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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에세이] 골프장은 유혹의 천국

惟石정순삼 2011. 1. 2. 14:35

[골프에세이] 골프장은 유혹의 천국

 

‘골프는 가장 룰과 매너를 무시하기 쉬운 스포츠다.’

골프 마니아가 들으면 “무슨 소리냐”며 강력하게 반발할지 모르겠다. 골프는 룰과 매너를 가장 중시하는 스포츠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골프를 하다 보면 실제로 수많은 유혹을 받게 된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게 된다. 눈 한 번만 ‘질끈’ 감으면 타수를 줄일 수 있는 상황이 자주 찾아온다. 골프장은 사실 ‘유혹의 천국’인 것이다.

유혹을 가장 많이 받을 때가 잘 맞은 공이 디벗 자국에 들어갔을 때다. 모처럼 환상적으로 날린 드라이버샷이 하필 드넓은 페어웨이 중에서도 그 조그만 디벗 자국으로 찾아갔을 때 기분 좋을 골퍼 한 명 없다. 원통하고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내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인데. 동료가 보지 않을 때 살짝 옮기고 싶은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다면 당신은 ‘거짓말쟁이’거나 ‘천사’일 것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조차 가장 불합리한 골프룰이 디벗 자국에서 구제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억울하다는 얘기다. 넓은 디벗 자국에 공이 들어갔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탈출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공만 ‘쏙’ 들어갈 만큼 작은 디벗에 빠진다면 프로골퍼도 제대로 쳐내기 힘들다. 디벗 자국이 작을수록 반대로 유혹은 커진다.

‘알까기 유혹’은 조금 더 강심장을 가져야 한다. 공을 약간 ‘터치’한 것 정도야 들키더라도 1타 먹거나 핀잔 한 번 받으면 그만이지만 알까기 하다 걸리면 자칫 골프 모임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다.

알까기 때문에 홀인원을 날린 에피소드도 있다. 한 유명인 얘기다. 홀이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 파3홀에서 티샷을 날렸다. 조금 긴 듯했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린 위에도, 그린 뒤쪽을 뒤져봐도 공은 없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알까기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동료들이 보지 않는 사이 그만 주머니에 있던 공을 슬쩍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칩샷으로 핀에 붙여 파를 기록한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공을 집으러 홀에 손을 넣었더니 공이 2개 잡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모르게 2개를 꺼내서 주머니에 넣고 나중에 확인해 봤더니 자신이 처음 티샷한 바로 그 공이다. 공이 사라진 게 아니라 홀인원이 됐던 거다. 생애 첫 홀인원의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알까기한 자괴감에 그 유명인사는 한동안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OB(Out of Bounds) 말뚝에서 약간 벗어난 공도 OB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샷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OB면 무려 2타 손해 아닌가. 남들이 오기 전에 쳐 버리면 그만이다. 가장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순간은 숲 속으로 공이 들어갔을 때다. 숲 속에서 일어난 일은 자신과 나무와 공밖에는 알지 못한다.

이런 골퍼를 가끔 봤을 것이다. 분명 나무 맞는 소리가 여러 번 난 것 같은데도 절대 아니라고 오리발 내미는 골퍼. 페어웨이 한 번 거치지 않고 숲 속을 전전하다 파세이브했다고 우기는 골퍼. 분명 숲 깊은 곳으로 공이 들어간 것 같은데 별로 깊지 않은 곳, 그것도 나무 사이 너무 좋은 위치에서 공을 찾았다는 골퍼도 있다. 워터해저드에 들어갔을 때 좋은 곳에 놓고 치고 싶은 유혹은 정말 유혹 축에도 끼지 못한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자, 유혹과의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골퍼야말로 진짜 신사 골퍼다.

[오태식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ots@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