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는 사회 규범이 철저하게 요구되는 사회였고 가정적으로도 청교도적 생활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정에서 질서와 정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17세기 네덜란드 가정의 일상을 보여 주는 작품은 호흐의 ‘리넨 벽장(빨랫감 옷장)’이다.
피터 데 호흐(1629~-1683)는 당시 네덜란드인들의 일상의 삶을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보여 주는 그림을 그렸다.평범한 일상을 보여 주고 있는 이 작품은 근면의 미덕을 나타내는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집안은 미덕의 표본이었다.
나태를 죄악시하고 근면한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네덜란드 사회를 나타낸다.청교도적 생활을 하는 가정의 실내를 그린 장르화에서는 남자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안주인과 하녀는 함께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다.
안주인 옆에는 빨래 바구니가 놓여 있고 두 사람은 치맛자락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옷자락을 걷어 올렸다. 두 사람이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있는 것은 깨끗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집안 바닥은 광택이 흐르는 타일이 깔려 있고 집의 출입구와 안쪽의 문을 열어 놓았다.
델프트 지역은 타일이 유명하다. 당시 네덜란드 상류층 가정에서는 타일로 바닥을 장식했다. 열려 있는 문 앞,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서 어린 아이가 골프를 치고 있다. 골프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남자 아이들의 놀이다.
아이가 드레스를 입고 있으나 골프를 치는 모습으로 남자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드레스의 네모난 형태의 레이스도 남자 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창문에는 그림이 있는 액자가 걸려 있으며 문 위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가 전리품을 들어 올리는 조각상이 서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는 그리스 로마 미술을 가장 이상적인 미술이라고 생각해 그림에 그리스 로마 고전주의 그림을 복제해 그려 넣는 것이 유행이었다. 열리 있는 문으로 안뜰과 대문 그리고 운하가 보인다. 운하 건너 건축물은 당시 전형적인 건물의 형태다. 호흐의 이 작품에서 흑단과 참나무로 만든 옷장, 큰 기둥, 창문과 액자, 그리스 조각상 등이 있는 실내는 상류층 가정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호흐는 델프트 화파 거장의 한 사람으로 베르메르와 같은 시기에 델프트에 살면서 활동했다. 그는 델프트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활동했는데 17세기 당시 네덜란드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암스테르담에 많은 화가가 모여 들었다. 이 시기에 호흐는 안뜰과 가정의 실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주로 제작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