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1000억원)만 더 썼으면 됐는데, 겨우 수백억원 때문에 현대건설 입찰에서 떨어졌다니….”
정몽구(사진)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16일 현대건설 우선협상자 발표에서 패배한 아쉬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하지만 두 달도 안 돼 상황은 반전됐다. 7일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아쉬움이 승리의 미소로 바뀐 것이다.
올해 73세인 정 회장은 지난해 현대·기아차를 ‘자동차 글로벌 톱5’로 키워냈다. 당진 일관제철소도 2고로까지 완공했다. 사업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에게 남은 마지막 성취는 현대가(家)의 장자로서 법통을 잇는 것뿐이다. 현대그룹의 모태였던 현대건설 인수에 총력을 기울였고,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을 품에 안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에 근무한 게 불과 1년도 채 안 된다. 1973년 잠시 현대건설 자재부장을 했다. 74년에는 현대차써비스 사장으로 경영자로 변신하면서 이후 현대정공·현대산업개발 등 신규사업에 주력한다. 현대건설은 오히려 작고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의 인연이 더 컸다. 그렇지만 정 회장은 현대가의 장자로서 현대의 모태 기업인 현대건설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었지만 그와 구체적인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아파트 사업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77년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던 그는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한 공직자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조사를 받았다. 이듬해 아버지 대신 구속됐다.
이후 정 회장의 사업에 대한 열정은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톱5 진입과 일관제철소(고로) 사업으로 일관된다. 당시 현대·기아차는 세계 9위권이었다. 일관제철소는 정주영 회장이 90년대부터 줄곧 인가를 정부에 요청했지만 정부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 회장은 현대가의 장자로서 현대건설 인수보다는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인 일관제철소를 택한 것이다. 고로사업은 2004년 현대제철이 1조원에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2006년부터 무려 7조원을 쏟아 부어 지난해 11월 당진에 제2 고로를 완공하면서 꽃을 피웠다.
그렇다면 정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언제부터일까.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2009년 하반기부터 (회장님이) 현대건설 인수를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정 회장이 현대건설에 관심을 보인 것은 그해 하반기 기획조정실에서 재계 1위인 삼성과 매출 격차를 분석한 게 시작이다. 과거 현대그룹이 줄곧 재계 매출 1위였지만 2000년대 이후 삼성이 독주하면서 이를 따라잡는 데는 자동차사업 매출을 늘려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대형 인수합병이 필요했고 대상에 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이 물망에 올랐다.
퇴직한 현대차그룹 사장은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데 디딤돌이 됐던 현대건설의 장래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이 정 회장의 생각을 움직이는 데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쨌든 정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를 결정한 것은 2009년 하반기로 모아진다. 지난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상황은 급박해졌다. 정 회장은 현 정부가 현대건설 매각을 서두른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어 ‘현대건설 인수’를 사실상 결정한다.
이날 현대차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음에도 인수 논란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현대차가 자동차 관련 수직계열화를 통해 자동차 전문그룹이 된다는 청사진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해외 주요 언론도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에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자동차사와 건설사 간 시너지 창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해 12월 15일자 기사에서 “현대차가 획기적인 마케팅과 품질, 고객 만족도 개선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으나 40억 달러에 달하는 현대건설 인수 추진은 이러한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키웠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아시아판도 지난해 12월 22일 “현대차는 감정에만 치우쳐선 안 된다. 입찰에 계속 참여하려면 대형 건설사 인수가 왜 필요한지 주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찰 승리가) 회사와 소액주주의 이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정 회장의 평소 경영 지론인 ‘정치와 연관된 대북사업에 발을 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이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알짜 사업을 모두 까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 뒤 대북사업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금은 북한과 대치국면이지만 언젠가 북한과 경제협력을 위주로 한 화해 모드로 바뀌었을 때 현대건설은 어떻게든 대북사업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 회장이 가장 경계하는 게 이 부분이다.
현대건설 인수가 승계 구도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증권가에서 꾸준히 나온다.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차그룹의 건설회사인 현대엠코(옛 엠코)와 합병한다는 의혹이다. 현재 현대엠코의 지분은 정몽구 회장(10%)과 외아들인 정의선 부회장(25.06%)이 각각 갖고 있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쉽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이런 부분을 의식해 지난해 9월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현대엠코와의 합병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태진·강병철 기자
정몽구(사진)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16일 현대건설 우선협상자 발표에서 패배한 아쉬움을 이렇게 토로했다. 하지만 두 달도 안 돼 상황은 반전됐다. 7일 현대건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아쉬움이 승리의 미소로 바뀐 것이다.
