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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5 新중년] [제3부-2] 사랑 고백하고, 커플티 입고… '20代 CC(캠퍼스 커플)' 뺨치는 '新중년 BC(복지관 커플)'

惟石정순삼 2014. 2. 4. 18:59

[당당한 연애]

-복지관은 연애의 메카
함께 취미활동하다 커플 돼 선물 주고받고 기념일 챙겨
공개 연애하다 헤어지면 노인복지관에 못 나오기도

"감기 몸살에 장염까지 겹쳐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었는데 어느 날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왔어요. 누군가 봉투를 놓고 갔다는 거예요. 봉투 속에는 복지관 통기타 반에서 나눠준 악보하고 플라스틱 팩에 담긴 염소탕, 그리고 메모가 있더라고요. 아! 오 선생인가 싶어, 심장이 두근두근….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김 여사. 뜨끈할 때 땀 흘리면서 먹고 얼른 건강 회복해서 같이 놀러 가요!'. 쪽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답니다."

충북 청주에 사는 김 여사(66)와 '남친' 오 선생의 알콩달콩 러브 스토리가 인터넷 다음카페 '아름다운 60대' 게시판에 올라오자 응원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김 여사는 넘 좋겠다! 염소탕 대령하는 친구가 간절한 맘으로 챙겨주니 얼마나 행복할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세요. 지금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입니다. ㅎㅎ'. 인증을 거친 57세 이상 신중년만 가입할 수 있는 이 카페 회원은 현재 2만여명. 회원들은 막 시작된 사랑을 축하하며 격려해주고 있었다.

신중년 재혼 얼마나 늘었나. 이혼·사별 후 재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사연을 올린 김 여사와 오 선생은 요즘 신중년 사이에서 유행하는 복지관 커플, 일명 'BC'(Bokjikwan couple)다. 전국의 수많은 복지관에서는 오늘도 김 여사와 오 선생 커플 같은 BC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노인복지관은 캠퍼스보다 뜨겁다

지난해 여름 경기도 연천군 노인복지관 제2교육실. 어르신 서른 명이 책상에 둘씩 짝을 지어 앉아 앞에 놓인 찰흙 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사가 찰흙으로 남녀 어르신 두 분만의 집을 만들어보라고 하자 "애들처럼 뭐 이런 걸 다 시켜" "손 버려"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투정도 잠시. 각자 머리가 닿을 듯 손이 닿을 듯 찰흙을 주무르고 동그랗게 말더니 한쪽에선 2층 집이, 한쪽에선 마당 넓은 기와집이 올라갔다. 한 할머니가 "이런 토담집에서 살고 싶다"고 하자 짝을 이뤘던 할아버지가 "같이 하니까 좋네. 나도 이런 집에서 같이 살고 싶어요"라고 맞장구쳤다. 할머니가 "이 양반이!" 하며 눈을 흘겼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한국노인상담센터 이호선 센터장은 "복지관이 요즘 신중년 연애의 메카"라고 했다. 복지관은 경로당과 달리 60·70대 건강하고 의욕 넘치는 젊은 어르신들이 모여드는 곳인 데다 온종일 운동과 취미 활동을 함께하면서 연애 감정이 싹튼다는 것이다. "마치 대학 캠퍼스 커플들처럼 그렇게 연애를 하셔요. 공개 연애를 하는 분부터 남자 한 분이 여섯 명의 여자분을 만나는 경우까지 봤어요."

밸런타인데이 '두근두근' 고백도

서울의 종로노인복지관에 다니는 양모(67) 할머니는 지난해 2월 14일 밸런타인 데이에 같은 복지관 할아버지로부터 고백을 받았다. 복지관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양반이 뜻하지도 않게 식당에서 밥 먹는 와중에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더니만 '오늘이 밸런타인 데이입니다' 하면서 주더라는 것이다. 손도 꼭 잡아줬다. 양씨는 "정말 설레고 행복해서 백화점에서 이탈리아제 초콜릿을 사서 답례했다"고 자랑했다. 이 복지관에 다니는 할머니 중에는 남자 친구와 커플티·모자까지 맞춰 입고 나타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연애의 일생'은 2030세대나 6075 신중년 세대나 똑같이 적용된다. BC 사이가 깨지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복지관에 나오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학 동아리 내에서 사귀다 헤어지면 그중 한 명은 동아리에 나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사랑, 연애에 천착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다가오는 죽음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내가 쇠퇴하고 죽어간다는 두려움을 역전시키려고 사람을 만나 인정받고 교감을 나누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60대 이상 재혼 건수 20년 전보다 3.5배로

70대 중반인 김모(남)씨와 고모(여)씨는 3년 전부터 '깊이' 사귀는 사이다. 김씨는 이혼남이고 고씨는 남편과 사별한 상태다. 두 사람은 한 주에 서너 번씩 만나 데이트를 하고, 못 만나는 날엔 아침·저녁으로 전화통을 붙들고 수다를 떤다. 두 사람은 조만간 혼인신고라도 할 생각이다. 김씨는 "자식도 좋고, 돈도 좋지만 고 여사가 있어야 남은 인생이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사별이나 이혼으로 홀로된 후 여생을 홀로 지내기를 당연하게 여겼던 과거의 고령자와 달리, 몸과 정신이 강해진 신(新)중년(60~75세)들은 점점 적극적으로 '제2의 동반자'를 찾아 나서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혼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집단은 60대 이상의 신중년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홀로됐을 경우 재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또는 '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20대 6%, 30대 14%, 40대 15%, 50대 18% 등 모두 20% 선 아래였다. 반면 60세 이상은 4명 중 1명(23%)이 재혼에 긍정적 표를 던졌다. 다른 사회적·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보수적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 계층이 '재혼'에 대해서는 유독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이철원 기자
본지가 결혼 정보 회사 '선우'와 함께 한 설문에서도 신중년 300명 중 절반가량(45%)이 '사별·이혼 후 다른 이성을 애인으로 사귀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고 답했다. 60대 이후의 재혼에 대해서도 40%가 '찬성'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결혼 생활을 30~40년씩 한 신중년층은 오랜 경험을 통해 인생에서 배우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면서 “배우자가 없을 경우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재혼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애·재혼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개방적인 사고를 갖게 된 신중년은 ‘짝’을 찾기 위해 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복지관의 저렴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나서 편하게 교제를 시작한다.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카카오톡 등 휴대폰 메신저 서비스를 이용해 밀어(蜜語)를 주고받는다. 본지가 만난 신중년 커플들은 1만원짜리 한 장으로 즐기는 ‘국수 미팅’, 제주도 여행, 함께 아르바이트하기 등 젊은이 못지않은 다양한 형태의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을 내는 신중년이 늘자 관련 산업도 빠르게 팽창 중이다.

실제 재혼에 나서는 신중년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2013년 60~74세 재혼 건수는 6571건으로 20년 전(1851건)의 3.5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재혼자에서 신중년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에서 6.3%로 갑절 이상이 됐다. 과거에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 눌려 재혼을 꺼렸던 여성들의 변화는 더 선명하게 보인다. 신중년 여성의 재혼은 2013년 2079명으로 20년 전의 5.4배 수준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