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40년 살아가는 법] <8> 20만 시간 관리계획 짜자
은퇴하면 시간 빨리 안 가, 공황 상태에 빠지기 쉬워
퇴직 후 6개월 시간 관리가 나머지 은퇴 기간을 좌우… 시간 관리 못해 조바심에 대책없이 자영업 뛰어들기도
"퇴직 첫날, 부인이 차려주는 밥을 세 숟갈 급하게 떠먹은 뒤 평소처럼 바쁘게 지하철을 타고 회사 앞까지 아무 생각없이 갔어요. 회사 앞에 가서야 '아, 일 그만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집으로 와 보니 집은 텅 비어 있고, TV 보고 책 읽다가 잠들었어요."
금융관련 협회에서 일하다 1년 반 전 정년 퇴직한 최모(57)씨가 회상하는 퇴직 첫날 모습이다.
"둘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아침에 자동반사적으로 집을 나와 2시간 정도 산책했습니다. 오후에도 다시 나가 집 주변 철길을 내내 걸어다녔어요. 넷째날은 월요일이었는데 그날도 양복 입고 회사 앞까지 갔다 왔어요. 회사 앞에 가서야 '이러면 안 되는데, 난 은퇴했는데'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더군요. 집에 와 난초 50개를 꼼꼼히 돌보며 2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날부턴 아침에 회사에 가지 않았어요. 대신 자식들 학교 가는 것 배웅하고, 케이블TV에서 경제프로그램을 보다가 라면도 끓여 먹고…."
퇴직 후 1년 반이 지났지만 그의 생활 패턴은 여전하다. 책 보고, TV 보고, 인터넷 하고, 난초에 물 주고, 강아지 밥을 주며 보낸다.
평생 회사에 매여 있던 사람이 은퇴를 하게 되면 남는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이 많아진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은 "은퇴 후 시간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느리게 가는 경향이 있다"며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미리 따져 보지 않으면 은퇴 직후 공황 상태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퇴직 후 1주일을 연상해 보라
평생을 24시간이라고 가정해 보자. 남성 평균 수명이 63세이던 30년 전의 경우 55세에 은퇴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이 시계에 비유하자면 '오후 8시'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씻고 TV 조금 보다가 잠들면 적당한 시간이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77세로 늘어난 요즘은 '오후 5시'에 은퇴하는 셈이다. 그만큼 시간이 길어졌다. 그때부터 TV 채널만 돌리며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길고 아깝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은퇴하는 사람들은 은퇴 후 시간을 관리하는 방식을 아버지 은퇴 세대와 완전히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은퇴 세대에게는 은퇴 후 남는 시간의 절대량이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 적어도 3배 늘었기 때문이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은퇴 직후 6개월 동안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머지 은퇴 기간이 좌우된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가 준비 없이 닥치면 조바심만 가지고 시간을 보내기 쉽다"며 "많은 은퇴자들이 대책 없이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도 자신이 남아도는 시간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바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퇴후 시간표 3개 만들어 실천"
신정모(70)씨는 은퇴 후 시간을 잘 관리해 쓰는 모범 케이스이다. 그는 2002년 전주 중산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세 개의 기간으로 나눠 관리했다고 한다.
1기는 교직에 몸담았던 20세부터 61세까지의 41년이고, 2기는 은퇴 후 70세까지의 8년, 3기는 85세까지의 마지막 기간이다. 그는 자신의 은퇴 후 꿈을 '저소득층 상담'으로 정했다. "내 경험을 살려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상담 아닌가 생각했어요."
- ▲ 지난 28일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금암노인복지회관‘전북실버뉴스레터’기자실에서 신문 편집장을 맡고 있는 신정모씨(왼쪽)가 동료들과 함께 취재 아이템 회의를 하고 있다. 신씨는“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살다 보니 은퇴 후 생활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그가 정한 '인생 2기'는 자신의 꿈인 상담원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은퇴 8개월 뒤 퇴직한 다른 교장 몇 명과 힘을 모아 현역 교사들에게 수업을 잘하는 노하우를 컨설팅해 주는 컨설팅센터를 꾸렸다. 그는 해마다 독학으로 상담과 관련된 자격증 10개를 땄다.
그는 일일계획표, 주간계획표, 인생계획표 세 가지 표를 항상 만들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그는 "단 1분도 허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목회를 꾸려 매월 4차례는 반드시 산행(山行), 매월 1차례 서점 가기, 매일 1시간 30분씩 부인과 걷기, 아침에 시 10편씩 읽기 등 일상 생활도 시간표에 맞춘다.
부인은 "40년 바쁘게 살았는데 늙어서도 이 생활이 질리지 않느냐"는 구박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부인에게 "쓸모있게 오래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웃어 준다고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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