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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百年大計-남유럽 실패 연구] 2년 실직 가정에 月450만원… 국민은 놀고 재정은 비어가고

惟石정순삼 2011. 11. 14. 13:12

 

[복지 百年大計] 남유럽실패 연구 스페인 <2>
高임금·高복지… 채용 회피 - 정규직 임금, 비정규직의 3배… 채용땐 2년 연봉 先적립해야, 기업들 국내 버리고 해외진출
부모에 기대어 살기 급증 - 젊은층의 15%, 일·공부 포기… 집에서 트위터·게임하며 보내

‘공부도, 일도 하지 않는 젊은 세대’라는 의미의‘니니세대’인 후안니요씨는“일자리가 없어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 연금에 기대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철환 기자 plomat@chosun.com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후안니요(28)씨는 4년 전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고 마드리드의 한 유명 기업에 인턴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록 정규직 채용 기회는 오지 않았다. "채용 계획을 물었더니 수백 명의 이름이 적힌 '인턴 희망자 명단'을 보여주더군요. '인턴으로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얘기였어요."

결국 그는 사표를 냈고, 1년 넘게 무직 상태다. 그렇다고 남은 공부를 마치고 졸업할 생각도 없다. 그는 "디자인 전공 학위를 딴 여자 친구도 옷가게 점원으로 일할 만큼 일자리 사정이 나쁘다"면서 "졸업생에겐 얼마 안 되는 대기업 인턴 기회도 없는 만큼 당분간 대학생 적(籍)을 유지한 채 부모님에게 기대 살 계획"이라고 했다.

후안니요씨는 요즘
스페인의 사회적 이슈가 된 '니니세대(Generacion Ni-Ni)'다. '공부도, 일도 하지 않는(ni estudia, ni trabaja) 젊은이'를 뜻하는 스페인 사회의 신조어다. 기업이 고임금·고복지 정규직 채용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경제 악화로 비정규직 일자리까지 급격히 줄어들자 아예 취업 희망을 접고 부모나 가족에게 기대어 사는 청년이 속출하는 것이다. 스페인 언론은 16~34세 연령층의 10~15%가 니니세대라고 추정하고 있다.

청년 문제 전문 기관 인후베(INJUVE)의 훌리오 카마초 원장은 "요즘 젊은이에겐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면서 "직장이나 학교보다 집에서 트위터·페이스북·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고 했다.

니니세대의 출현은 젊은 층의 정규직 채용길이 꽉 막힌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스페인은 CCOO(노조연맹)·UGT(노동총동맹) 등 사회당(PSOE) 정부의 재정적·정치적 지원을 받는 강력한 노동단체가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근로 현장을 움켜쥐고 있는데, 정규직 임금이 비정규직의 2~3배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해고도 거의 불가능하다. 알카다대 토마스 나바로 교수(경제사회학부)은 "정규직 한 사람을 고용하려면 최고 2년치 연봉을 미리 적립해야 하고, 해고하면 퇴직금과 더불어 이들의 생활비(실업 수당)까지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수준 높은 복지 제도도 한몫했다. 감기 치료는 물론 성전환 수술까지 병원 진료 대부분이 거의 공짜고, 실직자에겐 2년간 실업수당을 주며, 보육과 교육 역시 무상으로 이뤄진다.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2500유로(약 400만원)를 줬고(지금은 폐지), 노인들은 연금 이 외에 '요양 지원금'도 받는다. 사회당 정부가 부동산 거품 경제의 낙관적 분위기 속에서 마련한 것이다. 덕분에 9가구 중 1가구가 일절 근로 수입 없이 정부 복지로 생활하고 있다.

마드리드 엘 솔 광장에서 만난 아돌포(31)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2년 가까이 실직 상태지만 아이(5)와 홀어머니(65)를 포함한 세 식구가 육아·실업수당과 연금을 합쳐 월 2800유로(약 448만원)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도 없고, 별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면서 "12월이면 실업수당(약 500유로)이 끊기지만, 절약해 생활하면 된다"고 했다.

지난달 20일 마드리드의 중심가 베나벤테 광장에서 스페인 최대 노조단체인 CCOO(노조연맹)와 UGT(노동총동맹)가 공무원 근로시간 연장과 임금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정부 예산 감축안의 철회와 노동자 탄압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정철환 기자 plomat@chosun.com
설사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스페인 청년들이 직장을 갖기는 쉽지 않다. 실업률 22.6%(청년 실업은 46%)에 실업자 500만명이라는 수치처럼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또 고복지와 높은 생활수준에 길든 청년들의 눈높이엔 '괜찮은 일자리'가 드물다.

스페인 일간지 엘 파이스(El Pais)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그중 절반은 월 600~800유로(약 96만~128만원)의 낮은 임금을 받는 인턴직이다. 산탄데르(은행)·텔레포니카(통신회사)처럼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우량 대기업들은 2000년 이후 해외시장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국내 고용을 크게 줄였다. 얼마 남지 않은 내수 기업도 정규직을 피해 비정규직과 인턴만 뽑는 상황이다.

