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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되살린 영원한 'Car Guy' 밥 루츠 최고임원

惟石정순삼 2011. 9. 25. 16:52

 

"세계 1등 GM이 왜 파산까지 갔었느냐고?
차를 만드는 회사가 비용절감을 1순위에 둔 회계팀에 휘둘린 순간부터…"

지난 2일, 미국 자동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는 작년 은퇴한 밥 루츠(Bob Lutz·80) 전 부회장을 최고 임원(자문역)으로 복귀시켰다. GM은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신차 판매에서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3년 만이었다.

10년 전인 2001년 9월에도 GM은 밥 루츠를 불러들였다. 당시 루츠의 나이 70세. 크라이슬러 부회장 직에서 물러난 후였다. GM의 상황은 지금과 반대였다. 미국 시장 매출에서 일본 차들에 추격당했고, 경제적 부가가치(Economic Value Added·영업이익에서 세금과 자본비용을 뺀 나머지)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폰티악 아즈텍 같은 신차들은 경제주간지 포천 등으로부터 ‘역사상 가장 추한 차’라는 평을 받았다. 루츠의 복귀에 뉴욕타임스·CNN 등 전 세계 언론은 “자동차 업계의 전설, 진정한 디트로이트맨이 GM의 구원투수로 돌아왔다”고 했다.

GM 근무(1963~1971), BMW 부회장(1971~1974), 포드 부회장(1974~1986), 크라이슬러 부회장(1986~1998) 그리고 GM 부회장(2001~2010). 루츠는 반세기 동안 자동차 업계에 몸담으며 크라이슬러 닷지 바이퍼, 포드 시에라·엑스플로러, BMW 3시리즈, 폰티악 GTO·G8·솔스티스, 새턴 스카이, 캐딜락 CTS·SRX, 뷰익 엔클레이브·라크로스, 쉐보레 카마로·에퀴녹스·볼트의 제품 개발을 지휘했다.

루츠의 영입에도 2008년 금융위기는 피하지 못해, 창업 100주년인 그 해 GM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그리고 3년 후, GM은 세계 자동차 업계 1위를 탈환했다. 미국 언론은 그 공을 루츠에게 돌리고 있다. CNN머니 등은 “GM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이를 건져내 제품 개발로 눈을 돌리게 한 인물”, “GM이 다시 ‘타고 싶어지는 차’를 생산하도록 한 이”라고 했다.

GM 쇠락의 10년을 겪은 루츠는 그 경험을 지난 6월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Car Guys vs Bean Counters’. 카가이란 현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이들을 뜻한다. 빈카운터는 번역하면 ‘콩을 세는 사람’으로, 기업에서 재정·회계를 다루는 인력을 표현한 말이다.

AFP·블룸버그. 그래픽=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숫자나 만지작거리는 좌뇌형 빈카운터들이 최상의 ‘메이드 인 USA(made in USA)’를 만들어내는 카 가이들을 조직에서 밀어내고 있다. GM의 위기도 이 때문이었다. 산업 전반에서 최상의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에게 봉사해야 할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고 영업이익을 올리는 숫자놀음에만 급급했다. 탁월함을 지향하던 문화(culture of exellence)는 어디로 갔는가? 미국 기업들 내부에서 벌어지는 양대 진영 간 배틀은 미국 산업의 영혼에 관한 것이다.”

책은 출간 후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파이낸셜타임스·골드만삭스가 선정하는 2011년 ‘올해의 책’ 후보에 선정됐다.

8월 23일 미시간주 앤아버에 있는 밥 루츠의 농장에서 Weekly BIZ가 그를 만났다. GM으로 복귀하기 전이었다. 지난 10년간, GM 안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1년 8월, GM 부회장 취임을 앞두고 루츠는 디트로이트 GM 본사에서 열린 이사회 조찬 모임에 갔다. 간부들이 금융전문가들과 함께 곧 출시될 모델의 프로토타입(prototype·차 원형) 사진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한 편의 호러쇼(horror show)였다. 소형·중형·대형·SUV·트럭…. 내 눈엔 모두가 실패할 게 뻔한 것들이었다. 차에 어떤 매력도 온기도 없었고 싸구려 같아 보였다. 차 디자이너의 엄마라도 이 정도면 일본차를 사겠다 싶더라니까."

