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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하동이야기

<작사가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④~⑥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惟石정순삼 2012. 4. 27. 16:26

<작사가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세월이 갈수록 간절한 戀慕 영혼의 울림으로 승화하다
④ 유영근·김수희 ‘애모’

1991년 발매된 김수희의 앨범 ‘서울여자’ 재킷 사진. 국민 애창곡인 ‘애모’가 수록됐다. 김수희는 1976년 ‘너무합니다’를 통해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만나면 괴로운 관계’와 ‘만나서는 안 될 사이’와의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 ‘애모’의 작사·작곡가 유영근과 이 노래의 주인공 H와의 관계도 그랬다. H는 이미 결혼해서 남의 여자가 된 사람…. 그러나 유영근은 당시 37세의 노총각(현재 숭실대 콘서바토리 주임교수·철학박사).

1989년 어느 가을 날. 유영근은 동해 바닷가의 외진 기슭을 헤맨다. 옛날 H와 자주 왔던 곳이기에….

이날도 바다는 가슴을 열고 그를 반기고 있었다.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은 서로 손을 잡고 유유히 흐르면서 ‘자유의 노래’를 구가했다.

“구속과 속박당한 건 나뿐이구나….”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그녀 때문. 진실로 사랑하기에 그리움은 절실하고 애틋한 사랑은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도 남아 있는 것. 그래서 넘치는가. 외로운 것인가.

“아, 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이뤄지지 않는 사랑은 고통이었다. H와의 운명적인 만남도 그랬다. 아무리 사랑에 다가서려고 해도 그건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젓는거나 같았다. 그래서 사랑은 잡을 수 없는 한줄기 바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끈끈하고 끈질긴 사랑에 대한 집착과 집념은 사랑을 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르리라.

사랑에 대한 의지는 강인하다. 강 넘어 불빛처럼 마음을 흔든다. 한사람에 대한 줄기찬 사랑은 그가 39세가 되도록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그랬던 것이다.

사랑은 정말 지울 수 없는 존재인가. 손에 잡힐 것 같은 저 구름도 띠를 두르고 가을 하늘로 동행하는데, 나는 왜 동행자도 동반자도 없는가. 나 혼자뿐인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애모’에 대한 노래시가 떠올랐다.

참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응어리진 한(恨)의 소리가 가슴을 열고 들려왔다.

그는 어지러운 심기를 몇 번을 정리했다. 감정을 절제하고 진실만을 표출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만 가다듬었다. 그 자신의 감동 없이 어찌 남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노래는 열정만 갖고 안 된다. 모름지기 사랑의 혼으로 창작돼야 하는 것이다. 유영근의 H에 대한 간절한 연모가 바로 그랬던 것.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얼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요”

그랬다. 가슴에 흔적이 있는 한,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김수희. 그녀는 시대를 읽으면서 한 발짝 앞서서 나가는 가수, 시대를 관통하는 가수다. 사람을 움직이는 노래가 국민정서일진대, 가수의 가창력과 호소력은 음악 장르를 뛰어넘어 그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영혼의 울림 같은 것. 판소리가 그렇지 않은가.

가슴의 떨림 같은 흐느끼는 듯한 김수희의 목소리. ‘너무합니다’ ‘못잊겠어요’ ‘남행열차’ ‘멍에’등 그녀의 히트 노래 중에 어느 것 하나 혼이 담겨져 있지 않은 게 없었다. 절창이기에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서정성을 바탕에 깔고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이 노래 ‘애모’….

정말 이 시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회가 삭막할수록 외로운 사람들은 노래의 정서에 빠진다. 그것도 그 자신의 사연 같은 노래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노래 작가를 김수희는 방송 인터뷰에서 부산 출신 노총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방송을 유심히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H, 그녀였다. ‘애모’의 노래가 한창 뜨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길에서 부딪친 유영근과 H. 뜨거운 찻잔을 사이에 두고,

“이 노래, 우리 이야기이지요….”

H의 이 말에 유영근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작사가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감미로운 저음·찡한 음색 매혹… 이루지 못한 사랑·아픔 절절히…
⑤ 최희준 ‘하숙생’

신세기레코드사가 발매한 ‘최희준 앵콜가요앨범’ 재킷. ‘하숙생’ ‘길 잃은 철새’ ‘불타는 청춘’ 등 최희준의 히트곡이 수록됐다.
1966년 1월,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은 가요팬들을 사로잡는다. 노래시와 함께 곡도 뛰어나고 가수 또한 노래를 잘 불렀기 때문이다. 노래의 주제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게 아니겠는가.

김석야가 쓴 KBS 연속극 하숙생의 줄거리는 이랬다. 인생은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 가는 나그네인데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탐한다. 그래서 가장 순수해야 할 남녀 간의 사랑에서도 실(實)이익만 챙기다가 약속을 깨고 결국 배신을 하게 된다. 여기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은 그랬다.

젊은 화학도와 훗날 미스코리아가 되는 미모의 아가씨는 사랑을 한다. 장래를 약속한 두 사람은 언제나 진실하게 사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어차피 꿈 같은 한세상인 것을, 부귀와 영화가 무슨 소용 있으랴. 남자는 약혼 기념으로 하숙생을 작사·작곡해 들려준다. 남자는 화학도이지만, 아코디언도 잘 다루고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다. 이후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하숙생을 부른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그러나 이들의 비극은 여인이 자초한다. 남자가 근무하는 화학실험실에 놀러 갔던 여인은 그만 엄청난 화재사고를 낸다. 남자는 불길 속에서 여인을 구출하게 되지만 여자 대신에 그 자신이 얼굴과 온몸에 흉측한 화상을 입었다.

