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고전 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클로드 로랭(1600~1682)은 관습적인 화법에서 탈피해 시적인 풍경화 기법을 꾸준히 진전시켜 명성을 쌓는다.
특히 로랭은 영국에서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고 영국의 풍경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그는 열두 살 때 로마로 건너가 나폴리와 고향 로랭에서 단기 체류한 것을 제외하고는 여생을 로마에서만 보냈다.
로랭의 풍경화는 항상 멀어져 가는 지평선의 아름다움과 대기의 살랑거림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의 한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자신의 특기인 로마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치중했다.로랭의 풍경화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작품이 ‘하갈과 천사가 있는 풍경’이다. 이 작품은 구약성서 창세기의 한 장면을 표현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아내 사라의 허락을 받은 아브라함은 이집트인 하녀 하갈과 아이를 갖는다. 하갈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자 사라가 아브라함의 적자 이사악를 갖는다. 이사악이 태어나자 사라는 자신을 구박했던 하갈을 내쫓기 위해 남편에게 압력을 가한다. 사라의 압력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답을 구한다. 하나님은 “사라가 하는 말을 다 들어 주어라. 이사악에게서 난 자식이라야 네 혈통을 이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하갈에게 얼마 간의 식량과 물을 주며 이스마엘과 함께 광야로 내쫓는다. 내쫓긴 하갈은 샘터가 있는 들에서 천사를 만난다.(창세기16:1~12) 이 작품의 주인공인 하갈과 천사는 화면 왼쪽 구석에 그려 넣으면서 화면 중앙에는 강 건너 로마풍의 다리가 보인다. 멀리 언덕 위에는 고전풍의 건축물이 보인다. 강 건너 산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은 하갈과 천사가 들에서 만나는 장면을 묘사했지만 성서의 내용보다도 이상화한 풍경을 보여주는 데 더 치중했다.클로드 로랭은 자신의 고향 마을 이름을 따서 성을 로랭으로 바꾼다. 네덜란드 풍경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고대 로마의 풍경화를 정착시킨 로랭은 17세기 유럽에서 인기가 많았던 풍경화가 중 한 사람이다.
로랭의 작품은 17·18세기 초 컬렉터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 수집됐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당시 그의 풍경화가 인기를 끌자 로랭의 작품을 모방한 아류작들이 넘쳐날 정도였다. 로랭은 자신의 작품을 표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진실의 책’이라는 앨범에 자신의 작품을 모두 수록했다. ‘진실의 책’ 덕분에 작품이 언제 제작됐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