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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남편, 長壽 대국의 그늘

惟石정순삼 2011. 11. 18. 18:25

늙은 남편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보다 열 살 많은 남편 데니스 경은 "야만스러운" 사형제도에 반대했지만 아내는 듣지 않았다. 그러나 데니스는 대부분 다른 정책은 아내를 지지했다. BBC 방송이 아내에게 비판적일 때도 "방송국 내 호모와 트로츠키파가 총리를 핏물로 공격한다"며 역성을 들었다. 언론은 그를 "골프와 진토닉에 빠진 보수반동"이라고 비아냥댔지만 데니스는 기자들 앞에서 아내를 "보스"라고 치켜세웠다.

▶아내가 세 번째 총선에서 승리하고 환호하는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을 때 데니스는 딸 캐럴에게 속삭였다. "1년만 있어봐라. 네 엄마 인기가 땅에 떨어져 있을 테니." 그 말은 딱 들어맞았다. 대처는 집권 10년째에 "그만 물러나자"는 남편 말에 귀를 닫았고 이듬해 당권 경쟁에서 밀려났다. 내년쯤 보게 될 새 영화 '철의 여인'에서 메릴 스트립이 열연하는 대처는 여든여덟에 죽은 남편 이름을 안타깝게 외쳐 부른다.

▶동물사회에서 늙은 수컷은 비장하거나 비참하다. 평생 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던 수사자는 사냥할 힘을 잃으면 젊은 수컷에게 자리를 내주고 쫓겨나 '마지막 여행'에서 혼자 죽는다. 늙은 수고양이도 죽을 때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침팬지에게 A 방법으로 먹이를 주다 갑자기 B 방법으로 바꾸면 늙은 수컷만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젊은 것들과 암컷에게 애물단지처럼 뒤처진다.

▶어느 나라건 '늙은 남편'을 조롱하는 농담은 넘쳐난다. 일본에서는 "비 오는 가을날 구두에 붙은 낙엽" 신세로 비유된다. 아무리 떼내려 해도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실제 인구조사 결과도 씁쓸하다. 몇 년 전 일본 에히메현에서 노인 3100명을 조사했더니 여성은 남편 있는 쪽이 없는 쪽보다 사망 위험이 두 배 높았고, 남성은 그 반대였다. "늙은 남편이 아내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엊그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여성의 71.8%가 "늙은 남편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 그만큼 돌봐야 하는 기간도 늘어날 것이라는 여성 쪽 걱정이었다. 늘 듣던 말 같은데 남성에겐 점점 더 내몰리는 느낌이다. 그러나 납북된 남편을 36년이나 기다려온 할머니도 있다. 지난주에야 남편 소식을 듣고 "결혼했답디까? 그럼 됐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있어야 살지"라고 했다고 한다.

 

 

長壽 대국의 그늘

 

#2009년 4월 20일 일본 시즈오카의 한 공동묘지. 가수 겸 배우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던 시미즈 유키코(淸水由貴子·49)씨가 아버지의 묘지 앞에서 자살한 채 발견됐다. 시신 옆에는 휠체어를 탄 그녀의 엄마가 실신한 채 발견돼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2006년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은퇴를 선언한 그녀는 병간호에 성심을 다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그녀는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간병 생활의 피로와 우울함을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지난 9월 하마마쓰(浜松)시의 한 주택에서 노인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남편(94)이 부인(92)을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경찰은 결론내렸다. 남편은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아내 병간호에 너무 지쳤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최근 일본 검찰은 69세의 아내를 살해한 72세의 노인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20년간 병중에 있는 아내를 간호하던 남편은 부인의 목을 졸랐다. 부인은 자신의 병치료로 계속 늘어나는 빚과 남편의 고생을 안타까워하며 "나를 죽여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다고 한다.

장수대국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촘촘한 노인복지를 자랑하지만, 간병자살과 간병살인의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간병에 따른 피곤 누적 등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연간 3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에서 간병자 8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명 중 1명이 우울증 상태였으며 65세 이상 간병자의 30%는 "자살하고 싶다"고 답했다.

일본은 2000년 4월 노인 간병 등을 돕기 위한 간병(개호·介護)보험을 도입, 재택(在宅)간병과 시설 입원 간병 등을 지원하고 있다. 65세 이후에는 간병비의 10%만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시설 입원 대기자 수가 40만명이 넘는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24시간 정부가 도와줄 수는 없다. 또 부모나 아내를 보호시설에 넣을 수 없다는 동양적 정서로 인해 집에서 간병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 핵가족화로 인해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간병하는 사람이 75세 이상인 경우가 25%를 넘는다. 부모의 간병을 위해 결혼도 직업도 포기한 '간병 싱글족(族)'도 급증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간병 전문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간병인들은 인력부족으로 24시간 근무하는 등 열악한 환경이지만 급여가 적다 보니 80% 이상이 3년 내 전직한다.

더 큰 문제는 재정난 등으로 인해 현재의 혜택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0년에는 4조엔 정도이던 간병보험 지급액이 최근 8조엔으로 늘어났다. 7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평균의료비는 연간 85만2000엔으로 그 이하 연령대(18만2000엔)보다 4배 이상 많다. 젊은 세대들은 "가난한 우리 세대가 왜 노인들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느냐"며 불만이다.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시대로 질주하는 한국도 지금부터 지혜를 모으지 않으면 장수(長壽)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