약 체결일(1905년)이다. 1997년부터 이 날을 정부기념일로 제정하여 순국선열들을 추모하고 있으나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날이다.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묻어버릴 것이 아니라 들춰내고 되씹어야 한다. 우리 역사에 930여 회의 크고 작은 외침이 있었다니 대략 5년에 한 번꼴로 전쟁을 치른 셈인데, 이처럼 전쟁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전쟁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면 온 국민이 나서서 싸우지만,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왜 전쟁이 났었는지, 언제 전쟁이 있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국가에 위기가 온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하두철 (예)육군대령·국방대 군 전임교수 hadc0543@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