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11.09 03:09
[이탈리아] [3]
얼굴 두꺼운 정치인들 - 의원 5년하고 죽을때까지 의원연금 年 6000만원 받아
정당들 선거보조 3조원 받고 1조원만 영수증 처리해
국민 폭발 일보직전 - "베를루스코니에 인질로 잡혀 국가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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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만난 기업인, 노조 대표, 대학총장, 실업자들이 나라를 망친 주범으로 한결같이 지목하는 대상은 정치인이었다. 한때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이탈리아를 경제성장률 세계 꼴찌로 만든 것은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재정위기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들) 전체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 이탈리아는 유로존 회원국들이 강도 높은 경제개혁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와중에도 정쟁에 여념이 없다. 지난달 26일 국회의사당에선 연금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이는 연금개혁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 두 명이 주먹을 휘두르는 육박전을 펼쳤다.
이탈리아 정치권도 한때 정신을 차렸던 시절이 있었다. 2006년 총선에서 '개혁을 통한 재도약'을 기치로 내걸고 집권한 중도 좌파 연합(민주당 중심)은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시행했다. 증세, 탈세 조사 강화, 규제 철폐 등의 개혁정책을 추진하며 GDP 대비 재정 적자비율을 1.7%(EU가 권장하는 기준은 3% 이하)까지 낮췄다. 하지만 증세와 연금개혁이 국민적 저항을 초래했고 집권당 내 내분으로 정권이 붕괴됐다.
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민들이“나라를 재건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은 연립정부 파트너인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북부연맹 움베르토 보시 당수의 가면을 쓰고‘부패 정치’를 조롱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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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총선에서 우파 연합을 구성해 정권을 되찾은 베를루스코니는 개인 비리와 미성년자 매춘 스캔들에 휘말려 개혁은 뒷전이고, 권력 유지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탈리아 최대 경제신문(Il Sole 24 ORE)의 스테파노 카레 부국장은 "국가가 베를루스코니에게 인질로 잡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베를루스코니가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 대해 한 야당 의원은 "집권당 우파 연합엔 민주주의자, 옛 기독민주당 잔존 세력, 사이비 사회주의자, 파시스트 등 온갖 잡탕 세력이 섞여 있다"면서 "이념 스펙트럼은 다르지만 기득권층 개혁 저항세력이라는 점에선 똑같다"고 했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밀라노에서 만난 임시직 근로자 리마사씨는 "청년들은 대학을 나와도 월 1000유로도 안 되는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데, 롬바르디아주 지방 의원 월급은 9000유로(약 1400만원)에 달한다. 정치인들은 경제가 아무리 엉망이 돼도 늘 호의호식한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이탈리아 국회의원들(상원 315명, 하원 630명)이 받는 세비(歲費)는 유럽 최고 수준이다. 이들이 받는 보수 총액은 연간 13억유로(약 2조원). 1인당 137만유로(약 22억원)꼴이다. 여기엔 세비 외에 주택·교통보조금, 보좌관 급여 등이 포함돼 있다.
최근엔 포르노 배우 출신으로 단 5년간 하원 의원을 지냈던 일로너 슈탈레르(옛 이름 치치올리나)가 올해 만 60세가 되면서 죽을 때까지 매년 3만9000유로(약 6200만원)의 의원연금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국민들을 절망케 했다. 이탈리아 의회는 동료 의원이 재선에 실패하면 사회 정착비 명목으로 30만유로(약 4억8000만원)를 지급할 정도로 '동업자 의식'이 강하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탈세를 비난하지만 그럴 처지가 못된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이탈리아 정당들은 선거비용 보조금 명목으로 국가로부터 22억유로(약 3조5000억원)를 지원받았다. 하지만, 각 정당에서 영수증을 제출한 내역은 6억유로(약 9600억원)도 안 됐다.
구린 구석이 많다 보니 이익 집단에 끌려 다니며 개혁에 손을 못 대고 있다. 최근엔 EU의 압력에 못 이겨 의회가 사용자 단체와 노조 상급 단체간 임금 협상을 규정한 노동법 개정을 논의했다. 개별 기업 단위로 임금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개별 노조에 대한 영향력 상실을 우려한 노동 상급 단체들이 반발하자 이탈리아 정치권은 개혁안을 또 보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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