루츠는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제품 개발 과정을 총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GM디자인 파트의 부회장 웨인 체리(Cherry)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내가 '웨인, 이건 너무 끔찍하잖아'했더니 웨인이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했다. 가만, 이게 무슨 소리지? 디자인팀을 총괄하는 사람이 자기가 만든 디자인이 싫다고? 웨인이 말했다. '밥, 여긴 GM이잖아요. VLE(Vehicle Line Executives·개발 총괄 임원) 세상이라고요.' 모든 결정권이 디자이너가 아닌 14명의 VLE에게 있었다. 보통 다른 회사들은 2~3명이든가 아예 없다. 전문가인 웨인이 아무리 얘기해도 VLE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을 보상에만 연연하는 사람들이었다. 비용과 투자액수, 차 한 대당 조립 시간, 부품 재활용률이 중요했다. 그렇게 차를 망쳐놓고도 이들은 (차가 나올 때쯤인) 2~3년 후 승진하거나 떠나면 그만이었다."

루츠가 부임 후 처음으로 한 일도 디자인팀에 더 많은 결정권을 준 것이었다. 모든 차 모델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던 브랜드 마케팅 시스템도 해체하고, 각 모델이 자신만의 브랜드와 마케팅 전략을 갖도록 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무엇이 최선인지 우리만이 알고 있다'는 식의 거만함, CEO와 간부들이 하는 말은 복음처럼 받들어지는 문화, 논쟁을 억누르는 분위기. 이 속에서 '최고 퀄리티를 가진 아름다운 차'에 대한 GM 본래의 철학은 사라지고 없었다."

루츠가 잠시 멈추더니 시가를 꺼내 물고 말을 이어갔다.

미시간주 앤아버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밥 루츠가 10년간 GM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이 그가 지난 6월 펴낸 ‘Car Guys vs Bean Counters’ 다.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미국 경제의 주축이 돼야 한다고 했다. / 제프리 소저

"이유가 뭔지 아나? '최고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카가이'(car guy, 제조·기술인력)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신, 금융지식으로 무장한 '빈카운터'(bean counter)들이 부상했다. 조직 안에서 제조·기술자를 은근히 무시하는 분위기가 생겨났고, 'GM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고, 차도 돈의 한 형태이며, 차를 더 많이 팔아야 돈이 된다'고들 했다.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조직의 하부(대부분 고급 디자인이나 운행감에 대한 이해가 없는)로 내려갔다. 50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조직의 꼭대기에서 제품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비용절감'은 가능할지 몰라도 '매출 증대'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빈카운터의 공격, 카가이의 반격

캐딜락 CTS를 개발하던 때였다. 앞유리는 불안하게 기울어져 있었고(앞유리가 천장에 대해 기울어진 각도는 차의 안정감과 비율에 중요한 요소다), 차 천장은 너무나 평평했다. 루츠는 VLE들에게 이유를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그렇게 하면) 전 모델에서 나온 천장을 재활용할 수 있으니까'였다.

"참으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겨우 천장 하나 아끼려고 차를 저렇게 망쳐놓다니, 멍청하긴!' 제대로 수정하려면 1년이 더 걸린다고 했다. VLE들은 회계팀을 시켜 그렇게 지연되는 동안 까먹을 모든 매출 데이터를 가져오게 했다. 가만있을 수 없지. 나도 즉시 종이와 펜을 들고 릭(CEO)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서 지금까지 지켜본 GM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좋은 차를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썼다. '틀릴 때도 있지만, 주저하지는 않는다'(Often Wrong, Seldom In Doubt)는 좌우명을 넣어서. 릭 웨고너는 루츠의 손을 들어줬고, 캐딜락 CTS는 1년의 수정기간을 거쳐 시장에 나왔다. 웨고너는 GM 조직원 모두가 루츠의 편지를 읽도록 했고, 언론들도 'GM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며 편지 내용을 다뤘다.

