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르헨티나
민간회사 노조원 데모하자 정부가 봉급 인상분 대줘
실제 물가 20~30% 올랐는데 발표는 9%… 아무도 안 믿어
정부 예산의 60%를 복지에 "오로지 표만을 위해 정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산 마르틴대로 사거리. 페드로 마누엘 질(27)씨가 손걸레로 지나가는 차량 유리창을 닦아주고 5~10페소씩 받고 있었다. 그의 월수입은 2000페소(약 54만원) 정도. 7살 아들과 2살 딸 덕에 국가로부터 월 540페소의 자녀 수당을 받는데, 이것이 그의 주 소득원 중 하나이다. 아르헨티나에선 월소득 2800페소 이하 저소득층에겐 자녀 1명당 270페소씩 국가에서 보조금을 준다.
소규모 경비업체 직원이던 안토니오 아마도(48)씨는 작년 7월부터 민영 철도회사인 트렌 부에노스아이레스 직원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작년 10월 대선을 앞두고 경비회사 노조원들이 철도회사로 이직시켜 달라고 데모를 벌이자 정부가 이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 경비업체는 주로 철도경비를 맡았었다. 덕분에 2500페소(약 67만원)이던 월급이 단번에 80% 뛰어 4500페소(약 120만원)가 됐다. 봉급 인상분은 정부가 대준다. 더구나 봉급이 올랐는데도 정부는 그의 12, 13세 자녀에게 여전히 자녀 수당 136페소와 272페소를 준다. 아마도씨는 "공짜로 주니 안 받을 수 없지 않으냐"고 했다.
- ▲ 페드로 마누엘 질씨(사진 위)는 손걸레로 차량 유리창 닦는 일로 월 2000페소(약 54만원)를 번다. 그는 두 아이의 자녀수당으로 국가로부터 받는 돈이 월수입의 4분의 1을 넘는다. 경비회사 직원이었던 안토니오 아마도씨(사진 아래)는 노조 파업으로 철도회사 직원이 된 뒤 월급이 80%나 올라 4500페소를 받게 됐지만, 정부로부터 자녀 수당을 계속 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민의 80%에 보조금을 주는 선심 정책을 펴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김영진 기자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1년 1320억달러의 외채를 못 갚겠다고 국제적으로 모라토리엄(외채상환유예)을 선언했다. 세계 경제 호황 덕에 2004~2008년에 연평균 8.4%씩 성장하며 GDP 대비 153%(2002년)이던 외채가 36%(2010년)로 줄긴 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 가면서 빚을 갚는 게 아니고, 선심성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을 끌어다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갚는 식의 임기응변으로 버티고 있다.
◇복지예산이 재정의 60% 육박
아르헨티나 북서부 살타주에 있는 엘피디오 곤잘레스 초등학교 학생 30명은 지난해 넷북(소형 노트북PC) 몇 대가 학교에 들어온 걸 보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드 키르치네르 대통령이 전국 초·중학생들에게 넷북 300만개를 지급하는 선심 정책이 시골학교까지 손길이 미친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곧 좌절했다. 전기가 안 들어와 발전기로 3~4시간 불을 밝히는 시골 벽지인데다, 인터넷 연결도 안 돼 넷북이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 문재순 교수는 "시골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연필과 공책인데, 쓸모없는 넷북을 나눠줘 도시아이들과의 위화감만 키웠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선 전기와 가스 요금이 공짜에 가깝다. 200억페소가 넘는 보조금이 국영에너지 회사에 지원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혜택은 대도시 사람들에게만 돌아간다. 시골 동네엔 전기와 가스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산부인과 의사 엘레나 자이틀러(43)씨는 "페론 전 대통령은 선심정책을 쓰긴 했지만 국가 산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들이 스스로 일어서게 했는데, 지금은 무늬만 페로니즘"이라고 말했다.
이 나라에서 각종 보조금과 수당을 모두 포함한 전체 복지예산은 지난해 3030억페소에 달해 정부 예산의 59.9%를 차지했다. 지난해 한국은 28.0%였다.
◇인플레 통계 조작…정부 불신 팽배
아르헨티나 사람들 가운데 정부의 물가 통계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 M&S컨설팅 경제연구소의 카를로스 멜코니안 대표는 "해마다 임금이 30% 이상 오르는데 어떻게 물가인상률이 한자릿수일 수 있겠나"라고 반문, "그런데도 정부 발표치보다 물가상승률을 높게 잡은 12개 컨설팅 회사에 대해 정부가 각각 15만달러씩 벌금을 물리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선 4만페소에 구입한 새 자동차를 2년 지난 뒤 4만2000페소에 팔 수 있을 정도로 물가가 치솟아 가진 돈을 쓰는 게 저축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아르헨티나 일간지 라 나시온의 페르난도 라보르다 부국장은 "보조금이 늘어나니 소비가 확대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물가가 오르니 임금 인상 요구도 높아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는 해외로 해외로
지난해 아르헨티나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달러는 2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세계 투자자들이 신흥국 전반에서 돈을 빼가는 탓도 있지만, 심각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자국 화폐인 페소화 가치가 언제 폭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국민들이 달러 유출에 동참하는 부분도 크다. 리카르도 리바스 팔레르모대 교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달러를 외국돈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자산을 지키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며 "침대 매트리스 밑에 돈을 숨겨놓았다가 해외 계좌에 달러를 송금하는 일이 당연시 된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달러 유출을 막느라 수입업체들이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와 팔면 똑같은 액수를 수출해서 달러를 들여오게 하는, 이른바 '수입 1달러 대 수출 1달러'라는 쿼터 정책을 펴고 있다. 이 정책 때문에 폭스바겐과 닛산은 아르헨티나에 자동차를 파는 대신, 아르헨티나산 와인을 사서 해외에 팔아야 한다. 리카르도 리바스 팔레르모대 교수는 "밀을 수출하려 하면 정부가 '내수용이 부족해져 빵값이 오를 수 있다'며 수출도 막는 나라가 아르헨티나"라며 "정부는 오로지 표를 위해 정치를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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