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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이야기

[조인원의 사진산책] '뽀샵'도 사진이라 해 달라고?

惟石정순삼 2015. 7. 15. 07:43

입력 : 2016.07.14 03:13

'다큐멘터리 사진가' 매커리
사진 조작 논란 커지자 "난 기자 아니라 스토리텔러" 주장
합성 자체가 문제 아니라 진짜인 것처럼 속이는 게 문제
'뽀샵' 대세 되면 누가 사진 믿을까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사진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뽀샵'한 사진이 너무 많다. 뽀샵은 원래 디지털사진 보정 프로그램인 '포토샵(Photoshop)'의 은어였지만 이젠 다른 사진 보정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보정해도 그렇게 부른다. 요즘엔 사진을 손쉽게 고쳐주는 스마트폰 앱도 여럿 나오면서 사진의 어디가 진짜고 가짜인지 구별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친구 중에 뽀샵 고수가 있다. 사진이나 카메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앱으로 이리저리 만지고 바꾸는 데는 전문가다. 자기 사진은 물론 친구들 사진까지 받아서 예쁘게 만들어준다. 작은 눈을 크게 하는 건 기본이다. 낮은 코는 없는 그림자를 만들어 명암을 만들자 오똑한 코로 변했다. 튀어나온 옆구리를 들어가게 하고 다리를 길게 늘이자 존재감 없던 동네아저씨가 8등신 꽃중년으로 변신했다.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사진들만 뽀샵 대상인 건 아니다. 사진이 디지털로 기록되면서 과도하게 보정한 사진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나 사진기자들은 사진에 대해 과도한 수정이나 합성을 금한다. 이미 촬영된 사진에서 지나친 변화를 주고 싶은 유혹을 피하도록 훈련받는다. 사진을 보기 좋게 하려고 명도나 대비를 주는 정도라면 모를까, 있는 것을 지워 없애고 없는 것을 붙여 만드는 것은 못 하게 되어 있다. 최근 있었던 스티브 매커리(Steve McCurry)의 사례가 그렇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매커리는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런데 최근 이탈리아에서 연 전시 사진들에서 포토샵 합성이 드러났고, 과거 사진들에서도 조작 흔적이 여럿 발견됐다. 1983년 방글라데시에서 찍은 축구하는 아이들 사진은 여러 명 뒤에 있던 아이 한 명을 지운 흔적이 보인다. 원본에서 아이 한 명을 지우자 시선이 정확히 집중되면서 사진 구도가 완성되었다. 좋은 그림을 위해 찍은 사진에서 피사체 하나를 슬쩍 지운 것이다.

조작 논란이 커지자 지난 5월 매커리는 미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사진기자가 아니라 비주얼 스토리텔러 (Visual Storyteller)"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명이다. 과거 자신이 찍은 사진에 보이는 빼어난 구도와 색감의 비결을 묻던 사람들에게 "광선을 위해서 며칠이고 기다린다"고 강연했던 걸 기억하는 이들은 크게 실망했다.

광고나 패션 사진업계도 이제 포토샵이 없는 사진을 생각할 수 없다. 23년 넘게 광고와 패션 사진을 찍어온 한 사진가는 실제로 클라이언트들이 사진보다 포토샵 작업을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사진까지 요구한다고 했다. 모델의 얼굴 그림자는 분명히 왼쪽으로 생기는데 옆의 소품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자를 오른쪽으로 만들어 달라고도 한다. 이는 어설프게 떠도는 조잡한 합성 사진만 보고 와서 사진 대신 어색한 그림으로 만들어달라는 요구와 같다. 그러다 보니 광고사진의 모델 얼굴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포토샵으로 다듬어서 마네킹 피부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하는 것이 다르게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순수예술(fine art) 사진의 경우 사진을 합성하고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예술 표현 방식의 하나로 발전해왔다. 지난 2007년 국내에서 전시한 제리 율스만(Jerry N Uelsmann)과 매기 테일러(Maggie Talyor)는 암실작업이나 포토샵을 통해서 사진으로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를 재현했다. 국내에도 원성원이나 전정은 같은 작가들이 있다.

원성원은 직접 경험한 고통스러운 현실을 꿈에 빗대어 표현하는데, 밑그림을 먼저 그리고 직접 촬영한 사진 수천 장에서 일부만 따서 사진 한 장으로 합성한다. 전정은도 많은 풍경을 대형카메라로 일일이 촬영한 후 포토샵을 통해 환상적인 한 장의 풍경으로 조합해낸다. 수많은 사진에서 일부만 오려붙여 사진 한 장을 만드는 데 평균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사진가라고 하지 않는다. 사진은 그저 자신들의 작품을 위해 필요한 오브제(object·재료)일 뿐이라고 했다.

결국 사진의 합성 자체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과도하게 보정된 사진이 사람들을 진짜인 것처럼 속이는 데 있다. 사진은 눈으로 본 것을 정확히 재현한다는 단순한 믿음의 바탕 위에서 이제껏 존재해 왔다. 디지털 사진 보정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충 찍어서 포토샵 레이어로 합성하는 것이 사진의 완성일 수 있을까? 뽀샵 사진이 대세가 되어 밋밋한 사실에 가까운 사진들을 더 볼 수 없다면 아무도 사진을 믿지 않을 것이고, 사진의 가치는 사라질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