"GM의 탁월한 카가이들에게 이건 오래 기다리던 자유선언문 같은 것이었다. 거대 기업에서 진짜 인재들이 어디 있는지 아는가?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급이지만 MBA가 없는, 그래서 경영지식이 풍부한 동료들이 승진하는 사이 점차 존재감이 없어지는, 그런 이들 안에 인재가 숨어 있다. 나는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싶었다. 이후 젊은 디자이너들에게서 강력하고 창의적인 디자인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루츠의 혁신도 단기간에 조직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GM의 매출은 계속 하락해 2007년 1분기 사상 처음으로 도요타에 추월당하더니, 2008년 금융위기로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GM뿐 아니라 미국 산업 전체가 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기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쯤 금융인(finance people)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열심히 물건 안 만들어도 되겠어. 영업이익은 늘어야 하니 광고예산, 제품 연구·개발비를 줄여보자고. 우리는 그동안 너무 퀄리티에 치중했어. 이제 차 바닥 카펫도 조금 얇게 만들고 카시트 재료도 한 단계 낮은 걸 써볼까. 슬쩍 바꿔놓으면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 그 순간 소비자들은 차가 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기업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언제나 제품에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기업의 성공은 영원할 것이다. 빈카운터들이 다가와 '이제 좀 한숨 돌리자(relax)' 말하게 놔두면 불행이 시작된다. 그것이 GM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다."

우뇌형 인재를 등용하라

루츠에게 "금융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물었다.

"위기상황에서 금융 파트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기업을 회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빈카운터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숫자만 만지작거리면서 비용, 매출 운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좌뇌형 인재들이다. 학교 최우등생, 최고 수준의 IQ, 분석적·계량적 사고를 하는 인재들. 내가 불만인 건 이들에게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다. 숫자에 매달리지 않고도 트렌드를 포착하는 능력,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다. 조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거나 열정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한다. 그것이 내 불만이다."

왜 좌뇌형 인재들이 미국 기업을 지배하게 됐을까?

"기업 이사회를 들여다보라. 리스크를 싫어한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사실만을 말하며, 숫자를 잘 다루는 이들을 선호한다. 숫자와 데이터에 기반을 둬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이들 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오늘 이 의견을 냈다가 한 달 후 정반대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다. 왜냐, 세상이 한 달 사이에도 많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그런 사람을 원치 않는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치의 세계를 원한다."

루츠는 47년간 미국의 자동차 빅3에서 일했지만 한 번도 CEO가 되지 못했다. 포드·크라이슬러·GM에서 그의 직함은 언제나 부회장, 넘버 2에서 끝났다. 포드에서 그가 얻은 평판도 이런 것이었다. '훌륭한 프로덕트 가이, 그러나 안정적인 비즈니스맨은 아님.'

"위험을 선호하는 내 성격이 이사회와 맞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도 한때 애플 이사회가 '너무 불안정하다'며 내쫓았다. 빈카운터들이 회사를 망쳐버린 후에야 잡스가 돌아와 애플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잡스는 하루에 100개의 아이디어를 가진 남자고, 그 중 95개가 나쁜 아이디어였을 뿐이다. 나머지 5개의 아이디어가 오늘의 애플을 만들었다."

내가 CEO였다면

루츠가 인터뷰 당일 손수 준비한 점심 메뉴는 직접 기른 유기농 토마토와 복숭아, 살라미(이탈리아식 훈제 소시지)와 치즈, 집에서 구운 빵 등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신선한 음식을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190㎝의 키, 구릿빛의 탄탄한 피부, 2대 8 비율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백발. 그는 음식에 조금씩만 입을 댔다. 루츠는 "조직도 사람과 같다. 불필요한 것을 가지치기해 핵심만 남기지 않는다면 비만해지고 결국엔 병든다"고 했다. 자신이 CEO였다면 그렇게 기업을 이끌었을 것이라고 했다.

