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중현 사회부 차장대우
대한민국 국새(國璽)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물건이다.
건국 직후인 1949년 만든 제1대 국새는 분실됐고, 1962년 만든 제2대 국새는 금이 아닌 은으로 만든 데다 제작 경위도 분명치 않아 "국새의 품격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만든 제3대 국새에서는 균열이 발견돼 2007년 제4대 황금 국새를 전통방식으로 제작했으나 '제4대 국새제작단장 민홍규씨는 전통방식으로 국새를 제작할 기술력이 없는 인물'이라거나 '그가 국새 제작용 금을 횡령해 금 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주요 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까지 벌어지고 있다. 민씨가 "국새 제작 기법으로 만들었다"며 황금 골프 퍼터를 만들어 20억원 안팎에 파는 사업에 참여한 것을 보면, 과연 '장인(匠人)' 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일본강점기를 거치며 맥이 끊어졌을 조선왕조 국새 제작 기법이 56세인 민씨에게 전해졌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봐야 한다. 제3대 국새의 경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과학자들에게 제작이 맡겨진 반면, 제4대 국새 제작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심쩍은 민씨에게 맡겨진 경위에 대한 수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경찰 수사나 각종 증언을 보면, 민씨가 전통 기법으로 국새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당초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문화유산으로 영구히 남을 작품을 만들겠다"고 공식발표까지 하며 제4대 국새제작단장으로 민씨를 선정한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은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
그와 별개로, 현 국새가 자격도 없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심각한 문제다. 그것을 계속 쓸 수 있을까.
사실 국새가 꼭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세계 200여개 국가 중 국새가 있는 나라는 10여개밖에 안 된다. 국새란 없어도 되는 것이다. 현 국새는 헌법개정 공포문 전문, 외교문서, 고위공무원 임명장, 훈포장 등의 한가운데에 배경그림처럼 찍히고 있다. 도장 바닥 크기가 가로·세로 9.9㎝나 되기 때문에 거의 서류에 모양을 내는 기능 정도만 하고 있다. 이들 문서엔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 직인(職印) 등도 찍히기 때문에 국새 날인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중국도 이젠 국새를 박물관에 모셔놓고 주요 문서엔 국가주석·총리·외교부장 등의 서명을 넣고 있다.
우리 전통 국새는 그리 자랑스러운 물건도 아니다. 조선시대 옥새(국새)가 뭔가. 조선 왕이 중국(명·청)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양국의 군신(君臣) 관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명나라로부터 새 국가의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옥새를 내려달라"고 청했지만, 결국 자기 대에는 받지 못하고 태종 때 '조선국왕지인'이란 옥새를 받았다.
그래도 나라 도장이 꼭 있어야겠다면 시대정신에 맞는 방식으로 새로 만들었으면 한다. 국새가 있는 외국의 경우 재질이 미국은 강철, 영국은 은(銀), 프랑스는 밀랍, 독일은 고무, 이탈리아는 청동이다. 새 국새를 만들어야 한다면 금이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제철소에서 나온 강철을 썼으면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상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Why] 민영화된 공기업 CEO 말년은 괴로워? (0) | 2010.08.28 |
---|---|
6·2 지방선거 20·30대 투표율 최고 10%P 올라 (0) | 2010.08.27 |
"헬프 美"… 흔들리는 제국, 이대로 주저앉나 (0) | 2010.08.14 |
사시합격자-"대리직급 준대도 변호사 지원자 넘쳐" (0) | 2010.08.14 |
가족(Family)이란 단어의 어원을 아십니까? (0) | 2010.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