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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百年大計-남유럽 실패 연구] 2년前 '아들아 조국 떠나라'던 伊 총장(루이스대학 첼리 총장) "나라 앞길 여전히 캄캄"

惟石정순삼 2011. 11. 16. 09:12

 

[복지 百年大計] 남유럽 실패 연구 <끝>
아들 아직 이탈리아에 있어, 6개월 임시직 끝나면 해외로
경종 울리려 신문 기고했지만 지난 2년간 하나도 안 변해… 국가와 내 운명을 연결해 생각하는 의식 전혀 없어

2009년 11월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에 기고문이 실렸다. 제목은 "아들아, 조국을 떠나라." 기고자는 이탈리아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로마 루이스대학의 피에르 루이기 첼리(69) 총장이었다.

"아들아, 그동안 부모의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줬다. 대학 졸업을 앞둔 네게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게 슬프지만, 이 나라는 더 이상 네가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나라가 아니다…."

이렇게 시작된 기고문은 아들에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이탈리아가 쇠락해가는 이유와 구조적 문제점을 낱낱이 고발했다. 그것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 같은 남유럽 국가모델 전반에 적용되는 얘기였다.

이탈리아 최고의 지성인이 아들에게 "조국을 떠나라"고 권하는 편지 내용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린 기고문엔 댓글 2540개가 붙을 정도로 논란이 됐다. 파문이 커지자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청년들이여, 이탈리아는 다시 성장할 수 있다. 조국을 떠나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난달 20일, 로마 루이스대학 총장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그가 아들에게 떠나라고 한 조국 이탈리아의 사정은 2년 사이 더 악화됐고, 급기야 재정위기에 몰리며 세계의 근심거리가 됐다. 우선 아들의 근황부터 물었다.

―아들은 정말 떠났나.

"(웃으며) 아직 이탈리아에 있다. 올 연초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자동차회사 페라리에서 6개월짜리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월급이 700유로(110만원)밖에 안 된다. 계약이 끝나면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내 기고문 때문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우수 두뇌들이 이탈리아를 떠나고 있다."

―왜 그런 글을 기고했나.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 편지 형식을 빌려 쓴 글이었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고, 있다 해도 저임금 임시직밖에 없어 희망을 잃은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다."

―그후 무슨 변화가 있었나.

"유감스럽지만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 이탈리아는 미래를 위한 프로젝트가 전혀 없는 사회다. 윗물이 흐리다 보니 국민들의 도덕성도 땅에 떨어져 있다."

―청년들을 만나보니 고용문화에 대한 불만이 엄청나던데.

"그렇다. 기업들은 직원고용에 따른 복지 비용을 회피하려고 3개월짜리, 6개월짜리 임시직 형태로 청년들을 고용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2~3년 임시직을 전전하다 보니 가정을 꾸리는 시점도 늦어지고, 그 결과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만 15~20세 인구가 10년 전에 비해 15%나 감소했다."

아들에게“조국을 떠나라”고 조언, 파문을 불러일으킨 피에르 루이기 첼리 루이스대학 총장은 남유럽 위기 극복 방안과 관련,“ 국민들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새 역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문화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마=김홍수 기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탈리아를 포함한 남유럽 국가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고용의 유연성을 더 높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도 경력이 계속 이어져야 개인들이 발전을 도모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의 고용 알선 기능이 보다 강화되고 정교해져야 한다."

―청년 실업자에 대한 국가 지원이 왜 부족한가

"복지가 노년층에 편중돼 있어, 청년실업자 250만명을 돌볼 여력이 없다. 지금까진 고도 성장기에 자산을 축적한 부모 세대가 그럭저럭 자식들을 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 세대 저축도 바닥이 드러나 더 이상 자식을 돌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때 잘 나가던 이탈리아 경제가 왜 추락하게 됐나.

"가족 경영 중소기업이 이탈리아 경제의 주축인데, 개방화된 글로벌 경제시스템에서 외국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점차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8년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하며 위기극복에 동참했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남유럽 국가 국민들로부터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국가와 내 운명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의식이 없다.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고, 미래를 준비하는 열정을 상실한 상태다.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지 않고, 오히려 물을 흐려 온 것이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

―남유럽 국가들이 '문제국가'로 전락한 이유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국가들)에 편입됐을 때, 국가·기업·대학의 경쟁력 강화 같은 새 게임의 룰에 빨리 적응했어야 했는데, 옛날 방식대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은 게 잘못이다. 정부가 국제 룰(재정적자 통제)을 안 지켜도 된다고 안이하게 생각한 점도 똑같다."

-남유럽 국민들이 어떻게 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나.

"무엇보다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새 역사를 만들어 가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문화적 혁신(renovation)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