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로서 명성을 쌓고 있었던 미켈란젤로는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특별한 부탁을 받게 된다.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 벽화를 제작해 달라는 의뢰였다.
신앙심이 깊었던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요구에 거절하지 못하고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그 작품이 미켈란젤로 불후의 명작 ‘최후의 심판’이다.
‘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의 죄를 가려 선한 자는 천국으로, 악한 자는 지옥으로 보낸다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거대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서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그 작품에 매달린다. 특히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기에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선반에서 일과 수면을 함께 취해야만 했다.
프레스코 기법이란 젖은 석회 위에 물감을 입혀 그리는 기법으로 화가는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 프레스코화의 가장 큰 어려움은 한번 그려 놓은 그림은 수정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제작할 때 사람들에게 “나는 좋은 곳에 있지도 않고 화가도 아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였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작품에는 400여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성인과 사도에 둘러싸인 그리스도는 이 작품의 구심점이다. 여기서 황금빛 후광이 비추는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는 심판자의 모습으로 오른손을 들고 있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는 성모는 왼쪽에 앉아 있다.
공간과 시간적 배경을 무시한 채 동일한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사람들의 군상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을 그리면서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에 치중했다. ‘최후의 심판’이 완성됐을 때 인물들의 나체상을 본 사람들은 목욕탕에나 어울리는 그림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비난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지만 성스러운 성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철거를 요구하는 비난의 소리가 거세지자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교황 피우스 4세도 어쩔 수 없이 프레스코 벽화를 철거하기보다는 이 그림 속 나체의 인물들에게 옷을 입히는 것으로 비난을 불식했다.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드물게 귀족 출신의 조각가이다. 그는 조각가뿐만 아니라 건축가·화가로서 16세기 유럽 전체에서 사랑을 받았다.
하찮은 계급인 조각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 치하에 있던 공방에서 조각과 그림을 공부하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한다. 미켈란젤로는 고대 예술을 부흥시킨 르네상스 예술의 정점에 있지만 한편으로 그는 르네상스 예술의 쇠퇴기를 함께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