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계 최고 골프 사관학교 코리아
- '기적의 샷' 김세영 인터뷰
"난 5학년 때 90타 쳤는데 친구 장하나 이미 70대 타수… 美보다 생존경쟁 훨씬 치열
실력있는 국내 지도자 늘어 해외서 배울 필요 못 느껴"
올 시즌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데뷔한 지 3개월 만에 2승을 거둔 김세영(22·사진)은 "미국 대회 코스가 한국보다 훨씬 쉽다"고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워낙 까다로운 한국 코스에서 단련이 되다 보니 OB(아웃오브바운즈)도 거의 없고 페어웨이 잔디를 짧게 깎아 공도 잘 구르고 스핀도 잘 걸리는 미국에서 마음껏 치고 있다"고 했다. 김세영은 "미 LPGA 투어에 뛰어난 선수들이 많지만 한국에서 주니어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겪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고도 했다. 세계 최고 무대라는 LPGA 투어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김효주(20)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19일 하와이에서 기적 같은 샷을 연거푸 성공하며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김세영은 시즌 10번째 대회인 스윙잉 스커츠 LPGA 클래식(현지 시각 23~26일)에 출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다. 루키인 그는 상금 랭킹과 올해의 선수, 신인상 랭킹 모두 1위를 달리고 있어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21일 통화에서 김세영은 "아직도 연장전 샷 이글의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면서도 "꾸준한 실력을 보여야 진짜니까 다시 골프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김세영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이고 혹독한 훈련과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양산되는 '한국 골프 4.0 시대'를 상징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김효주, 장하나 등과 함께 '리틀 세리 키즈'라고도 불린다. 김세영은 "한국 주니어 무대의 경쟁 수준은 한마디로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태권 소녀'라는 애칭을 지닌 그는 태권도장 관장인 아버지 김정일(53)씨의 영향을 받아 태권도를 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김세영은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대회를 나가서 90대 타수를 치고 있는데 저보다 1년 먼저 시작한 친구 장하나가 70대 타수를 치고 있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장하나는 2004년 방한한 타이거 우즈와 연습 라운드를 돌며 '천재 소녀'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어린 나이지만 또래들 간 경쟁은 프로 무대나 다를 바 없이 치열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김세영은 국제 대회 출전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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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비가 2002년 7월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칩샷을 하고 있다. 박인비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그해 ‘올해의 주니어 선수’에도 선정됐다. /AP
김세영은 "미국 주니어 대회에 나가보니 미국에도 저희 대표 선수들만큼 치는 선수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이 다른 선수들의 경쟁심에 불을 붙여준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골프를 시작할 때부터 모든 걸 골프에 거는 '프로페셔널'로 생활하다 보니 선수들 간 경쟁이 미국하고는 비교할 수 없었다"며 "골프 환경은 미국이 더 좋았지만 미국 무대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곳이 아니라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고 했다. 김세영은 "박세리 프로를 존경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2011년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에 데뷔한 김세영은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지만 독보적 수준은 아니었다. 상금 랭킹이 40위(2011년 ), 32위(2012년), 2위(2013년), 10위(2014년)였다. 그는 "미국 투어에 뛰어난 한국 선수들과 미국 선수들이 있지만 한국 투어 선수들의 경쟁력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잘 칠 수 있게 된 것은 다 까다로운 한국 투어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덕분"이라고 했다. 물론 그가 다른 한국 선수들에 비해 미국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280야드 안팎의 드라이버샷을 때릴 수 있는 장타력을 빼놓을 수 없다. '세리 키즈' 세대는 미 LPGA 투어에 진출하면서 미국의 유명 교습가에게 스윙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양한 경험을 쌓은 국내 지도자가 늘어나면서 많이 달라졌다.
김효주가 10년째 한연희 전 골프 대표팀 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고, 김세영은 5년째 최경주의 친구인 이경훈 코치에게 배우고 있다. 김세영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 배울 수 있고, 지금 이 코치님을 만나 성적이 잘 나기 시작했다"며 "외국 지도자에게 배워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입력 : 2015.04.22 03:00 >
[한국 여자 골프 4.0시대] 비디오 스윙 분석·심리상담… 태릉엔 전용 연습장
[해외도 인정한 육성 시스템]
전문 트레이너가 몸 관리… 매년 주니어 선수 키우는데 골프協 예산의 20% 투자
최근 한국 여자 골프의 비약적인 성장은 오로지 골프만 생각하는 선수들의 열정과 함께 탄탄한 '주니어 육성 시스템'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대한골프협회(회장 허광수)는 한 해 예산 50억원 중 20%가량인 10억원을 주니어 육성에 투자한다. 매년 남녀 각 27명(주니어상비군 포함)의 국가대표·상비군을 뽑아 합숙 훈련을 진행하고, 국제대회에 내보내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한국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1979년 처음 골프 국가대표팀을 만들었다. 이후 최나연, 김세영 등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대표팀에서 실력을 키워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날렸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전문 트레이너의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과 비디오 스윙 분석, 멘털 강화를 위한 심리 상담 등 과학적 훈련이 속속 도입됐다. 골프 대표팀은 2012년부터는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전용 실내 연습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국가대표·상비군 선수에겐 레슨과 함께 그린피 혜택도 제공된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최상의 훈련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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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니어 골퍼들의 다리는 하얀 발과 달리 발목 윗부분은 햇볕에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허재성 객원기자
이 때문에 프로가 되기 전 국내 아마추어 선수들의 최고 목표는 국가대표·상비군에 뽑히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우선 30대1에 이르는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국가대표 선발 포인트가 걸린 아마추어대회가 한 해 호심배·송암배 등 9개인데 꾸준히 최소 5위 안에 들어야 태극마크를 딸 수 있다. 주니어 무대에선 선수 간 실력차가 작은 걸 감안하면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투어에서 매 대회 톱 10을 기록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국 여자 골프의 선전 배경에 세계 최고의 주니어 육성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웃 중국과 대만, 일본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연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국은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골프장 등 훈련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엘리트 선수를 위한 투자만큼은 최고"라며 "집중 투자와 육성의 결과가 한국 여자 골프 강세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의 경쟁력은 공격적인 코스 공략에서도 나온다. 어려서부터 긴 코스에서 단련이 된 덕분이다. 대구CC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대회인 송암배의 경우 주니어 여자부 코스가 2005년 5882m에서 지난해 6082m로 200m나 늘어났다.
