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폼생폼사 그들
머리염색은 밝은 갈색 선호, 60代 절반 통좁은 바지 입어… 더 젊고 멋지게 가꾸기 노력
외모욕망, 삶에 활기 주지만 집착 과도하면 중독 될 수도
서울 응암동에서 카페를 하는 전만수(60)씨는 얼마 전 한 결혼식장에 핑크색 바지와 흰 재킷을 입고 갔다. 그는 자신에게 꽂히는 야릇한 시선들을 만끽했다고 했다. 전씨는 카페에 출근할 때 패션부터 꼼꼼하게 연구해 갖춰 입는다. 아이보리색 바지, 베이지색 재킷, 주황색 니트와 이 니트에 '깔'(색깔) 맞춘 주황색 양말을 신거나 낡은 듯한 청바지에 하늘색 셔츠, 벽돌색 넥타이, 황토색 카디건을 맞춰 입는 식으로 스타일에 변화를 준다. 그는 대학 강단에 서 오다 2013년 은퇴했다. "대학에서 일할 땐 남들 시선도 있고 해서 튀는 옷 입기가 쉽지는 않았죠. 그런데 이젠 내 맘대로 꾸밀 수 있잖아요? 마음껏 멋을 내요. 어차피 입을 옷인데 멋지게 차려 입으면 좋잖아요?" 전씨의 지인(知人)들 사이에 그는 '한국의 닉 우스터'로 통한다. 닉 우스터는 백발, 선글라스, 멋진 패션으로 이름난 50대 후반의 미국 패션 컨설턴트다.
힘과 의욕이 넘치고 은퇴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신(新)중년(예전의 중년에 버금가는 체력·정신력을 갖춘 60~75세)은 자신을 더 젊고 멋지게 가꾸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신중년들은 전국 주요 피트니스 센터의 주(主) 고객층으로 떠올랐고, 피부·성형외과에서 미용 목적의 시술을 받는 신중년의 수도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다. 신중년들이 패션·미용에 쓰는 돈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신중년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 시대다.
◇SNS 달구는 '스타일 할배'들… "섹시하단 소리 들어요"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에선 최근에 '간지('분위기'란 뜻의 일본어) 할배'라 불리는, 멋진 신중년 남성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카페 주인 전만수씨, '불량소년'이란 별명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근사하게 치장한 '오늘의 복장' 사진을 올려 인기를 끄는 양복점 주인 박치헌(60)씨, 사진 SNS인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만명이 넘는 부산의 멋쟁이 재단사 여용기(62)씨 등이 대표적인 '간지 할배'다. 박치헌씨는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고루한 복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양의 나이 든 '스타일 가이(style guy)'들을 보면 멋있게 튀지 않습니까. 젊은이들이 나이 든 사람을 싫어한다고 할지라도 멋있으면 좋아하더라 이겁니다. 나는 젊은 마인드가 복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패션에 이렇게 신경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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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한국의 닉 우스터 - ‘한국의 닉 우스터’라고 불리는 전만수(60)씨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포즈를 취했다. 니트 셔츠와 양말을 주황색으로 맞추고 통 좁은 바지를 살짝 걷어 올린 모습이 여느 젊은이 패션보다 멋지다. 전씨는 “직장 다닐 때는 남들 시선 때문에 튀는 옷을 입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내 맘껏 멋을 낸다. 아웃렛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애용한다”고 말했다. (사진 오른쪽)간지 할배 '불량 소년' - 대구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박치헌(60)씨는 인터넷 블로그에 ‘불량소년’이라는 별명으로 근사하게 치장한 자신의 ‘오늘의 복장’ 사진을 올리기를 즐긴다. 사진은 지난 14일 올린 것이다. 그는 이 사진에 ‘좀처럼 소화시키기 어려운 레오파드(표범) 패턴 셔츠에 전 세계에서 베스트드레서로 인정받는 축구 선수 베컴도 입었던 가죽 라이더 재킷’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전만수씨·박치헌씨 제공
개인 사업을 하다 10년 전에 은퇴한 오순애(68)씨의 요즘 낙(樂)은 한국무용 배우기와 네일아트(손톱관리)다. 오씨는 특히 네일아트가 인생의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네일 숍'에 들러 계절과 기분에 맞춰 손톱을 치장한다. "은퇴 전엔 일하느라 바쁘니까 꾸미는 데 관심 둘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은퇴하니까 갑자기 권태롭고, 세상 다 끝난 것 같고…. 이대로 퇴물이 되는 건가 싶었는데, 손톱·발톱 물들이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면서 아주 활기가 돌아요." 오씨는 손가락이 잘 보이는 동작으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왼손 넷째손가락 위에는 '스톤(stone)'이라 부르는 반짝이 보석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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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한 네일아트 전문점에서 오순애(68)씨가 손·발톱 관리를 받고 있다. 그는 “손·발톱을 예쁘게 손질하면 삶에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오씨처럼 '폼생폼사'에 매진하는 신중년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노(老)티'다. 이들은 '고령자 공략'을 내세우는 제품·서비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노티 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한다. 2013년 말 출시된 요실금 팬티 '디펜드'가 크게 성공한 이유는 '나이 든 사람도 스타일을 중시한다'는 이미지 광고 때문이었다. 디펜드를 파는 유한킴벌리는 50대 탤런트 최란씨가 활동적으로 산에 오르는 광고를 선보이면서 '요실금 팬티' 대신 '스타일 언더웨어'라는 용어를 썼다. 민망할 수 있는 요실금 팬티에 '스타일'의 이미지를 입힌 이 제품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폼생폼사' 신중년, "갈색 머리, 날씬한 바지 좋아요"
과거 60~70대가 흰머리를 감추려고 머리를 검게 염색했다면 요즘 신중년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스러운 갈색을 선호한다. 서울 청담동의 미용실인 '정샘물 인스피레이션' 민숙 원장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60대 이상은 무조건 검은 머리로 염색했다. 그러나 약 2년 전부터 머리를 염색하는 신중년의 70~80% 정도가 어두운 고동색, 혹은 흰머리만 살짝 가리는 밝은 갈색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스타일 좀 안다는 신중년들은 펑퍼짐한 양복바지 대신 젊은이들처럼 다리에 착 붙는 바지로 멋을 낸다. 남성 패션 브랜드 '마에스트로'에 따르면, 2007년엔 60대 이상의 5% 정도만 아래로 갈수록 통이 좁아지는 스타일의 바지를 샀지만 최근엔 이 비율이 50%를 넘어섰다.
멋진 외모에 대한 욕망은 신중년의 삶에 활기를 더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론 젊음, 섹시함,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과도할 경우 '중독' 수준에 이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노화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각종 안티에이징 기술의 발달로 성적 매력을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집착하는 신중년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정찬승 박사는 "강박을 느끼면서까지 젊음을 유지하려고 매달리는 건 자연을 거스르는 일임에도,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는 노인이 적지 않다"며 "특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일수록 젊음을 돈으로 사고 싶어 하는 경향이 큰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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