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아가는 중년 삶의 이야기

특별기사이야기

[6075 新중년] [1] 日帝시대, 6·25 전후 태어나 IMF때 경제 무대 퇴장 "100세 시대 노후 위해 '평생근로' 해야하는 첫 세대"

惟石정순삼 2014. 2. 4. 18:31

[新중년층 그들은 누구인가]

최빈국서 경제발전 토대 다지고 70~80년대 '한강 기적' 이끌어

흔히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를 산업화 역군(役軍)이라고 부르지만, 산업화 역군의 '원조(元祖)'는 신중년(1938~1953년생)이다.

신중년은 '일제강점기→8·15 광복(1945년)→한국전쟁(1950~1953년)→산업화 시대(1960~80년대)'를 거쳐 IMF 외환 위기(1998년)와 글로벌 금융 위기(2008년)까지 한국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은 세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박사는 "(신중년은) 한국이 세계사에서 아무런 존재감이 없던 때부터 경제 발전의 밑바닥을 다진 세대"라고 했다.

신중년은 일제강점기 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태어나 가족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대일항쟁기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일제에 강제징집당한 한국인은 146만명이다. 이들은 신중년의 부모 세대에 해당한다. 정진화(73)씨는 "우리 세대를 보면 사할린에 끌려간 아버지와 편지 몇 통 주고받은 게 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추억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국전쟁 때는 형과 오빠를 학도병으로, 삼촌을 국군으로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 1951년 초 중공군의 대진격 이후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다. 신중년 중에는 부모·형제를 북녘에 둔 경우가 적지 않다. 몸소 겪은 전쟁의 고통도 생생하다. "피란촌에서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청소년기는 전쟁 폐허 속 '세계 최빈국' 시절이었다. 당연히 고등교육은 꿈꾸기 어려웠다. 신중년의 학력 분포(2010년 기준)를 보면 10%만 대학 문턱을 넘었다. 고등학교 졸업자는 17%, 중학교 졸업자는 15%이다. 나머지 절반 이상의 신중년이 초등학교만 나왔거나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1970년대에 시작된 '한강의 기적'부터 신중년의 '성공 시대'는 시작된다. 1980년대 한 해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어섰고, 국민소득은 1980년 38조원대에서 1990년 192조원, 2000년 600조원으로 20년 만에 15배나 늘었다. 이런 시기에 신중년은 대기업의 중역으로, 정치계의 민주화 세력으로, 학계의 중견으로 꽃을 피웠다.

그러나 영광은 1997년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로 사그라지고 만다. 당시 이들은 45~60세로 상당수가 한창 일할 나이였으나 일순간에 한국 경제 무대 중앙에서 퇴장됐다. 신입 사원보다, 대리·과장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의 칼날을 가장 먼저 맞았다.

이후 일부는 창업, 일부는 재취업 등을 하기도 했다. 성장 시대 월급쟁이들의 컨센서스였던 '평생직장'이 무너진 뒤 '평생직업'이란 말을 처음 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하다. 연세대 사회학과 염유식 교수는 "신중년의 대다수는 '100세 시대'를 맞아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평생 근로'를 해야하는 첫 세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2부 [1] 신중년은 제2 전성기

-김병우 현대요업 사장
수차례 시련 끝 52세 때 창업, 60세 넘기며 본격 궤도 올라… 성공 비결은 '꼰대' 습성 버리기

전북 익산에 있는 벽돌 제조업체 '현대요업'. 다 구운 벽돌을 카트에 싣는 작업이 한창이다. 직원들 사이에 팔순의 김병우(80) 현대요업 사장이 껴 있다.

"제가 느리면 전체 작업에 방해가 돼요. 속도를 맞출 수 있으니 하는 거죠."

회사에서 누구보다 왕성함을 과시하는 김 사장. 그는 "인생 팔십을 살고 보니 내 인생의 황금기는 6075 신중년 때였다"면서 "60이 넘어 뭔가를 시작하는 게 왜 두려운가. 그 '젊은 나이'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실패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북 익산에 있는 벽돌 제조업체 현대요업에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직원들은 계속 쉬라는데도 김병우(80) 사장은 요지부동이다. 김 사장은“이렇게 땀흘려 일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냐”고 했다. 김 사장이 카트로 옮기고 있는 갓 구워나온 고령토 벽돌들은 레일을 따라 트럭에 실려 전국의 건설 현장으로 전달된다. /신현종 기자
공무원을 하다 46세 때인 1978년에 그만두고 사업에 도전했다. 몇 번의 시련을 거쳐 52세 때인 1986년 지금의 현대요업을 세웠다. 이 회사는 김 사장이 60세를 넘겼을 때 본격 궤도에 올랐다. 그가 신중년을 전성기로 꼽는 이유다. 회사는 현재 매년 70억~8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 사장은 성공의 가장 큰 비결로 '꼰대' 습성 버리기를 들었다. 공장 사무실 책상 위엔 메모지로 가득하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다가 처음 듣거나 평소 궁금했던 얘기가 나오면 이렇게 적어둬요.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존에 자기가 알고 있던 것에만 의존하죠. 그러곤 젊은이들을 가르치려 들어요. 그럼 백전백패합니다."

김 사장은 현대요업을 세운 후부터 28년째 서울에 있는 가족을 떠나 전북 익산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다소 고되지만 출퇴근 시간도 아깝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지금의 생활을 죽기 직전까지 하겠다고 했다. 그에게 '6075 신중년' 시기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은, 무척 젊은 나이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나 멋져 보이지 않아요? 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나요. 조금이라도 젊을 때 뭐라도 하나씩 시작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