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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그리스의 命을 재촉한 부패와 부도덕

惟石정순삼 2011. 11. 4. 17:24

 

김기천 논설위원

그리스 아테네 북서쪽에 '코파이스'라는 호수가 있었다. 1950년대에 그리스 정부는 이 호수의 물을 바다로 모두 빼내고, 도로를 내기로 했다. 1957년 공사가 완공되면서 그리스 신화(神話)에도 나오는 유서 깊은 호수는 사라졌다. 그런데 그 공사를 감독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했던 기구는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30명의 공무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1911년 헌법 개정으로 공무원의 평생고용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1980년대에 사회당 정권이 공무원 일자리를 늘려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국민의 복지 요구도 충족시키는 정책을 펴면서 공무원과 정부기구는 더 폭발적으로 늘었다. 민간기업보다 월급이 많고 복지 혜택도 후하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어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공무원 천국(天國)'이 따로 없다.

정부 조직이 비대해지면 관료주의와 부패의 폐단도 따라서 커진다. 그리스에서 사업을 하거나 공사를 벌이려면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지레 진을 다 빼야 한다. 어느 기업인이 리조트 사업을 추진하면서 공무원 서명 날인을 6000개나 받아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많은 인·허가 장벽을 넘을 때마다 공무원들에게 '뒷돈'을 줘야 한다. 이러고도 경제가 멀쩡하게 잘 굴러갈 수는 없다.

그리스 재정파탄의 또 다른 주범은 탈세(脫稅)다. 아테네 교외에 '키피시아'라는 부유층 거주지역이 있다. 그리스 경제를 대표하는 해운업계 오너들을 비롯한 기업인과 정치인, 의사, 변호사 등 억만장자·백만장자들이 주로 모여 산다. 그런데 이곳 거주민의 상당수는 공식적으로는 '빈곤층'이다. 소득세 면제기준인 1만2000유로(1800만원) 정도의 소득만 신고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무공무원에게 최대 1만유로(1500만원)를 찔러주면 이렇게 터무니없이 소득을 숨기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아무 탈 없이 지나갈 수 있다.

유럽 언론들이 그리스에 대해 '부자들이 넘쳐나는 가난한 나라'라고 비꼬는 것은 괜한 트집이 아니다. 해운업계 갑부(甲富)들이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를 내세워 아예 세금을 면제받고 있는 것 같은 황당한 사례도 있다. 정부가 공무원을 마냥 늘리며 나랏돈을 헤프게 쓰면서, 세금 낼 사람들이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까지 만들어줬으니 나라 재정이 거덜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에선 좌파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서 기업과 부자들이 불편해지는 일도 없었고, 우파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서 빈곤층에 대한 복지 혜택이 줄어드는 일도 없었다. 역대 정권들이 한결같이 빚을 끌어다쓰면서 돈으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환심을 샀고, 기업과 부유층에 대해서는 탈세를 눈감아 주면서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했다.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만 눈이 어두워 나라 경제의 현실은 무시한 것이다.

국가부도의 파국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그리스인들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세금 도둑'인 공무원들이 복지축소에 반발하는 총파업을 벌이며 기득권을 놓지 않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선 세금을 더 내겠다는 부자들의 자발적인 선언이 잇따르는데, 그리스 부자들은 탈세를 반성하고 납세 의무를 지키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온 나라에 만연한 부패와 부도덕이 그리스 비극의 뿌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