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주제를 은유하기 위해 그려졌던 풍경은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으로 그려지게 됐다. 초상화와 풍경화가 결합해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초상화와 풍경화를 결합시킨 대표적인 작품이 토머스 게인즈버러(1727~1788)의 ‘앤드류 부부’다. 이 작품은 게인즈버러가 고향에서 활동하고 있던 20대에 완성했다.
게인즈버러는 네덜란드와 프랑스 회화에서 영향을 받아 풍경화를 사랑했지만 영국은 초상화의 인기가 높았다. 그는 풍경화와 초상화를 결합시켜 제작해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 속의 젊은 부부는 로버트 앤드류와 프란시스 카터다. 그들은 1748년 스물두 살과 열여섯 살의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고 이 작품은 그들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결혼 직후에 제작됐다.
참나무 뒤로 펼쳐지는 전원은 그들 부부의 사유지인 어베리다. 구름이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이 낮게 드리워져 있는 영국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젊은 신부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최신식 옷을 입고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있다. 신부 옆에 있는 앤드류는 사냥꾼의 옷을 입고 엽총을 옆구리에 낀 채 자신의 영지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서 있다.
자신들의 사유지를 드러내고 싶어서 젊은 부부는 화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들 젊은 부부는 자신들의 소유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젊은 부부의 사회적 지위가 곳곳에 나타나 있다. 앤드류가 엽총을 들고 있다는 것은 사냥면허를 소유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냥면허는 특권층만 소유할 수 있었다. 그는 여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표정은 사무적이다.
앤드류의 발 옆에는 사냥개가 서 있다. 전통적으로 개는 부부 간의 정절을 상징하지만 결혼기념 초상화였던 이 작품에서 개가 등장하는 것은 의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로코코 양식의 의자에 앉아 있는 신부의 드레스는 그녀가 부유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평범한 가정에서는 공단 드레스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고가였다.
그녀는 가장 좋은 옷차림을 하고 예절 바르고 반듯한 자세로 앉아 있다.하지만 신부의 무릎 부분은 미완성이다. 게인즈버러가 미완성인 채 남겨 둔 부분은 책이나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일부러 남겨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이 작품에서 추수가 끝난 밭 앞에 곡물이 수북이 쌓여 있다.
곡물은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결혼기념 그림에 들어가는 상징물이다. 그 뒤로 넓게 펼쳐져 있는 초원 한가운데 울타리 안에 양떼들이 풀을 뜯고 있는데 당시 양떼를 가둬 두는 것이 유행이었다. 교회의 탑은 이 작품의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한다. 게인즈버러가 태어났던 서드베리의 성 베드로 성당의 탑이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