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5 新중년 | 제3부] (3) 사랑과 '현실' 사이
44세에 남편과 사별한 오모(73)씨는 5년 전 식당에서 일할 때 단골손님이었던 정모(73)씨를 만나 연인 사이가 됐다. 둘은 지난해부터 작은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고 있다. 부부 동반 모임에도 나가고 생일·명절 등 가족 행사에도 함께 참석하는 등 부부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남남이다.
오씨는 아들의 극렬한 반대 때문에 정식으로 결혼할 생각을 접었다고 했다. "지난해 집을 합칠 때 정 선생님이 제 아들에게 결혼 얘기를 슬쩍 꺼낸 적이 있었어요. 제 아들이 어머니 말이라면 다 듣는 효자인데, 도끼눈을 하고는 '못 들은 걸로 하겠다'고 정색을 해요. 어머니 '호적'이 옮겨가는 게 싫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아저씨'와 나눌 생각이냐면서…." 오씨는 그 후로 아들에게 다시는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체력과 정신력이 이전의 중년에 못지않은 신(新)중년(60~75세) 중 사별·이혼 후 두 번째 '짝'을 만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신중년의 사랑이 결혼까지 이어지기엔 '자녀의 반대'라는 거대한 장벽이 존재한다. 결혼 정보 회사 '선우'가 신중년 300명을 설문한 결과 신중년이 꼽은 재혼의 가장 큰 문제는 '자녀의 반대'(43%) '상속 문제'(25%) 등 자식과 관련한 요인들이었다.
젊은이들은 홀로된 부모님의 연애는 찬성하면서도 결혼은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부모님이 재혼하면 물려받을 재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호적'이 복잡해지는 것도 싫다는 이유에서다. 결혼 정보 회사 '듀오'의 20·30대 대상 설문에 따르면 홀로된 부모님의 연애에 대해서는 62%가 좋다고 답한 반면 '결혼을 찬성합니까'라는 질문엔 60%가 '반대'라고 답해 '연애는 괜찮아도, 결혼은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6075 新중년] [제3부-3] "상속 문제 꼬인다" 자녀들 반대에 막히는 '黃昏 재혼'
-새로운 가족관계도 걸림돌
"재산 욕심 때문이 아냐… '족보' 복잡해지는 게 싫어"
-자식 눈치에도 재혼 늘어
"20년 넘게 독수공방할 텐데 자식들도 현실 받아들여야"
같은 여자인 딸은 어느 정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딸은 더 단호했다. "자식들이 용돈 다 챙겨주지, 몸도 건강하지… 엄마가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 거예요? 연세 생각 좀 하세요. 김 선생님이란 분 여든 가까이 되셨다면서, 그분 병시중하다 남은 인생을 보내려고 그러세요?" 고씨는 다시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고씨는 "우리가 젊었을 때는 부모 눈치를 보고 결혼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자식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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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성규 기자
◇복잡해지는 상속 셈법… "어머니, 재혼하지 마시죠"
재혼에 대한 신중년들의 사고방식은 개방적이다. 본지가 '선우' 결혼문화연구소에 의뢰해 신중년 300명에 한 설문에 따르면 사별·이혼 후 다른 이성을 사귀는 것에 대해 49%가 찬성했고, 재혼에 대해서도 40%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반대는 각각 28%, 36%였다.
60대 이후 재혼을 하게 될 경우 장애 요인을 물었더니 '자녀의 의견'이 43%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본인의 건강'(26%)과 '재산 및 상속 문제'(25%)가 뒤를 이었다. 상속도 자녀와 관련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명 중 7명이 재혼에 앞서 자식 걱정을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재혼이 어려워졌을 경우에 결혼을 강행하겠다는 신중년은 거의 없었다. 49%는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했고, 47%는 애인으로 만나는 것에 만족하겠다고 답했다. '그래도 결혼하겠다'는 답은 남녀 각각 8%, 2%에 그쳤다.
