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저지르곤 "우리 엄마가 제일 걱정", 잔인한 장면에 무덤덤… 극단행동 탐닉
살인 안 저질러도 주위에 많아, '출세위해 남 해코지' '사기치고 호화생활'
유년시절부터 증세보여… 국가 관리 시급
"얼굴이 공개돼서 내 자식들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냐." "범죄 과정을 담은 책을 내서 인세(印稅)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연쇄 살인범 강호순(38)이 수사과정에서 내뱉은 말 속에는 죽음을 당한 피해 가족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인면수심(人面獸心) 모습에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정신과 의사들의 분석이다. 사이코패스란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반(反)사회적 인격 장애의 극단적인 케이스를 말한다.
◆공포 모르는 '뱀 인간'
10여 년간 사이코패스 형태의 환자 위주로 정신과 병원을 운영했던 세화정신과 사승언 원장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살인을 해서 정신 감정을 받으러 온 경우가 있었는데 제일 먼저 '우리 엄마가 속상해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며 "그들은 피해자와 그 가족이 겪을 고통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쫓아다닌 여성을 2년간 감금하고 강제로 전신에 문신을 박았다가 붙잡혀 온 30대 남자 사이코패스의 경우도 처음 반응은 자기 부모 걱정이었다고 사승언 원장은 전했다. 이들은 양심을 지키고 남을 배려하는 '수퍼 에고(super-ego·초자아·超自我·정신 내에서 사회가치, 양심, 이상과 관련 있는 영역)' 기능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물이 죽는 끔찍한 사진을 보여줘도 동공이 커지지 않는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아도 손에 땀이 나지 않으며, 롤러코스터를 태워도 심장 박동이 빨라지지 않았다. '뱀 인간'이라는 얘기다. 신경의학적으로는 인간의 감성을 관할하는 뇌 앞쪽 전두엽(前頭葉)과 중심부 변연계(邊緣系)와의 연결 회로에 결함이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건국대병원 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사이코패스들은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기 때문에 강간이나 살인 등 아주 극단적인 행동을 탐닉하게 된다"며 "상담을 하다 보면 '뱀 같은 놈'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남을 해롭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감이나 공포감이 없기 때문에 '자기 억제'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이코패스의 범죄는 연쇄적이고 습관화된 형태를 띤다. 2006년 서울에서 쇠망치를 휘둘러 13명을 살해한 정남규도 그렇고, 2004년 노인과 부녀자 20명을 살해한 유영철도 그랬다.
◆사회·조직 속의 사이코패스들
정신과 학계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성인의 약 1%가 이 같은 사이코패스적(的) 성향을 띠는 것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상당수는 범죄와 연관되지 않고 사회에서 암약한다.
사이코드라마를 통한 정신 분석 전문가인 용인정신병원 강남분원 김수동 원장은 "회사나 조직에서 자기 출세나 성공을 위해 남을 무자비하게 짓누르거나 해코지하는 사람들이 그런 케이스"라며 "대형 사기를 쳐놓고도 자기는 호화 생활을 하는 사람도 일종의 사회적 사이코패스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들은 대놓고 남과 싸우거나 갈등 상황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정신질환으로 인식되어 병원에 오는 경우도 드물다. 김 원장은 "진료를 받더라도 자기만의 생각을 뇌에서 꽉 움켜쥐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정신 치료가 가장 힘든 케이스"라고 말했다.
사이코패스는 어린 시절부터 '품행(品行)장애'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 정신과 의사들의 지적이다. 10~12세 이전부터 친구나 자기보다 나이 어린 아이들을 자주 때리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고도 태연하다. 방화(放火) 수준의 불장난을 할 때도 있다. 쥐를 잡아 직접 죽이거나, 이유 없이 학교에 결석하는 경우도 잦다.
서울대의대 소아정신과와 서울시소아청소년센터가 2005년 서울 시내 초·중·고 학생 2672명을 대상으로 부모 등과 1대1 면접 조사를 통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체 학생의 1.5%가 사이코패스 징조를 보이는 품행장애 성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병원 김붕년 교수는 "그 중에서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남에 대한 동정심이 없는 돌같이 차가운 '칼로스(callous·돌 같은)' 타입이 나중에 사이코패스가 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기에 품행장애를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이처럼 사이코패스 대부분이 선천적인 기질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다 성장과정에서 불우한 환경 속에 놓이면 폭력 성향이 증폭되고 고착화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혼·이산 등으로 가족 해체 현상이 늘어나고, 폭력이 용납되고, 노력하는 과정은 무시되고 '성공 제일주의'가 확산될수록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이코패스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품행장애를 보이는 청소년을 조기 발견하여 국가가 치료를 지원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사이코패스 범죄자도 성범죄처럼 전자팔찌 등을 채워 감시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코패스 (psychopath)
정신을 뜻하는 '사이코(psycho)'와 병리 상태를 의미하는 '패시(pathy)'를 합쳐 만든 용어다. 반(反)사회적 인격 장애의 극단적인 증세를 가진 사람을 뜻한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사회 관습에 역행하여 지나치게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고 자기를 위해 남을 착취하는 '행동 이상' 질환이다. '사이코패스'는 여기에다 죄책감이나 타인에 대한 동정심마저 없는 '심리 이상'이 합쳐진 경우다. 정신질환 중 최악의 경우로 꼽힌다. 19세기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프 피넬이 최초로 언급하면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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