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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기사이야기

[골프에세이] 감칠맛 나는 ‘한국식’ 골프 용어

惟石정순삼 2011. 1. 2. 14:40

앨버트로스는 바다새 중 제일 큰 것으로 "신천옹"으로도 불린다. 독수리(이글)보다 높고 멀리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이 높고 멀리 날아가야 정규타수보다 3타 적은 앨버트로스가 가능하다.

 

골프 상식을
테스트하는 질문 한 가지. 골프만큼 영어 표현을 많이 쓰는 스포츠 종목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 방송 아나운서나 해설자들조차 한국식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골프용어는?

답은 ‘뒤땅’이다. 뒤땅을 영어로는 ‘팻샷(fat shot)’이라고 한다. 공을 정확히 가격하지 못하고 뒤쪽 땅을 두껍게 쳤다는 의미다. 하지만 팻샷이라고 표현한다면 알아들을 주말골퍼는 많지 않을 것이다. ‘뒤땅’. 얼마나 적절하고 감칠맛 나는 표현인가. 공 한참 뒤쪽을 치는 상황을 ‘뒤땅’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너무 ‘투박한’ 표현이라고 반대할 이도 많을지 모르겠다.

골프 용어로 굳어진 것 중에 이미 보편화됐지만 가끔씩 쓰기가 껄끄러운 표현도 있다.

‘머리 올리기’다. 스포츠 중 골프처럼 일정 기간,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연습과 준비를 한 후 실전에 나서야 하는 운동도 없다. 그래서 고생 끝에 첫 라운드를 한다고 해서 그날을 ‘머리 올리는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머리 올린다는 사전적 의미가 무엇인가. ‘어린 기생이 정식으로 기생이 돼 머리를 쪽 찌다’ 또는 ‘여자가 시집을 가다’는 뜻이다.

언젠가 신문 기사에 ‘머리 올린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다음날 한 독자가 “도대체 그 뜻이 무슨 의미인지나 알면서 쓰느냐”며 항의 전화를 해 혼쭐이 난 적이 있다. 그 후 신문 기사에서는 단 한 번도 이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많은 골퍼들은 지금도 생애 첫 라운드를 ‘머리 올리는 날’이라며 기념하고 있다. 며칠 전 원로 골프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최영정 씨가 골프공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고 골프볼이라고 해야 한다고 칼럼을 썼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로 낮게 깔리는 샷을 ‘땅볼’이라고 하지 ‘땅공’이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이 그럼 ‘럭비공’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반론을 편다. 한국인 중 누구도 럭비볼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뒤땅과 더불어 땅볼도 누가 처음 쓰기 시작했는지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기자가 너무 촌스럽기 때문일까. 요즘 땅볼을 뱀이 땅 위로 기어가는 것 같다고 해서 ‘뱀샷’이라고 부르는 이도 꽤 많다.

하긴 북한에서 쓰는 골프 용어와 비교하면 우리는 한참 한 수 아래다. 북한에서는 그린을 ‘정착지’라고 한다. 그린에 공이 올라갔다면 ‘정착지에 안착했다’고 표현한다. 아이언은 ‘쇠채’, 롱아이언은 ‘긴 쇠채’다. 우드는 ‘나무채’, 드라이버는 ‘제일 긴 나무채’다. 속된 한국식 표현과 비슷한 것도 있다. 바로 구멍이다. 북한에서는 홀을 구멍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쓰는 ‘홀=구멍’이라는 것은 성적인 코드가 들어간 표현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심지어 북한에서도 순수 우리말이나 속어로 바꾸지 못하는 게 있다. 보기, 버디, 이글 등 홀의 성적을 나타내는 영어 표현이다.

그러고 보면 골프 용어는 유난히 새와 관련된 게 많다. 버디(새), 이글(독수리), 앨버트로스(신천옹) 등 좋은 것은 모두 새 이름과 연관돼 있다.

골프는 ‘새 잡는 운동’인 것이다. 뒤땅을 치거나 땅볼을 날려서는 절대 새를 잡을 수 없다. 새를 잡기 위해서는 창공을 가로지르는 굿샷이 필요하다. 이번 주 모두 굿샷하시길.

[오태식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ots@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