이성재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장은 "한국 선수들이 주니어 시절부터 유럽이나 미국보다 평균 50m 이상 긴 전장의 클럽에서 훈련하다 보니 코스가 긴 미국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적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입력 : 2015.04.22 03:00 >
[주니어 골퍼들의 삶]
국가대표·상비군 되려면 평균 30대1 경쟁률 뚫어야
부모들끼리 정보 공유… '대치동 학원街' 뺨쳐
이달 초 국내 시즌 첫 아마추어 대회인 제주도지사배 주니어 골프선수권대회 개막을 앞둔 제주 오라 컨트리클럽.
홀 위치가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낀 데다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중·고등학교 선수들은 샷 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쇼트게임 훈련을 하던 여중부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젖은 발을 말리기 위해 신발과 양말을 벗자 까맣게 그을린 다리와 발목 아래의 하얀 발이 드러났다. 1998년 US오픈 우승 당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하기 위해 양말을 벗었을 때 드러났던 박세리(38)의 맨발과 똑 닮았다. 처음엔 자신의 맨발을 보여주는 걸 어색해하던 선수들은 "언뜻 보기에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김)효주 언니나 (박)인비 언니 모두 이렇게 힘든 훈련을 거쳐 지금처럼 됐을 거라고 생각하면 이런 내 발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날 골프장에선 어디를 가도 10대 주니어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연습 그린 위에는 50명의 어린 남녀 선수가 비를 맞아가며 다닥다닥 붙어 선 채 퍼팅 연습을 하고 있었고, 샷 훈련을 할 수 있는 드라이빙 레인지는 새벽부터 선수들이 몰려 22개 레인의 대기 순번이 순식간에 200명을 넘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선수들은 코치를 붙잡고 태블릿PC 영상을 보며 자신의 스윙을 점검했다. 연습장에서 만난 여자 국가대표 박현경(15·함열여중)양은 "해외 전지훈련 때 적당히 즐기면서 연습하는 또래 외국 선수를 보면서 '저렇게 해서 될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며 "한국 주니어 선수들은 누가 더 많은 공을 치나 경쟁하듯 눈에 불을 켜고 훈련한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프로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단련된다. 초등학교 3~4학년부터 한 해 평균 10~20개 안팎의 대회를 치른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5시간 이상 훈련은 기본이고 8시간 넘게 훈련하는 학생도 많다. 여자 아마추어 선수들이 국가대표·상비군에 들어가기 위한 평균 경쟁률은 30대1 수준. 이날 제주 오라골프장에는 선수·코치·학부모까지 1000여명 넘게 몰려 마치 프로 투어 대회를 방불케 할 만큼 북새통을 이뤘다.
10대 때부터 지나치게 경쟁과 훈련에 쫓기다 보니 개인 시간을 거의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주니어 선수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아쉬움이다. 한 고등학생 선수는 "9홀 돌고 샷 연습과 근력 운동을 하다 보면 자유 시간은 하루에 1시간도 내기 어렵다"며 "틈틈이 책을 보긴 하는데 재충전을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 선수들 곁에는 어김없이 '골프 대디'들이 지키고 있었다. 자녀를 야단치는 아버지들의 모습도 보였다. KLPGA 투어 이예솔 프로의 아버지 이용환(50)씨는 "일부에선 한국 부모들이 아이들을 스파르타식으로 몰아붙인다는 비판도 하지만 요즘 부모들은 대치동 학원가처럼 골프장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훈련을 위한 정보를 공유하며 뒷바라지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부모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선수가 많았다면 요즘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직접 훈련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골프 지망생이 늘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주니어 시절부터 영어 공부를 하는 선수도 많아졌다. 박희주(17·명지고)양은 "요즘엔 초등학교, 중학교 때 골프를 시작하면서부터 미국에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운다"며 "다른 공부는 못해도 영어만큼은 과외를 해서라도 미리 준비하는 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중학생 여자 골프 선수 딸을 둔 김인숙(45)씨는 "딸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또래들과 달리 프로 선수와 SNS로 친구를 맺거나 골프 영상을 보는 등 골프밖에 모른다"며 "자신이 좋아서 시작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 더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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