반면 스페인 고용의 95%를 차지하는 영세·중소기업(상시 고용 인원 9명 이하인)의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로렌조 아모르 스페인 자영업협회(ATA) 회장은 "스페인 정부는 지난 10년간 영세기업에는 불리하고 대기업과 공공기관 노조에 유리한 정책을 펼쳐왔다"면서 "그 결과 스페인의 중소기업 70%가 매일 폐업 위기와 싸워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지방 정치인과 노조가 포퓰리즘에 물든 사이, 대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청년들은 일할 의욕을 잃은 나라…. 스페인은 이렇게 쇠락해가고 있다.

 

코미야스 카톨릭대학 알프레도 가르시아 학장 "한 해 수백억 유로 낭비"

알프레도 가르시아 학장

"자치주 정부가 공중파 TV 방송국, 라디오를 서너 개씩 갖고, 외국에 별도 대표부와 무역사무소, 외교관까지 파견하고 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마드리드 코미야스 카톨릭 대학의 알프레도 가르시아 학장(경제학부)은 "이런 식으로 자치주 정부들이 낭비한 돈이 연간 수백억 유로"라면서 "경제적 관점에서
스페인의 지방 자치는 모순과 비효율 덩어리"라고 규정했다.

지금까지 스페인 지자체에는 '균형재정'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는 "지방정부들은 지역 경제의 경쟁력 강화는 뒷전이고, 전시 행정과 선심성 복지 사업에 훨씬 관심이 많았다"면서 "이를 통해 양산된 지방 공기업과 각종 사업들은 정치인들의 자리 나눠먹기, 예산 빼먹기 등 각종 부패에 악용됐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1990년부터 20년간 안달루시아 자치주의 주지사를 역임한 마뉴엘 차베스 사회당(PSOE) 제3부수상의 친인척 비리다.

그는 1억7100만 유로어치의 공공사업을 일으켜 자신의 딸 파울라가 일하는 '아벤호아'라는 지방기업에 몰아줬다. 이 기업은 3700만 유로의 지방 재정지원금도 타먹었다. 심지어 그의 아들은 안달루시아 지역 은행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과 친한 기업주들에게 거액의 불법 대출을 하게 해준 다음, 그 돈의 50%를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갔다. 지방정부는 이로 인해 누적된 적자를 '나중에 갚으면 된다' '중앙정부가 막아줄 것'이라며 계속 외채로 돌려막아왔다.

현 사회당 정권은 이런 지방정부의 행태를 계속 묵인해 왔다. 가르시아 학장은 "최근 지방정부가 기존 예산 이상의 돈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스페인 국회가 제정했는데, 이런 문제점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지사나 시장이 매달 월급을 챙겨가는 '정책 자문단'을 1000명씩이나 거느리고, 각 자치주마다 중복된 지방공기업이 수백 개에 이르는 상황"이라며 "스페인이 경제·재정위기를 극복하려면 돈 먹는 기계로 전락한 지방정부의 개혁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국가 부채, 4년 만에 2배 급증

 산토스 美 컬럼비아대 교수
"2007년 GDP의 36%에서 연말엔 70% 넘어설 전망… 빚 느는 속도 너무 빨라 "

스페인의 정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63.5%로, 그리스(143%), 이탈리아(115.3%)에 비해 훨씬 좋은 상황이다. 네덜란드(62.5%)와 비슷하고, 독일(88.0%), 미국(91.6%)보다 낫다. 하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선 "그리스·이탈리아 다음은 스페인"이라고 할 만큼 재정 불안이 심각하다.

마드리드의 한 경제전문가 포럼에서 만난 미 컬럼비아대 타노 산토스(Santos·사진) 교수는 그 이유를 "빚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7년 36.2%에 불과했던 스페인의 정부 부채는 지난해 GDP의 63.5%로 급증했고, 올해 연말에는 7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불과 4년 만에 빚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는 "지금 스페인 재정과 경제 상황은 정부의 빚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경제성장률이 5%일 때 재정적자가 7%를 넘어서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보는데, 지난해 성장률이 마이너스 0.1%에 재정적자는 11.4%에 달했고, 올해는 0.7% 성장에 6~7%의 적자가 날 전망이다.

반면 경제는 빨리 회복될 기미가 없다. 그는 "기업들이 질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강성 노조들이 주도하는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스페인에선 노조대표와 정부가 협상을 해 산업·직군별 임금 수준을 정하는 산별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을 하는데,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도 여기서 정해진 임금 가이드라인에 맞춰 대기업 수준의 연봉을 주고 정규직을 채용해야 한다. 산토스 교수는 "이 때문에 스페인 기업들은 20~30대 비정규직만 낮은 연봉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효율성도 높고 경기 변동에 적응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들은 지금처럼 스페인 경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도 높은 임금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경기가 나빠지면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해 비용을 절감한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비정규직 청년들이 나이 든 정규직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재(buffer)'가 됐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