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인터내셔널팀 단장 기자회견
제이 “마지막조 큰 의미없어 아들 배치 뚜껑 열어보니 가장 중요한 조 됐다”
프라이스 “정신력으로 대등한 승부, 1점차 패배는 승리나 다름없어”
미국팀 대회 6연패 인터내셔널팀을 꺾고 골프 프레지던츠컵 6연패에 성공한 미국팀의 제이 하스 단장(우승컵 왼쪽)과 선수들이 11일 폐회식이 열린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미디어센터에서 우승컵을 놓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하스 단장의 오른쪽이 이날 배상문을 꺾고 미국팀의 우승을 확정 지은 하스 단장의 아들 빌 하스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95년 미국 뉴욕 주 로체스터의 오크힐 골프장. 13세 아들은 미국을 대표해 라이더컵(미국과 유럽의 골프 대항전)에 나선 아버지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양 팀의 승패가 걸린 대회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 18번홀 드라이버 샷 실수를 저질러 아일랜드 신인 선수(필립 월턴)에게 1홀 차로 패했다. 이 패배로 대회 승리는 유럽팀에 돌아갔다. 2015 프레지던츠컵(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인터내셔널팀의 골프 대항전)에서 미국팀의 단장인 제이 하스(62)와 선수로 출전한 아들 빌 하스(33)의 얘기다.
20년이 흐른 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 11일 양 팀이 종합승점에서 14.5-14.5로 맞선 가운데 배상문과의 싱글 매치 마지막 조에서 경기를 펼친 빌은 17번홀까지 1홀 차로 앞섰다.
18번홀에서 빌의 세컨드 샷이 벙커에 빠져 배상문에게 동점 기회가 만들어졌을 때, 제이 단장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러나 세 번째 샷에서 배상문이 뒤땅을 치는 실수를 하는 사이 빌은 침착히 볼을 그린에 올려놓아 극적으로 미국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눈시울이 붉어진 제이 단장은 자랑스러운 아들과 뜨거운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전날까지 빌은 1무 1패로 승리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단장 추천 선수로 자신의 아들을 선택한 제이 단장은 큰 부담감에 시달렸다.
대회 종료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이 단장은 “마지막 조에 아들을 배치하면서 큰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가장 중요한 조가 됐다. (아들이) 긴장이 많이 됐을 텐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를 앞둔 아들에게 ‘내가 라이더컵 당시 편한 마음으로 드라이버 샷을 했다면 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미국팀의 대회 6연승을 이끈 제이 단장은 우승의 마침표를 찍은 아들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체가 단합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팀에는 환상적인 팀워크가 있었을 뿐 개인플레이는 없었다. 아들의 경기 출전에 북받쳤던 기억을 포함해 영원히 잊지 못할 대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력 열세 속에서도 선전을 펼친 인터내셔널팀의 닉 프라이스 단장은 “12명의 훌륭한 선수들을 이끌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비록 패했어도 지난 4일간 매우 수준 높은 골프를 선보였다”고 말했다.
인터내셔널팀이 미국팀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비결로 정신력을 꼽은 그는 “모든 선수가 합심했기에 인터내셔널팀이라는 큰 배가 순항할 수 있었다. 1점 차로 진 것은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팀원들이 다음 프레지던츠컵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라이스 단장은 대회 도중 배상문과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 아니르반 라히리(인도) 등과 유독 대화를 많이 나눠 눈길을 끌었다. 그는 “세 선수 모두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긴장을 풀어주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며 “프레지던츠컵이라는 값진 경험을 통해 더욱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손뼉 치고 땅 치고… 운명 갈린 18번홀
대등한 승부, 마지막까지 접전 많아… 배상문-라히리-왓슨, 실수로 울고
우스트히즌-마쓰야마 등은 환호
희비가 교차한 프레지던츠컵 마지막 날 18번홀 (파5·534야드).
프레지던츠컵 마지막 날 싱글 매치 12경기가 열린 11일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의 18번홀에서는 환희와 탄식이 교차했다. 인터내셔널팀과 미국팀의 시소게임이 펼쳐지면서 짜릿한 결말이 쏟아졌다.
이날 이 홀은 평소 542야드보다 짧은 534야드로 세팅이 돼 2온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오른쪽에는 해저드가 있었고 포대 그린(Elevated Green·주변 페어웨이보다 높은 그린)이라 거리가 맞지 않으면 공이 흘러내리기 십상이었다.
핀까지 240야드를 남기고 한 배상문의 두 번째 샷은 그린에 미치지 못하며 그린 앞 경사를 타고 내려갔다. 배상문의 세 번째 샷은 뒤땅으로 공을 10m 정도 보내는 데 그쳐 패배의 빌미가 됐다. 이 장면을 지켜본 최경주 인터내셔널팀 수석부단장은 “오르막 경사에서 가볍게 띄워야 했는데 웨지가 공 아래로 너무 깊게 들어가면서 실수가 나왔다”고 분석했다.
아니르반 라히리(인도)도 18번홀에서 눈물을 삼켰다. 크리스 커크(미국)를 맞아 17번홀까지 동타를 이룬 라히리는 18번홀에서 90cm 정도의 버디 퍼팅을 남기고 있었다. 커크가 남겨 놓은 5m 버디 퍼팅보다 훨씬 가까워 라히리의 승리가 점쳐졌다. 그러나 커크가 먼저 퍼팅을 성공시키면서 압박감에 시달린 라히리는 버디 퍼팅에 실패했다. 먼 거리 퍼팅을 먼저 넣으면 짧은 거리를 남겨뒀던 다음 골퍼의 퍼팅이 안 들어간다는 골프계의 속설이 입증된 것이다. 라히리가 버디를 했다면 무승부로 승점 0.5점을 추가할 수 있었던 인터내셔널팀은 땅을 쳐야 했다. 인터내셔널팀의 대니 리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안타까워했다. 미국팀의 장타자 버바 왓슨도 이 홀에서 1m도 안 되는 버디 퍼팅을 놓쳐 통차이 짜이디(태국)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반면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은 17번홀까지 1홀 차로 끌려가다 18번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핀에서 3.5m 떨어진 곳에 안착시킨 뒤 이글을 뽑아내 패트릭 리드(미국)와 극적으로 비기며 승점 0.5점을 추가했다. 이 퍼트로 우스트히즌은 4승 1무로 대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쓰야마 히데키(일본)도 17번홀 버디에 이어 18번홀에서 20m를 남기고 세 번째 샷으로 공을 핀 1m 부근에 붙인 뒤 버디를 낚아 극적으로 1홀 차 승리를 결정지었다.
프레지던츠컵에 선수로 세 번 출전했던 최경주 부단장은 “예전에는 마지막 날 13번홀 정도면 대부분 경기가 끝날 정도로 전력 차가 심했다. 올해 18번홀까지 가는 경기가 많았던 것은 그만큼 대등한 명승부를 펼쳤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18번홀 결과가 달라졌다면 트로피의 주인공도 바뀔 수 있었던 하루였다.
인천=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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