"CEO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관료화다. 그것이 조직을 비만에 이르게 한다. 조직 안에는 인사부, 회계부, 법률팀 등 각자의 영역이 있다. 조직이 커지면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자신의 제국을 더 확장하고 싶어한다. 인간 본능이다. GM도 마찬가지였다. 예산책정 시간에 법률팀은 더 많은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하고, 인사팀은 새로운 경영기술과 업무평가방법을 도입하겠다고 말한다. 그때 CEO의 역할은 '지난 20년간 그런 것 없이 잘 살아왔어.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지를 치도록'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루츠는 GM에서 겪은 PMP(Performance Management Process·성과관리)를 떠올렸다.

"모든 직원이 다음해 목표를 세워 적어 낸다. 경영진은 그걸 취합해 토론하고 기업의 공동목표를 정한다. 릭 웨고너와 온종일 끝도 없는 회의를 하고 나면, 릭이 마침내 승리를 선언한다. '우리 모두 공동목표에 대해 의견일치를 봤다. 내년 이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성공적일 것이다!' 내년엔 세상이 변한다. 2월만 돼도 전해 전 직원이 수백 시간을 들여 작성한 모든 서류가 파쇄기 속으로 들어갔다. 작년 설정한 목표는 이미 올해 상황과 맞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낭비였다. 그런 것들이 나를 (GM에서) 미치게 만들었다. 리더는 계속 회사를 심플하게 만들어야 한다."

GM은 오늘날 미국의 모습

2008년 금융위기 이후 GM은 정부로부터 구제금융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추락했다. GM은 파산 신청 후 구조조정과 제품개발에 힘써, 올해 상반기 세계 신차 판매 대수에서 도요타를 앞지르고 1위에 올랐다.

루츠는 "GM의 쇠락, 실패 그리고 부활은 미국 산업 전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대변한다"고 했다.

"GM은 '우리는 너무 크고 강력해. 실패할 리 없어'라고 생각했다. 미국도 자기 힘을 너무나 당연시했고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는 사이 아시아 기업들이 미국의 가전산업을 잠식했고 일본·한국은 '우리는 이제 미국보다 더 차를 잘 만들 수 있게 됐어'라고 했다. 미국 산업 전체가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대신 돈과 영업이익률을 좇았다. 금융시장이 팽창했고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늘어났으며, 여기저기서 버블이 일었다. 재앙은 예정된 것이었다. 이제 미국에 산업 현장, 제조업 현장이 살아나야 한다. GM도 부활해, 세계 최고의 차와 트럭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GM과 미국경제는 현실을 깨달았다. 부활의 길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다."

밥 루츠가 자신의 농장 차고 안에 있는 자동차 컬렉션 앞에 섰다. 그가 기대어 앉은 차는 1952년형 커닝햄 C4R 컴피티션 로드스터. / 제프리 소저

인터뷰가 끝난 후 루츠는 피우던 시가를 내려놓고 자신의 농장을 안내했다. 짧게 깎인 잔디와 연못 주위로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의 나이 80세. 한 시간에 걸친 인터뷰 후에도 활기가 넘쳤다. 일주일에 두 번 자기 소유 제트기로 비행하고, 농장 차고 안에 있는 18대의 자동차 컬렉션을 몬다고 했다. 2011년형 캐딜락 CTS, 1962년형 뷰익 컨버터블, 1934년형 라일리(Riley) MPH를 주로 탄다. 루츠 커뮤니케이션스라는 컨설팅회사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책도 썼다.

"너무나 할 일이 많다. 크라이슬러가 66세 나이의 나를 은퇴시켰을 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66세는 너무나 젊은 나이 아닌가. 나는 이제 겨우 이 비즈니스를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농장을 걷자 고양이와 개, 연못 위를 헤엄치던 흑조(黑鳥)까지 따라왔다. '카가이' 루츠는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있다고 했다.

"나를 모르는 이들은 나를 키 크고, 위협적이고, 입 걸고, 시가를 피우는 전직 해병으로만 본다. 실제로 나는 감성적이고, 여리고, 예술적이며 내 안의 여성적인 면과 교류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개와 고양이도 사랑한다."

작별인사 대신 그와 포옹을 했다. 오른팔 하나로 상대의 허리를 감아 상체를 조이는 강력한 포옹이었다.

