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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이후 생존법] "더 많은 복지를 원하나? 그렇다면 더 많이 일하라"

惟石정순삼 2012. 1. 11. 16:08

[1] '스웨덴의 대처' 보리 재무장관… FT '2011년의 재무장관' 선정
취임후 실업수당부터 깎고 개인 소득세는 계속 낮춰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게 해
"70~80년대 퍼주기식 복지, 스웨덴의 황금시대 아닌 잃어버린 20년이었다"
"유로존 위기 해결하려면 개혁하고 개방해야"
결국 국가 경쟁력 약화와 재정 상황 악화가 문제
경제 운용 방식을 바꾸고 새 산업 개척하는 노력 필요

재정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유럽에서 한 나라의 재무장관이 칭찬을 받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안데르스 보리(Anders Borg·44) 스웨덴 재무장관은 예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를 '2011년 올해의 재무장관'으로 선정했다. "전 유럽이 재정위기의 혼돈 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가운데 보리만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지난 2006년 38세 나이로 재무장관이 된 그는 스웨덴의 복지 개혁과 일자리 창출에 채찍질을 가한 인물이다. '스웨덴의 마거릿 대처'로 불리기도 한다.

인터뷰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롬 중심가에 있는 장관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스웨덴 날씨는 100년 만에 최고 기온이라는 영상 2도. 두 달가량의 섭외 끝에 겨우 성사된 인터뷰였다. 인터뷰 후에는 중앙은행과의 전화회의가 예정돼 있어 스웨덴 재무부 관료들이 집무실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말총머리에 귀걸이를 한 록스타 분위기의 안데르스 보리 스웨덴 재무장관은 복지 개혁과 일자리 창출에 탁월한 성과를 보여 ‘스웨덴의 마거릿 대처(전 영국 총리)’로 불린다. 그는 “더 많은 복지를 원한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며 일하는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톡홀름=사진가 정재욱 jaeuk.jung79@gmail.com

집무실로 들어서니 세계 최고 부국(富國)으로 꼽히는 스웨덴 재무장관의 방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두 평 남짓한 사무실은 책상과 탁자, 책장만으로 가득 찼다. 그 가운데에 체크무늬 와이셔츠에 초록색 물방울 넥타이를 매고, 말총머리에, 왼쪽 귀에 작은 링 귀걸이를 한 '록스타' 같은 장관이 서 있었다.

인터뷰 내내 보리 장관은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말투는 명쾌했다. "성장과 복지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에도 단호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성장과 복지를) 결합해야 한다. 더 많이 (복지를) 원한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일하는 복지'로

그의 모토는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아야 한다'이다. '무임승차 복지'에서 '일하는 복지'로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나친 복지'를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까지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일하는 연령대의 25%가 실업수당을 받거나 재취업 교육 과정에 있었고, 근로자의 40%가 병가(病暇) 혜택을 누리는 사회였다. 일을 안 해도 생활이 보장되니 굳이 일하려고 들지 않아 생긴 '복지병'이다. 공식 실업률은 6~8%대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실상 실업률은 25%에 육박했다. 보리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제1 과제로 '실업률 낮추기'를 외쳤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실업수당을 깎는 것이었다. 실직 전 급여의 80%에서 65~70%로 줄였다. "복지 혜택 가운데 교육이나 건강보험 같은 것은 '일하는 복지'에 악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업수당은 달라요. 일을 안해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실업 중 두 번째 일자리 제의를 받았는데도 거절하면 가차없이 실업수당을 깎았다. 이런 정책의 결과 실업수당을 받거나 재취업 교육 과정에 있는 사실상 실업 인구가 25%에서 15% 수준으로 떨어졌다.

보리 장관은 "다른 한편으로 근로 의욕을 부추기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모든 사람이 일터로 나오게 했다"고 말했다. 감세(減稅) 정책을 편 것도 "근로 인센티브를 제공해 노동시장이 활기를 띠고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평균 30.7%이던 개인 소득세율을 4차례에 걸쳐 차등인하했는데, 특히 일하는 저소득층이나 비정규직의 소득세율을 17.1%까지 낮췄다. 이는 가처분소득을 늘려줘서 일하려는 유인을 늘리려는 취지였다. 또 법인세율을 28%에서 26.3%로 낮췄는데, 이는 기업들에 세금 부담을 덜어주어 고용을 늘리게 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부담하는 사회보장 기여금을 1%포인트 낮추고, 은퇴 후 받는 연금을 일한 기간에 따라 차등 지급하고, 여성들의 경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아동 수당을 늘린 것도 모두 일하는 인센티브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좋은 복지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해 보리 장관은 "좋은 복지란 교육·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으면서, 노동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동등한 혜택을 받는 것이 좋은 복지다"라고 했다.

