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가 위대한 과학자를 그린 유일한 작품은 ‘아내와 함께 있는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다.
이 작품은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저명했던 화학자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1743~1794)와 그의 아내 마리 안느 피에레트 폴즈(1758~1836)를 그린 초상화로서 18세기 초상화의 발전을 볼 수 있는 지표가 되는 작품이다.
라부아지에는 연소 반응에서 산소의 역할을 밝히고 화학반응에서 물질 보존의 법칙을 규명해 근대 화학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의 업적은 과학 분야에서 프랑스 혁명과 같은 큰 영향을 미쳤다. 실험 결과를 통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한 라부아지에의 저서 ‘화학 명명법·1787년’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학용어의 기초가 된다. 라부아지에와 결혼한 마리는 다양한 분야에 재주가 많았다. 남편에게서 화학과 수학을, 다비드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그녀는 어학에도 재능을 보여 남편을 위해 영어 논문을 번역하기도 했다. 또 그녀는 라부아지에의 중요 저서 ‘화학이론’에 삽화를 그려 실험의 내용을 그림으로 설명했다.하지만 라부아지에는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하고 장인 자크 폴즈와 함께 체포돼 1794년 5월 8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혁명파의 몰락으로 물러난 마리는 라부아지에의 실험 노트를 정리해 책으로 출판했다.
‘아내와 함께 있는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에서 마리는 남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관람자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라부아지에는 오른손으로 깃털 펜을 쥔 채 시선을 아내의 얼굴에 고정시키고 있다. 책상 위와 아래에는 실험도구들이 놓여 있으며 라부아지에 앞에 놓인 실험 노트는 1년 후에 ‘화학원론’으로 출간된다.
라부아지에는 검은색 양복을, 마리는 흰색 드레스를 입어 대조를 이룬다. 다비드는 과학자와 법률가로 활동하는 라부아지에의 직업을 나타내기 위해 검은색 양복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검은색은 진지함과 안정감을 나타낸다. 마리의 흰색 드레스는 순결과 부부의 행복을 상징한다. 화면 왼쪽 배경에 있는 드로잉 집은 마리의 것으로 그녀가 남편의 저서에 삽화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다비드의 이 작품은 라부아지에는 도의원으로 있을 때 다비드에게 그에게 그림을 배운 마리의 의뢰로 제작됐다. 당시 라부아지에는 프랑스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과학자로서도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다비드는 이 작품에서 라부아지에를 저명한 과학자로 표현하지 않고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으로 묘사해 가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