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공동 4위… "우리끼리 연장전 할까" 농담도
1~4라운드 같은 組, 경기파 기록해도 서로 격려… "플레이어스 대회 출전" 우즈, 최경주에 털어놔
'오거스타 신(神)'이 12일(한국시각) 제74회 마스터스 그린 재킷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는 필 미켈슨(40·미국)이었다. 하지만 타이거 우즈(35·미국)와 한국의 최경주(42)도 당당한 주연이었다.
우즈는 마스터스를 통해 불륜 스캔들을 이겨냈고, 최경주는 우즈와 나란히 공동 4위에 오르며 세계 골프팬을 놀라게 했다. 더구나 최경주는 '골프황제'와 1~4라운드를 같은 조에서 경기하면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경기 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경주는 "우즈와 치면서도 중압감을 이겨내고 마음먹은 대로 플레이했다. 골프 인생의 자신감을 다시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대회 주최측의 조 편성에 따라 1·2라운드를 함께 했고, 3·4라운드는 성적순으로 같은 조에서 경기했다.
두 사람은 4일간의 동행(同行)을 마감하며 이날 4라운드 18번 홀 그린으로 올라가면서 손을 꼭 잡았다. 인생의 수렁에서 돌아온 우즈와 2년간 최악의 부진에서 벗어난 최경주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을까. 최경주 선수에게 나흘간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물어봤다.
■"우리끼리 내일 연장전 할까"
최경주는 "서로 격려하며 나흘간의 힘든 시간을 이겨내서인지 그린으로 가며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함께 걷게 됐다"고 했다. 우즈도 최경주에게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18번 홀 퍼팅을 끝내고 스코어카드를 제출하러 가던 중 우즈는 웃으며 최경주에게 한마디 던졌다. "우리 내일 오전 8시 오거스타 1번 홀에서 다시 만나 연장전을 치르자"는 것이었다. 최경주도 크게 웃으며 "좋다. 나흘간 못 가린 승부를 내일 가리자"고 화답했다.
- ▲ 이제 필드의 단짝이 된 걸까. 나흘 내내 같은 조로 경기를 치른 최경주(왼쪽)와 타이거 우즈가 마스터스 4라운드 18번 홀에서 손을 잡고 그린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 AFP연합뉴스
최경주와 우즈는 4라운드 합계 11언더파 277타 동타였다. 1라운드에서 최경주가 5언더파(67타), 우즈가 4언더파(68타)로 출발했지만, 3·4라운드에는 2언더파(70타)·3언더파(69타)로 라운드 스코어까지 똑같았다. 마스터스 대회 관계자는 "나흘간 같은 조에서 플레이한 것도 드문 일인데, 스코어까지 똑같은 경우는 처음 본다"며 "마스터스 역사에 남을 진기록"이라고 했다.
헤어지기 전 최경주가 "언제 또 필드에 나올 것이냐"고 묻자, 우즈는 "5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 출전할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미국 기자들이 우즈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도 "시간을 갖고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흐리던 우즈였는데, 최경주에게는 심중을 털어놓은 것이다.
최경주가 이날 10번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한때 공동 선두에 올랐을 때 우즈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우즈가 2개의 이글을 뽑아낼 때는 최경주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들은 나흘간의 동행으로 '필드의 절친(절친한 친구)'이 됐다.
■"갤러리의 소란이 걱정돼 기도까지 했다"
최경주는 "처음에 우즈와 같은 조에 편성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도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우즈를 쫓아다니는 엄청난 갤러리의 소음이 부담스러웠다. 또 우즈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도 됐다"고 했다. 그러나 경기 당일 우즈를 본 최경주는 "정말 잘 돌아왔다. 다시 골프에 집중하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우즈를 격려했다. 다정하게 대하는 최경주에게 우즈도 마음을 열었던 모양이다.
최경주는 "우즈가'감사합니다' '배고파' 같은 간단한 한국말을 하는데, 친해지면서 '이놈, 저놈' 하는 한국식 욕도 하더라"고 했다. 특히 2·3라운드에서도 두 사람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보였다. 미국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우즈는 "K.J.가 영어가 늘어 예전보다 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답했다. 최경주는 "우즈가 자신 때문에 내가 피해를 본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파만 해도 '나이스 파'라고 격려하더라"며 "예전의 우즈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미켈슨, 유방암 투병 아내와 감격 나눠
4R 버디 5개… 세번째 우승 '불륜 스캔들' 우즈와 대조… 팬들, 더 큰 박수 보내
'꿈의 무대' 마스터스를 제패한 필 미켈슨은 경기가 끝나자 아내 에이미(Amy)부터 찾았다. 18번 홀 버디 퍼팅을 성공할 때까지 긴장의 끈을 풀지 않던 냉혹한 승부사의 모습은 더 이상 없었다.
지난해 5월 유방암 판정을 받은 뒤, 처음으로 필드에 나와 자랑스러운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미켈슨의 눈에 들어왔다. 뜨겁게 포옹하며 입맞춤하는 부부를 두 딸과 막내아들이 감쌌다. 에이미는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눈물을 훔쳤다. 아내에 이어 자신의 어머니까지 지난해 7월 유방암 판정을 받자, "가족이 먼저"라며 골프대회 참가 일정을 대폭 줄였던 미켈슨이었다. 오거스타의 신(神)은 처음부터 역경을 함께 헤쳐나가는 이 부부에게 그린 재킷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미국 언론들은 "마스터스 사상 가장 감동적인 우승 세러모니였다"고 전했다.
- ▲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 아내와 뜨겁게 포옹했던 필 미켈슨(왼쪽)은“그동안 암과 싸워준 아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 AFP연합뉴스
이런 미켈슨의 모습은 불륜 스캔들로 홍역을 치른 우즈의 그것과는 묘한 대조를 이뤘다.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우즈에게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미켈슨에게는 이보다 몇 배는 큰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만큼은 미켈슨이 확실한 승리자였다. 이날 우즈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들에게 했던 "미켈슨이 가장 유력한 라이벌일 것"이라는 '유언'이 기억났을지도 모른다. 우즈는 복귀와 함께 우승을 하고 싶다는 욕구에 불탔지만, 결국 그린 재킷은 아버지 말대로 미켈슨에게 돌아갔다.
미켈슨은 12일(한국시각)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골프장(파72)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5개의 버디를 잡아내며 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우승했다. 2004년과 2006년에 이어 세 번째 그린 재킷이었다.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에 1타 뒤진 11언더파로 4라운드를 출발한 미켈슨은 8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공동 선두에 올랐다. 웨스트우드가 9번 홀 보기로 뒤처지자, 미켈슨은 12·13번 홀 연속 버디로 최경주의 추격마저 뿌리쳤다. 결국 웨스트우드에 3타 차 승리를 거둔 미켈슨의 마지막 라운드 무결점 플레이는 마스터스에서도 보기 드문 '깔끔한 마무리'로 기록됐다.
미켈슨이 이번 대회에서 우즈에 승리를 거뒀다고 해도 앞으로 미켈슨의 시대가 열렸다고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그만큼 5개월 만에 돌아온 우즈의 경기력은 '골프 황제'다웠다. 우즈는 3·4라운드 들어 흔들린 티샷과 잦은 퍼팅 실수를 보이면서도 나흘 내내 언더파 스코어를 기록했다. 1라운드와 4라운드에서는 각각 이글 두 개씩을 기록했다. 여전히 차원이 달랐던 우즈의 플레이는 그의 사생활에 등을 돌렸던 팬까지 다시 불러 모으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최고의 골퍼 자리를 둘러싼 두 사람의 대결은 이번 마스터스로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골프팬들도 열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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