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562돌 한글날이었다. 지금은 한글날이 개천절, 광복절, 제헌절, 3·1절과 함께 국경일로 제정됐지만 한때는 공휴일에서마저 제외되고 일반 기념일로 남았던 때가 있었다. 노는 날이 많아 산업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공휴일을 줄여야 하는데 글자 만든 날을 기념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 맞춰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켰다고 한다.
한글날의 의미를 모르고 한 결정이었다. 한글날이 갖는 의미를 알았더라면 국경일로 승격시켰음이 마땅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공휴일에서마저 제외시켰으니…. 다행스럽게 지난해부터 국경일로 승격됐지만 아직도 놀지 않는 반쪽 국경일이라 각종 경축행사에 참석하지도 못했다.
우리나라만 글자 만든 날을 기념하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글자 만든 사람과 반포한 날을 아는 단 하나뿐인 글자이기 때문이다. 또 한글은 인류가 사용하는 글자 가운데 글을 창제한 목적과 창제한 원리, 글자의 운용 방법, 글자의 음가, 참여한 사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글자다.
세종대왕은 글자를 창제한 다음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노 등에게 글자 만든 원리와 글자의 운용 방법 등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하시고 이런 내용을 책으로 엮어 교육시키라 명하셨는데 이 책이 국보70호인 ‘훈민정음’이다.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글자 만들 당시의 문헌을 통해 글자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적어 전하는 나라는 오직 우리나라뿐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한글은 인류가 사용하는 글자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이고 우수한 글자로 인정받고 있다. 우수성과 독창성·과학성 가운데 몇 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훈민정음은 하나의 글자에 하나의 소리로 읽히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글자다. 소리글자인 영어만 해도 A를 읽을 때 낱말에 따라 ‘어’로도 ‘아’로도 ‘애’로도 읽기 때문에 낱말마다 별도로 소리 내는 법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한글의 경우 어떤 낱말에서든 한 글자는 한 소리로만 읽기 때문에 별도로 읽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언어학자들은 국제 음성부호로 그대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는 글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둘째, 한글은 인류가 사용하는 글자 가운데 가장 과학적이고 효용성이 있는 글자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글자를 창제하실 때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연구한 다음 그 소리에 해당하는 글자를 만드셨다. 그래서 훈민정음은 바람소리·학 울음소리·닭 울음소리·개 짖는 소리도 모두 적을 수 있는 글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종대왕께서 글자를 창제하기 위해 연구한 음운 이론들이 현대의 음성학이나 음운학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과학적이라는 점이다.
셋째, 인류가 사용하는 글자 가운데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라는 점이다. 현재 대다수의 어린이들은 세 살만 되면 한글을 읽고 쓸 줄 안다. 이를 두고 어떤 외국인은 한국의 어린이들은 말과 글을 동시에 배운다고 하는데 이는 훈민정음이 배우기 쉬운 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글은 이렇게 세계 모든 글자 가운데 비교할 글자가 없을 정도로 우수한 글자다. 그러나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거룩한 정신과 훈민정음에 담긴 문화적 가치를 생각한다면 한글날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이제 한글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문화라는 자긍심을 갖고 한글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한글날은 다른 국경일처럼 휴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조오현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choh17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