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에서 역사적 사건을 그린 그림들 대부분은 지도자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작품이지만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역사의 주체가 지도자가 아니라 민중이라는 것을 보여 준 작품이다.
들라크루아는 혁명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지식인으로서 동시대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작품을 제작했다.
혁명의 동기와 희망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들라크루아가 1830년 7월 파리 시민들의 봉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샤를 10세의 절대주의 체제에 반발해 파리 시민들이 일으킨 소요사태 중 가장 격렬했던 7월 28일의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으로 정치적 목적을 담은 최초의 근대회화다.
이 작품에서 하늘을 덮고 있는 포화 연기 사이로 여인이 중앙에서 깃발을 들고 민중을 이끌고 있다. 옆에 총을 든 어린 소년과 총칼을 높이 치켜든 사람들이 돌과 보도블록, 건축물로 세운 임시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진하고 있다. 어두운 하늘은 혼란스러운 대적 상황을 암시한다.
화면 오른쪽 포화 연기 사이로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혁명 당시 노트르담 성당의 탑에 아침부터 삼색기가 꽂혔다.
여인은 프랑스 대혁명 당원이 쓰던 붉은 모자 프리지아를 쓰고 오른손에 삼색기를 들고 있다. 삼색기는 1789년 루이 16세가 봉기군의 적·청색 모표를 자신의 흰색 문장과 결합해 탄생시킨 것이다. 이 작품에서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인이 들고 있는 삼색기는 자유·평등·박애를, 총을 든 어린 소년은 프랑스 미래를 상징한다. 7월 혁명 당시 굶주린 고아들이 혁명에 많이 참여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인이 민중들과 다르게 옷을 벗고 있는데 여인이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라는 것을 보여 준다. 자유의 여신은 고대 승리의 여신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것이다. 자유의 여신은 화면 앞 길거리에 방치된 시신에서 느껴지는 잔인함과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들라크루아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실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 상황을 포착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요점을 확대시켜 사건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었다. 벌거벗은 여인이 상징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1830년 혁명과 함께 최고의 지위에 오른 루이 필립의 마음에 들어 국가에서 구입했다.
<박희숙 서양화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