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1] 17개 자치주 빚, GDP의 13%… 중앙정부 부채가 문제인 그리스·이탈리아와 달라
공항·도로 등 개발정책 남발… 경제위기로 50여개 사업중단, 돈 댄 지방은행들도 위기에
지방 재정 60%가 복지예산, 우리나라의 두배 넘는 규모
마드리드에서 전철로 50분, 한국으로 치면 수원시쯤에 있는 인구 83만 도시 과달라하라의 주립 대학병원 확장 공사는 카스티야라만차 자치주의 전(前) 주지사 호세 폰테스의 야심 찬 복지 프로젝트였다. 2007년 지방선거를 앞둔 그는 '어떻게 전임자를 뛰어넘는 복지 공약으로 주민들 마음을 사로잡을까'를 고민했고, 그 해답 중 하나가 '스페인 최고의 무상 의료'였다.
압도적 지지로 재선(再選)에 성공한 그는 경제 위기 속에서도 공약을 밀어붙였다. 재정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지만, 주 정부는 2009년 1억2400만유로(약 2000억원)를 대학병원 확장 공사에 투자했다.
그 결과는 거대한 '빚의 늪'이었다. 20여년간 수백 가지 선심성 개발·복지 정책을 펼쳐온 카스티야라만차 주 정부의 부채는 현재 63억유로(약 10조원)나 된다. 중앙정부가 매년 보내주는 지원금 수억유로는 의료·교육 분야 적자를 메우기에도 벅찼다. 올해 상반기에만 15억유로(약 2조4000억원) 적자가 났다.
시 외곽 주택가에서 만난 주민 로렌조씨는 "복지 예산이 줄면서 평일엔 응급실 문이 닫히고, 내가 먹던 약은 공급이 끊겼다"면서 "거의 공짜였던 의료·교육비가 내년부터 대폭 오른다는 괴담이 돌고 있다"고 했다.
- 재정난에 중단된 대학병원 확장공사… 반년 넘게 내버려져 있는 마드리드 근교 과달라하라시(市)의 주립 대학병원 확장 공사 현장. 스페인엔 이런 식으로 무리하게 추진됐다가 중단된 각종 선심성 개발·복지 사업이 17개 자치주에 걸쳐 총 50여개에 달한다. /정철환 기자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정부 대부분이 카스티야라만차와 비슷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7월 말 기준 17개 자치주 정부의 빚은 1331억유로(약 213조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3%에 이른다. 우리나라 1년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하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회계 분식(粉飾)을 걷어내면 그 규모가 GDP의 2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스페인 지방정부의 토목 사업 30여개와 유령 공항·철도역 10여개가 올스톱하고, 여기에 돈을 댄 스페인 지방 저축은행들은 부실 대출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스페인 경제학자 모임인 이코노미스트연합회(fedea) 바스케스 국장은 "스페인의 재정 위기는 부동산 거품 붕괴와 더불어 지방정부의 빚이 중요한 원인"이라면서 "(중앙정부의 빚이 문제인) 그리스·이탈리아와 뚜렷이 차이 나는 점"이라고 말했다.
스페인의 복지 제도는 사회당(PSOE) 집권 이후 국민 세금에 의존하는 북유럽식 보편 복지의 면모가 강해졌는데, 현재 지방 재정의 60% 이상이 복지 예산이다. 우리나라(29.7%)의 두 배가 넘는다.
지난달 19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지방정부의 교육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교사 노조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마드리드 푸에르타 엘 솔 광장에서 만난 영어 교사 에우헤니오씨는 "임시 교사 3000명을 감축하면서 정규직 교사들의 주당 수업 시간이 기존 18시간에서 20시간으로 늘어난다"고 했다.
그레고리오 로드리게스 알칼라대 교수는 "500만명이 넘는 실업자 상당수가 '후한 복지'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재정 위기에 따른) 경기 악화로 복지 수요는 계속 늘고 있는 반면 복지 재원인 세금은 덜 걷혀 지방정부 재정이 계속 나빠질 수밖에 없는 만큼 공짜 복지를 줄이고 세금을 더 늘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페인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긴축에 뛰어든 올 상반기에도 130억유로(약 20조8000억원)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세수 부족에 따른 복지 부문의 적자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달 20일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을 누르고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야당 국민당(PP) 관계자는 "의료비 본인 부담률(현재는 사실상 무상 의료)을 올리고, 교육 부문에서도 급식비와 수업료 일부(현재는 공짜)를 학부모가 부담토록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금 제외한 대부분 복지정책 지방정부가 좌우
프랑코 독재체제 붕괴시킨 후 사회당, 지방정부에 권한 넘겨이런 식의 지방 분권형 복지가 자리 잡은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사회당(PSOE)과 지방 분리주의 정당들은 1940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프랑코 독재 시절 반(反)독재·민주화 투쟁을 함께 벌였다. 민주화 이후 사회당은 지방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분리주의 정당과 연정(聯政)을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지방정부에 '통 큰 양보'를 했다. 오비에도 대학 아나 구일렌 교수(사회학)는 "민주화 과정에서 주요 복지 행정의 권한을 지방 정부로 이전해야 한다는 요구가 줄기차게 이어졌고, 사회당 정권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현재와 같은 복지 시스템이 정착했다"고 했다.
1990년대 이후 지방정부가 복지 정책의 실권을 쥐자 선거 때마다 선심성 복지정책이 등장했고, 자치주 간에 '복지 경쟁'이 붙었다. 그 결과 스페인은 북유럽 못지않은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현재 스페인 지방 정부는 주요 병원을 모두 소유하고 진료비와 약값을 거의 받지 않는다. 스페인의 대학등록금은 연 100만~150만원 수준인데, 정부가 등록금 대부분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스페인의 조세부담률은 20.9%로, 덴마크(47.2%)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는 물론 우리나라(21.7%)보다도 낮다. 전형적인 저(低)부담 고(高)복지인 셈이다. 이코노미스트연합회(fedea)의 바스케즈 국장은 "금융위기 이후 스페인 경제를 이끌어온 부동산·건설 경기가 주저앉자, 토지와 건물에 부과하는 재산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방 정부의 재정 수입이 급감했고, 이는 대규모의 복지 적자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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