한편 미스코리아가 된 여자는 미모를 자랑하며 남자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 끓어오르는 복수심으로 남자는 성형수술을 하고 여자가 사는 집 부근에 하숙을 하면서 여자가 들으라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지난날 두 사람의 주제가 ‘하숙생’을….

물론 복수극이었다. 여자가 연주를 들을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죄책감으로 미치는 광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여자는 미치고 만다. 혼자서 낄낄대고 웃거나 땅에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남자 쪽에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속이 후련해지려고 복수극을 벌였는데,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니!

이 노래의 드라마를 쓰고, 연속극 주제가를 쓴 김석야는 천안 태생. 일제강점기 공주교보를 다니면서 문학에 눈을 떴다.

1963년 어느 봄날. 충남 공주 동학사 쓰레기장에서 여인의 머리카락과 만난다. 여승이 되기 위해 수많은 여자들이 머리를 깎아 버린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그는 ‘공수래공수거’를 떠올리고, 하숙생을 구상했다.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로 데뷔, ‘진고개 신사’ ‘종점’ ‘맨발의 청춘’ ‘노신사’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의 가수 정상을 지켰던 최희준은 ‘가수 신사’로 통한다. 매너가 그렇고 신사풍의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저음과 찡한 음색은 ‘한국의 냇 킹 콜’.

‘주름살이 새겨진 저 노신사는/ 조약돌을 호수에 던지고 있네/ 지나간 젊음을 생각하는지/ 파문이 퍼지는 호수를 보며/ 바람도 없는 산장에 홀로 앉아서. 주름살이 새겨진 저 노신사는/ 밤늦도록 꽃 없는 그 다방에서/ 비 오는 창밖을 흐린 창밖을/ 언제나 말 없이 호수를 보며/ 바람도 없는 산장에 홀로 앉아서.’

1967년 10월,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상을 받은 필자의 노래시 ‘노신사’이다. ‘진고개 신사’에 이어 노신사를 부름으로써 최희준은 ‘가수 신사’라는 칭호를 하나 더 얻게 된다.

 

 

<작사가 정두수의 가요따라 삼천리>
청춘 떠나보낸 사내 ‘영혼의 울림’… 눈 감으면 그려지는 듯한 노래詩

⑥ 최백호 ‘낭만에 대하여’

‘오선지 위의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가수 최백호가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가을바람에 서걱대는 갈대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그것도 어스름 달밤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살갗을 부비면서 흐느끼는 갈대의 울음소리를. 최백호 노래가 그랬다. 허스키 음색에 영혼의 울림 같은 노래가….

1950년 1월. 최백호는 부산 동해바닷가 좌천에서 태어난다. 비교적 유복한 집안. 그러나 제2대 국회의원이던 아버지가 김천 부근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가세는 급속히 기울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일광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것. 최백호의 문학적 재능은 여류시인 어머니의 영향력이었다. 최백호는 초등학교 다니기 전부터 그림을 그린다. 서양화.

스무 살 때의 그의 첫사랑도 화가 지망생. 하지만 배신을 당한다. 그가 가수가 된 것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 선배 가수 하수영 때문. 하수영은 부산시절 때부터 알았다. 1976년에 부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그가 처음 쓴 노래 시. 가을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모곡이었다. 뛰어난 가창력, 어머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절실한 노래는 최백호를 단번에 세상에 알렸다. 매혹의 서정시와 곡이 더한층 가슴에 와 닿게 한 것.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낙엽지면 설움이 더 해요/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눈길을 걸으며 눈길을 걸으며/옛 일을 잊으리라/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개 속에 가로등 하나/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내 마음 갈 곳을 잃어/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그림의 마음이 화폭에 담겨지는 것이라 할까. 올올이 맺힌 가슴의 한(恨)이 마음을 열고 노래가 되었다. 감동을 안겨주는 노래는 호소력 때문만은 아니다.

‘입영전야’ ‘그자’ ‘영일만 친구’에 이어 40대 이후 남자들의 마음을 흔든 노래 ‘낭만에 대하여’는 1995년 봄에 탄생한다.

봄비가 내리던 밤, 그것도 옛날 봄비처럼 사은사은 내리던 밤. 그는 지난날 생각에 흠뻑 젖어 있었다. 불현듯 첫사랑 소녀가 떠올랐다. 이제 그의 나이 마흔아홉. 세월은 참 빨랐다. 첫사랑 소녀는 그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부산 영도섬 태종대에서 만나게 됐다. 그녀 또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그날은 황혼녘. 시뻘건 불덩어리 하나를 안고 저녁놀이 수평선 너머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소녀는 저만치서 불덩어리를 화폭에 담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날 알게 된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면서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녀는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로 가고, 부모님을 잃은 그는 부산에 눌러앉게 된다.

방학 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사이.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그날 따라 봄비는 하루 종일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애끓는 그리움….

“이 봄비에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엎치락뒤치락….

최백호는 그날 밤 잠을 못 이룬다. 그러다가 이 노래시가 떠오르면서 기타를 잡는다.



‘궂은 비 내리는 날/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새빨간 립스틱에/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최백호의 노래시는 회화시. 노래시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바로 다방의 정경이 나타나지 않는가. 정지용 시인의 ‘향수’ 같은 고향 정경 말이다.



‘밤늦은 항구에서/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첫사랑 그 소녀는/어디에서 나처럼 늙어 갈까/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낭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