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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연평해전 승전행사 참석

惟石정순삼 2015. 6. 17. 21:21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는 15일 제1연평해전 승전 16주년을 맞아

전승비 앞에서 승전기념식을 거행하고 서해북방한계선(NLL) 수호의지를 다졌다.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사격으로 발발했다.

14분간의 교전 결과 북한군은 함정 1척 침몰, 5척 대파, 4척 중파 등 큰 피해를 입었지만

우리 해군은 함정 2척이 경미한 손상을 입고 참수리 승조원 9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는 데 그치는 등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기념식은 2함대사령관 주관으로 제1연평해전 참전용사 14명을 비롯한

장병 및 군무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2함대 장병들이 '조국의 바다와 NLL은 우리가 사수한다',

'적의 도발 장소가 침몰 장소가 되도록 현장에서 격멸한다',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단결하여 필승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본인은 제1연평해전 당시 제21전투전대장으로 재직하면서 2함대사령부 상황실에서

2함대사령관을 보좌하여 NTDS를 통해 현장상황을 보면서 전반적인 해상작전을 지휘하였다.

당시 전투참가 공적으로 인헌무공훈장을 수훈하였고 매년 6월 15일에 거행되는 승전행사에 참석하여 왔다.

 

 

 

그 후 "제1연평해전전승비" 건립시 전승비모형 디자인, 전승비에 부조되어 있는

"주요 상황 개요", "연평해전 상황도" 등을 초안하는 등 전승비건립에도 참여하였다.

제1차 연평해전은 6·25 전쟁 이후 벌어진 남북간의 최초의 정규전에서

완벽하게 승리한 해상교전이지만 그동안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가운데 잊혀져 가고있어 아쉬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제1연평해전전승비 맞은 편에는 제2연평해전전적비가 건립되어 있는데

매년 6월 29일에 전사자에 대한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제1연평해전으로부터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 한일월드컵시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이 열리던 날 

연평도근해에서 제1연평해전의 패배에 대한 설욕을 노리던 북한의 선제 기습 무력도발로 발생하였다. 

당시 햇볕정책에 의거한 불합리한 교전규칙에 따라 차단기동만 하였던 해군의 피해는 예고된 것이었다.

북한 해군 등산곶 684호가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여 차단기동을 하던 한국 해군 고속정 357호정을 향해

기습적으로 함포공격을 가함으로써 발생한 치열한 교전에서 한국 해군은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하였으며, 전투종료 후 복귀 도중 고속정 357호정이 침몰하였다.

북한해군은 약 30여명의 사상자와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로 퇴각하였다.

최근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6명의 무용담을 담은 영화 '연평해전"이 조만간 개봉되어

국민들의 관심과 함께 제2연평해전이 재조명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시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위키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해 보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의 무력 도발로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여 국군 6명이 전사하였음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4시간 35분만에 여는 등의 늦장 대응을 했다. 군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의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우발적 충돌로 결론지었고, 같은 내용의 북한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교전 다음날 예정된 금강산 관광선을 출항시켰다. 제2연평해전 발발 다음날인 30일 김대중 대통령은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사이타마로 출국하여 결승전 경기를 관람했다.

교전 이틀 후 국군수도병원에서 해군장으로 거행된 합동영결식이 열렸을 때조차 김대중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등 내각과 군의 핵심 인사들마저 참석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군 장례식은 장례위원장 이하만 참석하는것이 관례라고 해명하였지만,

해군장이었던 천안함 침몰 사건 희생자의 영결식에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장관은 참석했다.

이러한 까닭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제2연평해전을 ‘잊혀진 전쟁’으로 부르며 당시 김대중 정권의 처우에 분노하고 있다.

고(故)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 씨는 “부상당한 아들의 면회를 기다리며 TV를 보니 대통령이 일본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며 “(출국한) 성남 비행장에서 국군수도병원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는데…”라고 말했다.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 씨는 “서해에서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 대통령이 출국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전쟁이 나면 대통령은 밖에 있다가도 들어와야 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국가예요.”라고 김대중 대통령을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