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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40년 살아가는 법]"요리 배우는 건 은퇴후 생존전략"

惟石정순삼 2012. 1. 2. 09:20

 

요리학원 다니는 5060

"고기 재운다는 게 고기를 물에 담그라는 건가요?"

"아니요, 양념에 넣는 겁니다."

지난 28일 오후 7시 서울 개포동 수도전기공고 안에 있는 한 요리 실습실. 머리 희끗한 남성들이 앞치마를 두른 채 '돼지고기 두루치기'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강사에게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설명을 계속 받아 적으며 서투른 질문을 날렸다. 강남구 평생학습센터가 마련한 '아빠 요리교실' 수강생들이다. 14명 중 11명이 은퇴를 앞둔 50~60대였다. '남자는 부엌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이다.

"에고,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집에서의 식사 횟수에 따라 남편을 우스갯소리로 부르는 말)가 남 얘기가 아니에요. 내가 자유로우려면 요리는 필수인 것 같아서…." 김군선(64)씨는 은퇴를 1년 앞두고 있다. 아내가 집에 없을 때 혼자 해 보려 해도 부엌은 늘 자신이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긴장되는 공간이었다. "요리교실 수강한 이후로는 부엌과 친해졌어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고 설거지도 할 줄 아니 마음이 너무 편해지더라고."

"얼마 전 재수하는 딸 생일상을 직접 차려줬는데, 그거 먹고 힘냈는지 이번에 좋은 대학에 붙었어요."

요리에 입문한 지 1년 넘었다는 장병규(52·공무원)씨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이제는 혼자서도 연두부 샐러드에 안동찜닭까지 럭셔리하게 차려 먹어요. 우리 큰 동서 칠순 때도 상 차려줬는데 또 와달래요. 하하."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개포동 수도전기공고에서 열린‘아빠요리교실’에서 50~60대 수강생들이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만들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윤태호(64·무역업)씨에게 요리는 생존전략이다. "군대에서 라면 끓여보고 커피 타본 거 말고 해본 게 있겠어요? 근데 50대 중반 되니까 생존전략이 필요하겠다 싶었죠."

이들은 대부분 "그동안 요리가 싫어서가 아니라, 남의 시선 때문에 못했다"고 했다.

90세 모친을 모시고 사는 장만섭(59·부동산중개업)씨도 어머니 눈치 보이고, 스스로도 왠지 부끄러워서 부엌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요리교실을 통해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이제 친구들한테도 당당하게 나 요리한다고 얘기해요. 나이 찬 딸보다 내가 더 잘한다니까. 며느리한테도 인기 짱이죠."

이들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위해선 가정으로 돌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험대리점을 운영하는 박성수(53)씨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서로 배려하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배려라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배워야죠"라고 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