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부터 미술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시작하면서 신고전주의가 등장한다. 18세기 전반 장식적이고 우아한 그림에 싫증을 느끼면서 등장한 신고전주의는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신고전주의는 애국적·영웅적인 주제를 명확하면서도 단순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프랑스 혁명을 이끈 세력들은 혁명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정치적으로 그림을 이용했다.
신고전주의의 선구자는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다. 다비드는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었지만 프랑스 혁명 정부에 가담하면서 나폴레옹의 공식 화가가 된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작품을 남겼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알프스를 넘는 보나파르도’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시절부터 선전미술과 정치신문 삽화 등을 통해 정치적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가 가질 수 있는 파급력을 일찍이 깨달아 그림의 주문과 검열, 수상제도를 철저히 운영해 나갔다. 나폴레옹에게 화가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높여 주고 훗날 자신이 만든 정책을 빛내 줄 수 있는 존재였다.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보나파르도’는 나폴레옹이 스페인 왕 카를로스 4세의 초상화를 보고 의뢰한 작품이다. 다비드는 새로운 시대에 등장한 영웅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미화시킨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 이후 3년 동안 조수들과 네 점의 복제화를 더 그렸다. 사나운 말 위에 앉아 나폴레옹은 비탈길을 행해 돌진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알프스 저 너머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고, 그의 발밑에는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대제와 샤를마뉴 대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180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도는 말 대신 산길에 강한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고 한다.
다비드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나폴레옹에게 직접 모델을 해 달라고 청했으나 나폴레옹은 거절했다. “초상화와 내가 닮고 안 닮고는 중요하지 않다. 천재의 창의력을 발휘해 그리면 된다”고 했다.또 그는 전쟁터를 배경으로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앞발을 든 말 위에 평온한 모습으로 그려 달라고 주문했다.
다비드는 이 작품에서 역사적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상화한 통치자의 모습을 표현했다.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타고 있는 말을 표현하기 위해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의 기마상에서 말을 보고 묘사했으며, 말에 앉아 있는 나폴레옹을 그리기 위해 제자를 말에 태워 모델로 삼았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