올해 73세인 정 회장은 지난해 현대·기아차를 ‘자동차 글로벌 톱5’로 키워냈다. 당진 일관제철소도 2고로까지 완공했다. 사업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에게 남은 마지막 성취는 현대가(家)의 장자로서 법통을 잇는 것뿐이다. 현대그룹의 모태였던 현대건설 인수에 총력을 기울였고,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을 품에 안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에 근무한 게 불과 1년도 채 안 된다. 1973년 잠시 현대건설 자재부장을 했다. 74년에는 현대차써비스 사장으로 경영자로 변신하면서 이후 현대정공·현대산업개발 등 신규사업에 주력한다. 현대건설은 오히려 작고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의 인연이 더 컸다. 그렇지만 정 회장은 현대가의 장자로서 현대의 모태 기업인 현대건설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건설은 현대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이었지만 그와 구체적인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아파트 사업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77년 한국도시개발(현 현대산업개발) 사장이던 그는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한 공직자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조사를 받았다. 이듬해 아버지 대신 구속됐다.
그는 2000년 초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경영권 승계를 놓고 분쟁을 하면서도 “현대건설에 관심 없다. 현대차가 현대그룹에 남아 있으면 대북사업에 물려 망할 수 있다. 현대차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해 9월 현대그룹에서 현대차그룹을 계열분리했다. 현대차그룹으로 독립한 그에게 당시 부도 상태였던 현대건설에 대한 처리 방안을 묻자 “현대건설에는 관심 없다. 현대차를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 키우는 데 매진하겠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이후 정 회장의 사업에 대한 열정은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톱5 진입과 일관제철소(고로) 사업으로 일관된다. 당시 현대·기아차는 세계 9위권이었다. 일관제철소는 정주영 회장이 90년대부터 줄곧 인가를 정부에 요청했지만 정부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 회장은 현대가의 장자로서 현대건설 인수보다는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인 일관제철소를 택한 것이다. 고로사업은 2004년 현대제철이 1조원에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2006년부터 무려 7조원을 쏟아 부어 지난해 11월 당진에 제2 고로를 완공하면서 꽃을 피웠다.
그렇다면 정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언제부터일까.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2009년 하반기부터 (회장님이) 현대건설 인수를 생각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정 회장이 현대건설에 관심을 보인 것은 그해 하반기 기획조정실에서 재계 1위인 삼성과 매출 격차를 분석한 게 시작이다. 과거 현대그룹이 줄곧 재계 매출 1위였지만 2000년대 이후 삼성이 독주하면서 이를 따라잡는 데는 자동차사업 매출을 늘려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대형 인수합병이 필요했고 대상에 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이 물망에 올랐다.
퇴직한 현대차그룹 사장은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데 디딤돌이 됐던 현대건설의 장래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이 정 회장의 생각을 움직이는 데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쨌든 정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를 결정한 것은 2009년 하반기로 모아진다. 지난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상황은 급박해졌다. 정 회장은 현 정부가 현대건설 매각을 서두른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어 ‘현대건설 인수’를 사실상 결정한다.
이날 현대차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음에도 인수 논란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현대차가 자동차 관련 수직계열화를 통해 자동차 전문그룹이 된다는 청사진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해외 주요 언론도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에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자동차사와 건설사 간 시너지 창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지난해 12월 15일자 기사에서 “현대차가 획기적인 마케팅과 품질, 고객 만족도 개선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으나 40억 달러에 달하는 현대건설 인수 추진은 이러한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키웠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아시아판도 지난해 12월 22일 “현대차는 감정에만 치우쳐선 안 된다. 입찰에 계속 참여하려면 대형 건설사 인수가 왜 필요한지 주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찰 승리가) 회사와 소액주주의 이익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정 회장의 평소 경영 지론인 ‘정치와 연관된 대북사업에 발을 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이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알짜 사업을 모두 까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한 뒤 대북사업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지금은 북한과 대치국면이지만 언젠가 북한과 경제협력을 위주로 한 화해 모드로 바뀌었을 때 현대건설은 어떻게든 대북사업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 회장이 가장 경계하는 게 이 부분이다.
현대건설 인수가 승계 구도와 연관이 있다는 의혹도 증권가에서 꾸준히 나온다.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차그룹의 건설회사인 현대엠코(옛 엠코)와 합병한다는 의혹이다. 현재 현대엠코의 지분은 정몽구 회장(10%)과 외아들인 정의선 부회장(25.06%)이 각각 갖고 있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쉽게 이뤄진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이런 부분을 의식해 지난해 9월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현대엠코와의 합병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태진·강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