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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기사이야기

잔디는 알고 있다, 페더러가 왜 강자인지…

惟石정순삼 2009. 6. 26. 08:49

윔블던 코트선 공 빨라져 순발력·낮은공 처리 관건…
가장 예민한 운동은 골프 야구는 인조가 수비 쉬워

현재 영국 런던 근교에서 열리고 있는 윔블던 테니스대회는 잔디 코트가 보기만 해도 산뜻하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잔디는 '전장(戰場)'의 다른 이름이다. 잔디는 그저 선수들이 밟고 서 있는 무대가 아니라 승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이다. 테니스 4대 메이저대회 중 유일하게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윔블던에선 어떤 스타일의 선수가 유리할까. 골프는 잔디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고, 축구나 야구도 잔디와 친해야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윔블던의 최강자로 꼽히는 로저 페더러도 잔디 코트 위에서 빠른 바운드를 쫓다보면
                                  종종 미끄러져 넘어진다./AP연합뉴스
낮고 빠르게 튀는 윔블던 코트

8㎜ 길이의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윔블던에서는 공이 클레이(clay·흙)나 하드(hard) 코트보다 훨씬 빠르고 낮게 튄다. 또 코트를 딛는 발이 쉽게 미끄러져 선수들이 빠르게 튀는 공을 쫓기가 더욱 힘들다. 이 때문에 다른 코트에 비해 랠리가 짧아지고 '서브 앤 발리' 등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가 유리하다.

윔블던에서 가장 위력적인 선수는 단연 로저 페더러(
스위스·세계 랭킹 2위)다. 페더러는 잔디 위의 순발력과 낮은 바운드의 공을 처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의 특기인 공을 깎아치는 슬라이스는 잔디에서 위력을 더한다. 테니스광인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페더러의 플레이를 보는 것은 종교적인 체험 같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윔블던 코트는 2001년부터 100% 라이그래스(ryegrass)를 쓰고 있다.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는 한지(寒地)형 잔디인 라이그래스는 잎이 질겨 내마모성이 좋으나 벼처럼 포기로 번식하기 때문에 한번 망가지면 잔디가 다시 올라오기 힘들다. 윔블던이 코트 중간 중간 맨땅이 많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윔블던은 코트 관리를 위해 해마다 1t에 가까운 잔디 씨를 뿌린다.

             US오픈에 출전한 이마다 류지가 커다란 디봇(뜯긴 잔디조각)을 날리며 아이언 샷을
          구사하고 있다. 양잔디 중에서도 벤트 그래스가 가장 디봇이 크게 생긴다./AP연합뉴스
뻣뻣한 잔디에선 백스핀 덜 먹어

잔디의 영향력이 가장 크게 미치는 스포츠가 골프다. 국내에선 난지(暖地)형인 한국잔디가 가장 많이 쓰이고, 흔히 '양잔디'라고 부르는 켄터키 블루그래스(kentucky bluegrass), 벤트그래스(bentgrass) 등 한지형 잔디를 쓰는 골프장도 있다. 페어웨이 잔디는 다양하지만 그린은 거의 전부가 벤트그래스를 쓴다. 가장 섬세한 데다가 낮은 키로 자라서 3㎜ 길이까지 짧게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1㎡당 가격(1만8000~2만원)도 가장 비싸서 한국잔디(4000~5000원)의 4~5배에 이른다.

한국잔디연구소 심규열 부소장은 "한국잔디는 상대적으로 뻣뻣해 공이 잔디 위에 얹혀 있게 돼 골프 초보자들이 선호한다"며 "양잔디는 공이 땅에 붙어 있어 정확히 때려야 비거리와 방향성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런 성격 때문에 두 잔디는 스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김재열
SBS 골프 해설위원은 "한국잔디 페어웨이에선 공이 잔디 위에 떠 있어 임팩트 때 양잔디에 비해 백스핀이 적게 먹는다"며 "페어웨이가 양잔디일 경우 그린에 공을 바로 세우기 좋지만 한국잔디일 때는 런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선수들이 150야드 이내에서 그린을 공략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이점이다.

한편 러프의 경우 버뮤다그래스 등 양잔디는 한국잔디보다 훨씬 촘촘하고 질겨 탈출이 힘들다. 그린 위에서도 잔디 결을 신경 써야 한다. 잔디연구소 심규열 부소장은 "퍼트 선과 순방향으로 잔디가 깎여 있으면 공이 조금 떠 빨리 구른다"고 말했다.

야구 수비는 인조잔디가 더 수월해

축구에선 잔디 종류에 따라 공이 굴러가는 거리가 달라진다. 양잔디 그라운드는 한국잔디보다 공이 1.7배 높이 튀고, 1.6배 더 멀리 굴러간다고 알려져 있다. 또 한국잔디보다 부드러워 부상 위험이 적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대전구장은 전국 10개 월드컵경기장 중 유일하게 한국잔디를 깔았다. 그러나 잔디가 너무 뻣뻣하다는 불만 때문에 대회 개막을 앞두고 양잔디를 다시 심어야 했다.

프로야구는 인조잔디냐 천연잔디냐에 따라 수비가 달라진다. 천연잔디는 아무리 잘 관리해도 불규칙 바운드의 위험이 있고, 바운드가 상대적으로 낮게 튀어 수비가 까다롭다. LG 외야수 이진영은 "바운드가 일정한 인조잔디가 수비는 더 쉽지만 잘못 슬라이딩을 하면 화상 등 부상을 당할 위험이 높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정과 평화의 상징인 초록색이 스포츠에서는 피 말리는 승패의 세계를 대표하는
             배경색이 된다. 골프는 잔디 상태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선수들은
             잔디 길이 3~4㎜에 불과한 그린에서 잔디 결까지 살펴야 한다.
             사진은 필 미켈슨이 지난 19일(현지시각) US오픈 1라운드 4번홀에서 퍼팅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