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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 많이 먹는대한민국 <上>한번에 평균 4가지 藥 처방… 美보다 2배 더 복용

惟石정순삼 2011. 5. 23. 08:28

 

"과잉·중복 처방 많다" 비판, 항생제 비율도 여전히 높아… 비싼 태반·감초·마늘주사… 효능 입증안된 주사제 남용도
약값 늘어 건보 재정 악화

김명자(가명·78)씨는 지난해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서 한번에 2520알의 약을 처방 받았다. 15가지 약을 하루 3번씩 56일간 먹도록 한 것이다. 류머티즘관절염·골다공증·폐렴·위식도역류질환을 진단받긴 했지만 아스피린 등 해열·진통·소염제가 4가지, 신경안정제·진해거담제(가래약)·위궤양약이 각각 2가지씩, 이뇨제·면역강화제·혈압약·호르몬제·칼슘제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같은 효능을 가진 약을 중복 처방한 것으로 보고 이 병원 진료비를 깎았다.

심평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번에 13가지 이상의 약물을 쓴 처방은 6만4000여건에 달했다. 심평원은 이중 상당수는 과잉·중복 처방일 것으로 보고 이를 가리기 위한 심사를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은 '약(藥) 천국'이다. 환자들은 병원에 가면 주사 한대 맞고 약을 처방받아야 제대로 치료받았다고 생각하고, 병원들은 이런 환자들의 심리를 충족시켜주는 쪽으로 처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휠씬 약을 많이 먹고 있다.

한국에서는 의사가 한 번 처방할 때 4.16가지의 약품을 쓰는 반면, 일본에서는 3.0, 호주에서는 2.16, 미국에서는 1.97가지 약품을 쓰고 있다. 내성(耐性)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 범위를 철저히 지켜야 하는 항생제를 쓰는 비율도 여전히 높은 편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00명이 하루에 소비하는 항생제 사용량은 2003년 23.0명분, 2005년 24.7명분으로 계속 증가하다가 의료기관별로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한 2006년을 기점으로 다소 감소해 2007년에는 21.5명분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네덜란드(12.3명분), 독일(14.2명분), 영국(15.3명분) 등 선진국들에 비하면 크게 높은 수준이다. 바이러스가 원인인 감기 환자에게도 항생제를 쓰는 비율이 50.4%(2009년)가 넘는다. 선진국들은 15~40% 수준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의 경계가 모호한 채 "몸에 좋은 것은 모두 약"이라고 여기고 약을 쉽게 먹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가급적 사용을 자제하는 주사제가 한국에서는 피부 미용, 노화 방지, 심지어 숙취 제거용으로 쓰이고 있다. 태반주사·마늘주사·감초주사 등 이른바 '주사제 3총사'는 최근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직장인과 수험생들 사이에 유행이다. 셋 다 원기회복 등에 좋다는 이유로 '피로주사' 같은 별명도 붙었다. 강남의 한 개원의는 "일부 노화방지 클리닉에서는 수천만원을 내고 1년간 패키지로 맞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주사제도 아직 의학적으로 약효가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은 하루 평균 3알씩 먹을 정도로 약을 많이 먹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약 소비는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을 부실하게 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멀티버츠

우리 국민이 이렇게 약을 많이 먹으면서 생기는 부작용도 심각하고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약값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숙명여대 약대 신현택 교수는 "한번에 많은 종류의 약을 먹으면 약물 간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특정 약의 약효가 목표치보다 크게 올라가거나, 약효가 아예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며 "어느 경우든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적정량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먹는 약·주사제·바르는 약을 모두 합한 약값으로 건강보험 재정에서 빠져나간 돈은 2007년에는 9조5000억원에서 2010년에는 12조8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전체 의료비에서 약제비(藥劑費)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1년 23.5%에서 2009년 30%에 육박했다.

서울대 의대 의료정책실 권용진 교수는 "약의 오·남용이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전체 의료비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지나친 약 소비는 건강보험 재정을 부실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 요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