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을 향해 대담한 자세로 기대 누운 여인의 누드화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그려졌지만, 고야의 유일한 나체상인 ‘벌거벗은 마하’는 신화나 성경의 내용을 빌려 표현한 것이 아닌 현실 속 여인의 관능미를 표현해 종교재판까지 열렸던 작품이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928)의 ‘벌거벗은 마하’는 동일한 포즈의 모델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의 ‘옷을 입은 마하’와 짝을 이룬다. 이 두 작품의 모델은 동일한 인물로서 옷을 입은 모습과 옷을 벗은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벌거벗은 마하’는 벌거벗은 여인이 녹색조 터키 풍의 긴 소파에 대담한 포즈로 누워 있다.마하의 등을 받치고 있는 레이스로 장식한 비단 쿠션과 그 당시 상류층에서 침대 대용으로 쓴 소파는 이 작품의 모델이 상류층임을 암시한다.
두 팔을 머리 뒤로 받치고 시선을 관람객에게 둔 마하는 벌거벗은 수치심보다 오히려 당당하다. 고야는 모델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을 배제했다.‘옷을 입은 마하’는 ‘벌거벗은 마하’ 이후에 제작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마하는 비단 허리띠와 금실로 수놓은 고급 구두를 신고 외출할 때 입는 볼레로를 입고 있다. 마하가 입고 있는 옷을 통해 상류층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녀의 포즈는 정숙한 상류층 여인의 자세가 아니다. 보통 귀족 여인들의 자세가 경직된 포즈지만 이 작품에서 마하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녀의 자세는 고야와 연인관계였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고야의 애인 알바공작 부인을 모델로 그렸다는 것이 통설이다. 알바공작 부인과의 사랑은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 작품이 알려지게 된 것은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던 고도이 재상의 소장품 목록에서부터였다. 고도이는 이 작품을 자신의 비밀 전시실에서만 전시했는데 그림을 본 사람들은 대담하고 선정적인 이 작품을 보고 소문을 퍼뜨렸다.
스페인은 가톨릭 종교의 영향이 커서 여성의 나체화를 용납지 않는 사회였다. 도발적인 이 작품을 보고 스페인 사회는 충격을 받는다. 세력가의 부인과 미천한 화가의 신분 차이를 뛰어넘은 사랑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당기기에 충분했고, 스페인 전역에 걸쳐 퍼진 악명은 종교재판까지 열리게 한다. 결국 이 작품은 그 당시 스페인 정부의 제지를 받아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못했다.
고야는 죽을 때까지 모델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아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고 알바공작 집안에서는 추문을 떨쳐버리기 위해 100년 후 알바공작 부인의 무덤을 공개하기로 했다. 가문의 치욕을 떨쳐버리고자 했지만 화가와 모델 알바공작 부인의 관계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사진설명:1796~1800년께,캔버스에 유채,98×191(위)·95×188,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