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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百年大計-남유럽 실패 연구] 그리스 좌파 "국민이 원하면 다 줘라(아버지 총리 파판드레우)"에 우파도 굴복… 결국 공멸

惟石정순삼 2011. 11. 4. 17:22

 

[복지 百年大計] 남유럽 실패 연구 그리스 <2>
국민들, 복지 세례 맛보자 계속 더 바라기만… "30년간 '빚내서 복지'에 익숙, 중동 산유국처럼 펑펑 쓸 줄만 아는 나라 돼"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30년 만에 28%서 143%로

그리스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위기의 씨앗이 30년 전에 심어졌다"고 했다. 사회당(PASOK) 정권이 출범한 1981년을 뜻하는 말이었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7년 만에 탄생한 좌파 사회당 정권의 총리는 지금 총리의 부친인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1919~1996)였다. 그는 취임 직후 내각에 유명한 지시를 내린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줘라(Give them all)!"

파판드레우는 빈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분배와 복지에 국정의 최우선순위를 두고 국가 재원을 쏟아부었다. 복지 드라이브 방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파판드레우는 국민의 삶의 질을 고민하던 지도자였다. 유럽 평균보다 뒤떨어진 그리스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당시로선 당연한 시대적 과제였다.

그러나 파판드레우는 끊임없이 자기 증폭하는 '복지의 확대 본능'을 간과했던 것 같다. 한 번 복지의 세례를 맛본 순간 국민의 기대감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이익집단은 점점 더 많은 혜택을 요구했고, 정치권은 복지의 대가로 표를 받는 포퓰리즘 경쟁으로 영합했다. 그리스 사회는 순식간에 복지 의존 체질로 변했다.

문제는 그만한 재정 수요를 충당할 산업 기반이 그리스에 없다는 점이었다. 파판드레우 정권은 그 틈을 정부 지출로 메우는 길을 선택했다. 정부가 돈을 꾸어 일자리를 만들고 재정을 충당하는 '차입형 복지'에 나선 것이다. 파판드레우 집권 8년(1981 ~89) 사이 국가 부채 비율은 GDP의 28%에서 80%로 부풀었다. 지금은 143%에 달한다.

"우리 직원의 30%는 아마 지금 밖에 나가 커피를 마시거나 쇼핑을 즐기고 있을 겁니다."

아테네
상공회의소의 니콜라우스 소피아누스 이사는 처음 보는 한국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농담기 없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한국과 달리 그리스 상의는 개발부 소속의 공무원 조직이다. 현재 직원 140여명이 있지만 그는 "40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직원을 마구 채용했다는 것이다.

복지의 일환으로 공무원 일자리를 늘린 그리스 방식은 괴물 같은 관료제를 낳았다. 인구 1100만인 그리스의 공무원은 85만명에 달한다. 인구로 4배가 넘는 한국의 공무원 수(중앙·지방공무원 합쳐 98만명)와 엇비슷하다. 불필요한 인력이 넘치다 보니 쓸데없는 규제가 나오고 부패를 낳는다.

아테네대학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교수는 주택 거래 때의 비용 부담을 예로 들었다. 그리스에서 집을 팔려면 변호사 2명과 공증인 1명이 입회해야 한다. 예컨대 25만유로(약 3억8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거래할 경우 이런 비용이 6500유로(약 1000만원) 든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관료제로 그리스 경제가 치러야 하는 비용 부담이 GDP의 7%에 달한다고 하치스 교수는 말했다.

그리스 공공 부문의 비효율성을 말해주는 사례는 한이 없었다. 그리스 국영방송 ET의 직원 수는 미국 CNN보다 많다고 한다. 그리스 철도청은 매년 10억유로(약 1조5500억원) 적자를 내는데, 차라리 철도를 멈추고 승객을 택시에 태워 보내는 것이 더 적게 먹힌다.

아들 총리 파판드레우, 긴급 내각회의 참석 -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앞줄 왼쪽) 그리스 총리가 3일 아테네에서 열린 긴급 내각회의에 참석, 자신의 국민투표 제안과 관련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이 자리에서 그리스 지원에 대한 찬반과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 여부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는 자신의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그리스 정부 관계자가 말했다. /로이터 뉴시스
그리스 문제의 상당 부분은 공무원에 대한 과잉 복지에서 비롯된다. 그리스 공무원은 오후 2시 30분까지만 업무를 보고 퇴근한다. 그러고도 온갖 수당과 연금 혜택을 받는다. 35년 근무한 공무원이 58세에 퇴직할 경우 생애 월급의 96%를 매달 연금으로 받게 된다. 이렇게 비대한 공무원 조직을 먹여살리려니 국가 재정이 버틸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역대 정권이 세금을 많이 걷지도 못했다. 표가 떨어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지출이 그렇게 헤픈데도 그리스의 조세부담률(20.4%)은 한국(20.8%)과 비슷하다. '많이 쓰고 적게 걷는' 이런 그리스 시스템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산물이었다. 아테네 상의 소피아누스 이사는 "결국 정치가 돈으로 표(票)를 산 것"이라고 했다.

이런 시스템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은 역대 정부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어느 정권도 공무원 복지를 줄이자거나, 세금을 더 걷자고 하지 않았다.

지난 30년 중 10년 동안 집권했던 우파(신민주당)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복지로 표를 모으는 좌파 정권의 성공을 보고 우파도 좌파식 복지 포퓰리즘 경쟁에 가담했다. 하치스 교수는 "1981년 이후 모든 정당이 사회주의화했고 그리스는 펑펑 쓸 줄만 아는 '중동 산유국'으로 변질했다"고 말했다. 그리스 사태는 재정 위기 형태를 띠고 있지만 본질은 정치 리더십의 위기다.

30년 전 아버지가 문을 연 '차입형 복지 모델'의 계산서는 아들에게 날아왔다. 아버지가 총리이던 시절 30대였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59) 현 총리는 지금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뒤치다꺼리하느라 고전 중이다. 복지에 공짜는 없었다.

 

 

"좌파 '재원 없으면 부자에게 빼앗으면 돼' 선전" 

유력지 언론인 만드라벨리스씨 "성장모델 안 만들고 돈만 써 결국 온나라가 하향 평준화"

그리스 유력 일간지 '카티메리니'의 칼럼니스트 파스코스 만드라벨리스(48·사진)씨는 "좌파 이데올로기가 나라를 망쳤다"고 했다. 경제가 성장하고 산업을 키워야 지속 가능한 복지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좌파 정치인이 경제 발전 모델을 만들 생각은 않고 돈 쓰기에만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실패 이유는?

"30년간 좌파 이데올로기가 그리스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쓸 재원은 한정돼 있는데 좌파 정치인들이 '돈은 있다. 부자에게 빼앗아오면 된다'고 선전했고 국민도 이를 믿었다. 그들이 그리스 국민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좌파 이념의 무엇이 문제인가.

"평등과 분배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좌파가 말하는 평등은 하향 평준화라는 것이다. 경쟁력을 높여 경제를 키우고 파이(전체 몫)를 늘려 상향 평준화할 생각은 안 했다."

―왜 우파 이념이 국민에게 외면당했나.

"1970년대까지 주로 우파가 집권하면서 이데올로기의 날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반면 좌파는 이론을 다듬고 노조를 통해 현장을 잠식하며 사회 저변을 장악했다. 그 결과 1981년 이후 좌파가 독주하게 된 것이다."

―언론이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언론 책임도 크다. 그리스의 재정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사실 언론도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권과 죽이 맞은 언론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기자들이 깊이 있는 고민을 하지 않은 탓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