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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百年大計-남유럽 실패 연구] 복지 부담에 치인 伊기업들, 月160만원 미만 임시직만 쓴다

惟石정순삼 2011. 11. 7. 17:36

 

[이탈리아] [1] 월급 1000유로 줄 때… 직원 복지에 1500유로 부담
기업 떠나니 경제는 최하위… 10년간 연평균 0.25% 성장
오늘의 과도한 복지 비용이 미래의 복지·일자리 없앤 격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섬유도시 프라토. 도심 북동쪽 4㎞ 위의 산업단지로 들어가자 쇼핑센터에는 미설무역(美雪貿易)·구주상성(歐洲商城) 같은 한자 간판을 단 중국 옷가게 110개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었다.

안내한 프라토 상공회의소 직원 판니니 페데리코(43)씨는 "주말만 되면 유럽 전역에서 소매상들이 트럭 수백 대를 몰고와 '메이드 바이 차이나(Made by China)' 의류를 사간다"고 했다. 거리에는 중국인들이 페라리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12세기부터 섬유산업이 발달해 '일자리의 오아시스'로 불렸던 프라토에선 10년 새 일자리가 2만여개 사라졌다. 이탈리아 기업이 떠난 자리에 중국 섬유업체 4000여개가 새로 터를 잡았다. 이탈리아 토종 섬유기업(3000개 미만)보다 많은 규모다. 프라토에 거주하는 중국인(5만명)은 전체 인구(18만명)의 30%에 육박했다.

이탈리아 기업들이 밀려난 주된 이유는 높은 세금과 복지 비용 탓이다. 이탈리아 기업은 근로자월급의 1.5배를 사회복지기금으로 국가에 내야 한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손에 쥐는 월급이 1000유로라면, 기업들은 월급 외에도 사회보장 기여금, 의료보험 지원금 등을 합쳐 총 2500유로 정도를 지출한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불법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면서, 18개월마다 문을 닫고 새 법인을 설립하는 편법으로 세금도 안 내고 있다고 이탈리아 전경련 프라토지부 마르첼로 고치 대표는 말했다.

기업 측의 엄살일 수도 있으나, 중국 기업에 점령당한 프라토의 상황은 '복지의 함정'에 빠진 이탈리아의 오늘을 상징해주고 있었다. 과도한 복지비용 부담이 기업들을 해외로 내쫓고, 일자리는 물론 복지 잠재력까지 쪼그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은 30%에 달하고, 2000~ 2010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25%로,
아이티·짐바브웨 등과 함께 세계 최하위권으로 내려갔다.

 

[복지 百年大計] 남유럽 실패 연구 이탈리아 <1>
노조도 기업고통 인정 - "기업의 세금 부담 줄여야 고용과 투자가 촉진된다"
피아트 "해외로 해외로" - 인기모델 폴란드공장서 생산, 생산성 낮은 伊는 구형 제작

유럽 6대 자동차 메이커이자 이탈리아 1위 제조업체인 피아트가 탄생한 곳은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시다. 한때 종업원 6만5000여명을 고용하며 단일 공장으로는 유럽 최대 타이틀을 보유했던 피아트 토리노 공장은 현재 근로자가 1만5000명에 불과하다.

높은 복지 비용과 인건비 탓에 글로벌 경쟁에서 밀린 피아트 측이 생산 라인을 폴란드·세르비아 등지로 계속 옮겼기 때문이다. 최대 노조 피옴(FIOM) 사무실에서 만난 에디 라지 노조위원장은 "신입 사원을 못 본 지 10년도 더 됐다"며 "공장 근로자의 평균 연령이 48세나 된다"고 했다.

남은 근로자들도 언제 공장이 문을 닫을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었다. 노조에서 만난 근로자 메르쿠리오 리노씨는 "피아트500 같은 인기있는 새 모델은 폴란드 등 외국 공장에서 생산하면서 토리노 공장의 생산 라인 가동 시간이 점점 더 줄고 있다"면서 "구형 모델 생산 라인 근로자들은 일감이 없어 한 달에 열흘도 일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일감 감소는 근로자 소득 감소로 이어져 근로자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끓어오른 상태였다.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여성 근로자 카테리나 구르지씨가 보여준 8월 급여 통장엔 세후 총 수령액으로 1138유로(약 182만원)가 찍혀 있었다.

그녀는 "임금이 10년째 동결돼 있다"며 "집 월세와 관리비로 600유로(약 96만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푸념했다.

반면 회사 측은 이탈리아 토리노 공장의 고비용 구조를 더는 감내하기 어렵다는, 180도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 피아트 근로자들은 시간당 평균 임금이 27.69유로(약 4만4000원)인데, 폴란드 근로자는 7.52유로(약 1만2000원)에 불과하다.

두 나라 간 현격한 임금 격차는 회사가 지출하는 높은 사회보장 비용이 주된 요인이다. 앞서 1138유로를 받은 여성 근로자는, 실제 회사가 지출하는 비용은 2693유로(약 430만원)에 달했다. 회사가 지출하는 돈과 근로자가 실제로 받아간 임금 차액 1555유로(약 248만원)는 퇴직연금, 실업급여, 건강보험료 등으로 내는 사회보장세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로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자기 희생' 개념은 안중에도 없었다. 강경 노조 소속의 한 근로자는 "공장 폐쇄를 막기 위해 임금을 깎거나 일을 더 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지금도 죽을 지경이다. 우리 임금을 깎을 게 아니라 폴란드 노동자들이 자기네 임금(월 500유로 수준)을 더 올려야 사회 정의에 맞는 거 아니냐"고 반박했다.

5일 이탈리아 로마에선 시민 수만명이 참가해“의심할 여지 없는 바람둥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 등을 흔들며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베를루스코니 연립정부는 최근 긴축정책과 경제 개혁 방안을 놓고 자중지란 양상을 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정규직 직원 채용에 따른 고비용 구조는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다. 밀라노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 한인 사업가는 "근로자는 세후(稅後) 임금이 너무 적다고 불평하지만, 사업주 입장에선 근로자 1명을 새로 고용하면 한국 돈으로 연간 5000만원을 지출해야 해 고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사 양쪽 모두 고용조건을 둘러싸고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월평균 1600유로(2011년 신규 연금 수령자 기준) 이상 받는 연금 생활자만 '돌체 비타(dolce vita·이탈리아어로 찬란한 인생이란 뜻)'를 누리고 있다.

고비용 구조에 따른 이탈리아 기업들의 고통은 노조도 인정하며, 정부에 개혁을 촉구하는 문제이다. 최대 산별노조인 이탈리아노조총연맹(CGIL) 사무총장은 "기업이 복지비용 지출을 회피하려고 고용 계약서 없이 채용하는, 이른바 프로젝트 채용(월급은 1000유로 미만, 복지비용 지출은 전혀 없는 고용)이 확산되고 있다"며 "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줘야 고용과 투자가 촉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8대 경제 대국, 이탈리아가 경쟁력을 잃고 '유럽의 문제아'로 전락한 데는 고비용 구조 탓에 기업이 신규 투자와 고용을 외면했고, 그 결과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중앙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자 500인 이상 대기업은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2000~2005년 사이 20%나 하락했다. 신규 투자 및 연구개발(R&D) 부진이 주요인으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