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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百年大計-남유럽 실패 연구] "연금 받는 노인에게만 천국"… 대졸자 年4만명 이탈리아 떠난다

惟石정순삼 2011. 11. 8. 10:41

 

[이탈리아] [2] 청년에겐 지옥 - 세금을 매개로 年 300조원이 청년 지갑서
노년층으로 빠져… 기업 신규인력 15%만 공채, 나머지는 연줄로 뽑아
성장동력 갉아먹는 청년 유출 - 선진국 중에선 伊가 유일하게 대졸자 유출이 유입보다 많아

2009년 명문 밀라노공대 디자인학과를 나온 안나 리사 모라티(30)씨가 얻은 첫 번째 일자리는 건축사 사무소의 월급 800유로짜리 임시직이었다. 고용계약서가 없어 노동법 적용은 물론 사회 보장 혜택이 없는 '블랙 노동자' 신분이었다. 지난 8월 사무소는 "휴가철이라 일감이 없다"며 해고 통지를 해왔다. 또다시 수십 군데 발품을 판 끝에 3개월짜리 임시직 일자리를 겨우 얻을 수 있었다.

로마 바티칸성당 뒤편 판필리공원의 한 경로당. 잘 차려입은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정유회사에서 40년간 일했다는 한 은퇴 노인은 "마지막 5년치 평균 월급의 80%를 죽을 때까지 받는다"면서 "금액은 밝히기 어렵고 노령연금 평균치(월 1667유로)보다는 훨씬 많다"고 했다. 기자가 "부럽다"고 하자 그는 "나는 고작 18년만 일하고 평생 연금을 받는 공무원들이 더 부럽다"고 응수했다.

이탈리아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자기 나라가 '노인 천국, 청년 지옥'으로 변했다고 했다. 1960~70년대 고성장기에 설계된 복지 혜택이 노년층에 집중되고, 일자리는 기성세대가 카르텔을 쌓아 독점하고 있다. 그 결과 청년층은 '수탈받는 세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공공 지출 내역을 보면 현실이 잘 나타난다. 전체 공공 지출(약 1조유로) 중 24% (2400억유로)가 65세 이상 연금 지급에 쓰여 450만명 공무원 인건비(1720억유로)보다 많다. 반면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실업급여 지출액은 600억유로에 그쳤다.

이런 구조 탓에 매년 GDP(국내총생산)의 14%에 해당하는 소득(2010년 기준 2672억달러·약 300조원)이 세금을 매개로 청년층 호주머니에서 노년층 지갑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이탈리아 중앙은행). 로마에서 만난 귀도 크로세토 하원 의원(국방차관 겸직)은 "이탈리아가 살아나려면 연금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도 성장기에 청춘을 보낸 이탈리아 노인들은 기여도 대비 풍족한 연금 덕에 안온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반면 납세자들은 노인연금을 대느라 연간 세금 2400억유로를 내며 허리가 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초 밀라노의 주말 노천 시장에 나와 쇼핑을 즐기고 있는 이탈리아 노인들. /AP 연합뉴스

이탈리아 청년층은 고용면에서도 '세대전쟁'의 패자로 전락했다. 기업 신규 인력 채용의 15%만 공채로 뽑고 나머지는 '연줄'로 채용되기 때문이다(이탈리아 상공회의소 조사). '백' 없는 서민 가정 청년층은 정규직 일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현재 근로자 2400만명 중 10여%(254만명)는 고용계약서도 없이 일하는 이른바 '블랙 노동자'다. 기업이 직원을 고용하지 않은 것처럼 국가를 속여 각종 사회보장성 지출을 줄이려는 과정에서 블랙 노동자들이 양산됐다. 이들은 아무런 사회보장·의료보험 혜택도 없이 월 1000유로 미만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길드(직업별 조합)의 직업 전통이 강해 사회에 새로 진출하는 청년들이 창업하거나 전문직에 진출하기도 어렵다. 몇년 전만 해도 아버지 약사가 사망하면 약사 면허도 없는 아들이 10년간 약국을 경영할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됐었다. 밀라노 소재 보코니대학 법학과를 나온 한 교민 자녀는 "명문대 법대를 나와도 판사·검사 아버지를 두지 못한 학생은 법조인이 되거나 로펌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했다. 심지어 택시기사도 되기 어렵다. 지방자치단체가 면허 발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20만유로(약 3억2000만원·밀라노 거래가격 기준)가 넘는 돈을 주고 면허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직업별 진입 장벽은 청년들로 하여금 직업선택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청춘을 보낸 노년층은 연금 덕에 안정된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다. 60세 이상 노년층은 자기 집 보유율이 80%가 넘고 저축액도 많아 등록금(연 7000유로 수준) 이 비싼 사립대학의 경우 부모 대신 조부모 세대가 손자·손녀의 등록금을 대주는 경우가 많다(로마 명문 사립대 총장의 증언).

조국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이탈리아 청년들의 돌파구는 '국외 탈출'이다. 매년 4만명이 넘는 고급 인력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이주하고 있다.

두뇌 유출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는 라디오24 방송국의 언론인 세르지오 나바씨는 "선진국 중 대졸자 유출 인력이 유입보다 더 많은 나라는 이탈리아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70~80년대 자국민 해외 이주 1위 지역은 낙후한 농촌지역인 시칠리아였지만 요즘엔 부유한 북부지역 롬바르디아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유출되는 인력의 질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伊 작년에만 연금 8조원 추가 부담 

인구 고령화로 연금대상자 한해에만 37만명 늘어나 4차례 연금개혁 매번 실패

노인층에 대한 과잉 복지로 빚더미에 올라앉은 이탈리아가 연금 개혁을 안 해온 건 아니다. 1992~2007년 사이 네 차례에 걸쳐 연금을 타는 연령을 늦추고(만 57세→65세) 받을 돈도 줄이는(월 소득액의 80%→60%) 부분적인 연금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로 65세 이상 연금 수령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현재의 연금 시스템도 지속 불가능한 모델이 돼 버렸다.

이탈리아의 연금은 자영업자 연금(vecchiaia)과 근로소득자 연금(anzianita) 등 두 종류가 있다. 지난해 두 연금의 수령 대상에 새로 진입한 65세 인구는 각각 20만명, 17만5000명으로, 이들은 각각 월 602유로(약 96만원), 1677유로(약 270만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후자의 연금액이 훨씬 많은 것은 유리지갑인 근로소득자들이 40년 동안 연금 적립금을 쌓은 뒤, 평균 월급의 60%를 퇴직연금 형태로 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는 급여소득자보다 연금 적립액이 적다. 하지만 근로소득자 퇴직연금의 임금 보전 비율 60%도 30~50% 수준인 다른 유로존 국가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이다.

어쨌든 두 연금을 합쳐 37만여명에 달하는 사람이 새로 연금을 타게 됨으로써, 지난해에만 국가가 새로 부담한 돈은 연 50억유로(약 8조원)에 달했다.

인구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2050년엔 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약 6000만명)의 절반을 넘어설 전망이다. 반면 청년 실업률이 30%에 이르는 등 세금을 내는 노동인구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이 때문에 EU(유럽연합)에선 연금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재정 적자 감축이 불가능하다며 근본적인 수술을 촉구하고 있다. 외부 압력에 못 이겨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연금 수령 시점을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노인 인구가 많은 북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북부연맹(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연정 파트너 정당)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연금 개혁이 제대로 추진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