이런 개혁 덕분에 스웨덴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빠르게 회복됐다. 2009년 위기의 여파로 마이너스 5.1%를 기록했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10년에 5.4%를 기록했다. 2011년 성장률 역시 4.1%로 유럽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스웨덴 세금 부담 높지 않다"

'높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스웨덴은 세금 부담도 그만큼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리 장관은 "스웨덴에 고부담이란 표현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감세(減稅) 정책으로 개인 소득세율을 낮추면서 세수를 대부분 부가가치세에 의존하고 있거든요. 스웨덴 국민의 직접세 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가깝습니다."

스웨덴 이상으로 '높은 복지'를 누리던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은 부채 위기로 나라 경제가 휘청대고 있다. 반면 2010년 기준 스웨덴의 GDP 대비 정부 부채(39.7%)는 유로존 국가 평균(88%)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럼에도 스웨덴 정부는 정부 부채를 2015년에 GDP의 21%까지 줄일 계획이다.

보리 장관은 스웨덴의 높은 복지 혜택을 떠받치는 두 축을 "효율적인 노동 시스템과 조세 제도"라고 했다. "스웨덴 사람들은 다른 유럽 국가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일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육 인프라와 사회보장제도이죠. 또한 조세제도가 효율적이고, 세원(稅源)이 넓어(broad-based) 세금망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보리 장관은 "우리는 복지 시스템을 현대화했는데, 이게 바로 '스웨덴식 복지 모델'"이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20년

스웨덴은 1970~1980년대에 1인당 GDP가 세계 4위에 이르고 연평균 실업률이 2.5%에 불과한 부국(富國)으로 탈바꿈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두둑해진 국고를 밑천 삼아 '퍼주기 정책'을 실시했다. 완전고용 수준의 실업률과 생활수준 향상, 여가 증대 등으로 다른 나라들은 이 시기를 '스웨덴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보리 장관은 바로 이 시기를 '스웨덴의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표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GDP 성장률이 OECD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내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보리 장관은 "당시 정부 지출이 급증하고, 조세 부담률이 높아졌으며, 도덕적 해이를 부채질하는 실업수당과 병가 제도 때문에 노동 효율성이 뚝 떨어졌다. 과도한 법인세와 기업의 사회 보장세 부담 때문에 스웨덴의 경제 성장률이 끝도 없이 하락한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위기가 본격화된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개혁을 시작했어요.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보장하는 조항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적자 예산 편성을 법으로 금지하고 노동시장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장을 개방했습니다. 복지 시스템도 필요한 만큼 지급하던 것을, 기여한 만큼 지급하는 것으로 바꾸기 시작했어요."

현재 스웨덴의 재정적자는 연간 GDP의 1.6%로, 유럽 국가 중 가장 튼튼한 재정을 자랑한다. '저성장→고실업→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이다.

유로존 위기 대책, "개혁하라, 그리고 개방하라"

보리 장관이 생각하는 유로존 위기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는 "스스로를 개혁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를 더 많이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유로존 위기에 처한 나라들은 많은 빚을 안고 있으면서 국가 경쟁력도 낮습니다. 이런 문제를 개혁할 정부의 자신감도 부족해요. 그러면서 경제에 대해 개방적이지도 않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수출이 GDP의 25%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더 많이 개방하고 경제 운용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유로존 위기는 결국 경쟁력 약화와 재정 상황 악화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는 "스웨덴으로선 지금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노동시장 개방과 감세 정책을 더욱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안데르스 보리 장관은

말총머리에, 귀걸이를 한 안데르스 보리 스웨덴 재무장관의 모습은 장관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분위기이지만 20대에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90년부터 1년간 스웨덴 유력 일간지 기자로 일했고, 1991년 중도 우파 정당이 승리하자 23세에 총리실 정치 고문으로 임명됐다. 1994년 당이 선거에 패한 이후 2002년까지 민간 은행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다. 2006년 보수당이 총선에 승리하면서 재무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10대 때부터 '자유의지론자'를 자처했다. 당시 신문에 마약류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글을 쓰기도 했으며, 마리화나를 피운 적도 있다. 1968년 1월 11일 수도 스톡홀롬에서 태어났다. 웁살라 대학에서 정치학·경제사·철학을 공부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그는 수도 스톡홀롬에서 100㎞ 떨어진 소도시에 산다. 세 명의 자녀를 둔 그는 "재무장관직을 연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