자식들의 반대 비율도 높은 편이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20~30대 미혼 남녀 42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 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이 '부모의 재혼에는 반대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홀로된 부모가 실제로 재혼하겠다고 나서서 재혼이 현실적인 문제가 되면 반대 비율이 최소 10%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식들이 홀로된 신중년의 재혼을 반대하는 현실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재산 문제다. 듀오 설문에서 자녀들은 재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재산 상속 문제로 불화가 생길 것 같아서'(32%)를 꼽았다. 2위는 새로운 가족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31%), 3위는 주위의 부정적 시선(19%), 4위는 전(前) 배우자에 대한 도리(15%) 등이었다. 회사원 박모(여·41)씨는 "드러내 놓고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몇 년 함께 살고 재산을 뚝 떼가는 것 아닌가. 자식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부모의 재혼을 찬성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새로운 가족 관계도 문제다. 사별 후 홀로된 어머니(68)를 둔 신모(45)씨는 어머니가 만나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재혼은 '절대 반대'다. 물려받을 재산이 거의 없어 상속 욕심 때문은 아니다. 신씨는 "새로운 아버지가 오면 성(姓)이 다른 그쪽 자식과 형님·동생 하며 가족처럼 지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하고 살아야 할지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한마디로 '족보'가 복잡해지는 게 싫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독수공방 쉽지 않아, 자식들이 수용해야"
자녀의 반대에 대한 홀로된 부모들의 '눈치 보기'에도 불구하고 신중년의 재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혼 남녀 회원만 상대하던 결혼정보업체들도 50~60대 회원에 문을 열고 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의 경우 50~60대 회원이 최근 3년간 200% 이상 증가했다. 다른 업체들도 60대 이상 회원 수가 빠르게 느는 등 신중년의 재혼이 비즈니스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중년의 재혼이 늘어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도 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2013년 기준으로 60세에 홀로되면 남성의 경우 22년, 여성은 27년을 홀로 살아야 한다. 2030년이 되면 이 기간은 남성 24년, 여성 29년으로 늘어난다.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60대 이후 홀로됐다고 해서 20년 넘는 세월을 독수공방으로 살기는 어렵고, 자녀가 부모에게 혼자 지내시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며 "결국 신중년층의 재혼은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고, 자식들도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6075 新중년] [제3부-3] '婚前계약'으로 이혼시 재산분할 정해두고 "자녀에게 상속" 미리 유언장 써놓으세요
'黃昏 재혼' 후 발생하는 상속 분쟁 줄이려면
황혼 재혼 시 발생할 수 있는 재산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부부가 이혼해 재산분할이 이루어지는 경우다. 박씨와 김씨가 혼인 신고를 했다가 다시 이혼할 경우 김씨는 재혼 이후 형성된 재산에 대해서는 최대 절반까지 분할받을 수 있다. 결국 박씨의 자녀가 상속받을 수 있는 재산이 줄어들게 된다.
조정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부부재산약정, 즉 '혼전계약'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혼전계약을 통해 이혼 시 분할할 재산의 범위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부부재산약정은 등기할 수 있고, 등기하면 그 내용을 제3자에게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아직 혼전계약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법원이 그 효력을 얼마나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부부가 이혼 시 재산분할의 범위와 한도를 상세하게 명시한다면 법원이 그 효력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게 조 변호사의 설명이다. 조 변호사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세밀하게 계약을 체결한다면 재산을 보호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른 하나는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해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다. 혼인신고를 한 상태에서 박씨가 사망할 경우 김씨에게 배우자 상속분이 인정돼 김씨가 박씨의 자녀들보다 1.5배 많은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상속의 경우 완전한 방어 수단은 없다"고 말한다. 유류분(遺留分) 제도 때문이다. 민법에서는 원래 상속받을 사람의 생계를 고려해 상속액의 일정 부분을 배우자 등 법정상속인의 몫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를 유류분이라고 하는데, 배우자의 경우 법정상속액의 2분의 1을 유류분으로 인정한다. 배금자 해인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미국은 혼전계약을 통해 상속권을 포기하면 그 효력이 인정되지만 우리는 유류분을 인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재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유류분 반환 청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재산에 한해서는 사전에 보호할 방법이 있다. 자녀에게 상속하겠다고 사전에 유언장을 작성하면 된다. 김영림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세무사는 '유언대용신탁'을 추천한다. 생전에 금융기관에 상속재산 관리를 맡기고 본인이 사망했을 때 수익을 취득할 상속인을 자녀로 지정하는 것이다. 김 세무사는 "생존 중에는 본인이 수익자가 되고, 사후엔 미리 정해놓은 수익자에게 상속이 진행되기 때문에 상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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