"대우車 인수 당시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디테일·퀄리티 강조하는 한국 기술력 활용하게 돼"

해병대 복무 중 한국으로 파견 근무
"한국 해병대, 美軍을 약골로 만들어"

루츠는 2001년 GM 부회장으로 영입된 후, 대우자동차 인수 작업에 참여했다.

―대우 인수에 찬성하는 쪽이었나?

"내가 CEO였다면 인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대우는 정말 최악이었다. 형편없을 정도로 파산지경에 빠져 정부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다. 만들어내는 차도 전혀 훌륭하지 않았다. 늙고 나쁜 회장(bad old chairman·김우중 전 회장)의 시대였다. 1990년대 한 모터쇼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대우 직원들이 차 홍보 대신 김우중 회장의 자서전('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대우를 인수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경영진이 말렸다. 그러나 릭 웨고너(Wagoner) 당시 CEO는 대우 인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릭은 '한국 자동차 기업을 저렴하게 인수하고 한국의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다'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릭이 옳았다."

―무슨 뜻인가?

"대우 인수를 통해 한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외부인을 배제하고 자국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킨 나라다. 지금 한국시장에서 GM의 시장점유율은 10~11%로, 계속 성장하고 있다. 미리 투자해 놓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디테일에 강한 세심한 문화를 가졌다고들 하지만, 디테일과 퀄리티를 강조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더 하다. 지금 한국차는 일본차보다 낫다."

올해 GM은 'GM대우'를 '한국GM'으로 바꿨다. '대우'란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루츠가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대우란 이름이 사라졌을 때 한국인들이 큰 충격을 받았나? 그 결정 후 차 브랜드를 쉐보레로 바꿨을 때 모두들, 한국인들조차 그게 낫다고 생각하더군. 차가 괜찮아도 아무도 (대우라는 이름을) 원치 않았다.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나? 몇 년 전부터 한국인들은 대우차를 사 놓고도, 쉐보레 엠블렘을 따로 구해 붙였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분명했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지난 5년간 월등히 좋아졌다. 5년 전, 나는 중국의 기자회견장에서 '뷰익 엑셀(Excel)이 한국에서 디자인돼 중국에서 제조될 것이다'라는 발표를 하고 있었다. 한 기자가 내게 물었다. '한국차는 별로라던데, 중국인들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 보나?' 2006년 오펠 안타라(Opel Antara·한국에서 제조해 공급한 SUV, 국내에서는 윈스톰 맥스로 판매)가 독일 시장에 나왔을 때도 독일 언론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진정한 오펠이 아니다. 메이드인코리아일 뿐이다.' 그래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그런 평판이 어디에서 시작됐다고 보나?

"20년 전 현대차 초기에 만들어진 인상이다. 당시 현대차는 매우 저렴했고 퀄리티는 끔찍했다. 그러나 지난 5~6년간 현대기아차는 놀랄 만큼 빠르게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 군복무를 했다고 들었다.

"1956년 해병대 복무 중이던 나는 한국 해병대에 고문단으로 파견돼 6주간 머물렀다. 포항 근처의 지역이었다. 곳곳에는 비효율적으로 개간된 농지 천지였고 농부들이 그 주위를 걸어다녔다. 차라고는 미군이 쓰던 차가 전부였다. 정말이지 가난한 나라였다. 몇년 전 그 지역에 가봤더니 도시화돼, 하나도 못 알아보겠더라."

―한국 해병대와 함께 했던 기억은 어땠나?

"한국 해병대는 터프가이들이었다. 우리 미군을 한 무리의 불쌍한 약골로 보이게 했다. 어느 날, 현장 실습에서 한국 해병대원들과 높은 언덕을 올라 꼭대기에 지휘소(command post)를 세우는 미션을 받았다. 우리는 (구경) 105mm의 무반동총(無反動銃·recoilless rifle)을 그곳으로 옮겨야 했다. 내가 말했다. '그렇게 큰 게 어떻게 차 안에 들어가느냐?' 그러자 한국 해병대가 말했다. '차로 안 간다' 그러더니 그걸 어깨에 메고 언덕을 전속력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꼭대기에 도착했다. 세계 어느 군에서도 그런 장면이 다시는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