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에서는 기품 있고 우아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없는 귀족들이 신분상승을 꿈꾸던 신흥 부자들과 결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영국 상류사회에 퍼져 있던 정략결혼으로 인해 불행한 결혼생활이 사회적으로 비난받기 시작했다.
윌리엄 호가스(1697~1764)는 당시 상류사회의 치부 중 하나인 정략결혼을 ‘유행에 따른 결혼’이라는 작품으로 풍자했다.
결혼을 통해 돈으로 신분을 산 중산층의 여성과 몰락한 가문의 남자, 그들의 결혼생활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유행에 따른 결혼’은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계약결혼’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비판하고 부부간의 애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제작됐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는데 모델은 스콴너더필드 백작의 아들과 상인의 딸이다. 실제로 상인의 딸의 정부였던 변호사 실버팅은 질투에 눈이 멀어 매춘부와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던 스콴너더필드 백작의 아들을 죽이고 그 사건으로 젊은 미망인은 독약을 먹고 자살한다.
이 작품에서 황금색 옷을 입은 백작은 자신의 집안 혈통을 자랑하기 위해 나무 그림의 가계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원형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안경 쓴 붉은 옷의 남자는 도시의 상인으로서 결혼지참금 계약서를 읽고 있다. 탁자 사이에 있는 남자가 백작의 서기다. 그는 상인에게 받은 지참금을 백작에게 넘겨 주고 있다. 신부의 지참금은 창밖으로 보이는 짓다 만 신축 건물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는 프랑스식 건물은 물론 패션도 프랑스 스타일이 유행이었다. 허영에 들뜬 귀족들은 유행을 위해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다.
상인 뒤에 앉아 있는 신부는 변호사와 대화를 하고 있다. 변호사는 나중에 신부의 애인이 되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호가스는 암시하고 있다.
신부 옆에 있는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식 옷차림을 하고 있는 백작의 아들은 이 결혼식에 아무 관심이 없고 거울을 보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아들 발밑에 있는 두 마리의 개는 결혼의 상징이다. 결혼식에 관심이 없는 신랑 신부들처럼 개들도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계약결혼을 시작으로 ‘유행에 따른 결혼’ 시리즈는 빠르게 결혼생활이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화폭에 담아냈다.
윌리엄 호가스는 ‘유행에 따른 결혼’ 시리즈를 판화로 제작해 대중들에게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 판화본이 수천 장 팔렸지만 호가스는 원화를 비싼 가격에 팔기 위해 1745년까지 전시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만큼 비싼 가격에 팔리지 않았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