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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美"… 흔들리는 제국, 이대로 주저앉나

惟石정순삼 2010. 8. 14. 12:12

전문가 3人이 본 '美의 미래'
폴 케네디 예일대 석좌교수 "쇠락의 길… 다극체제로"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 "그래도 수십년은 끄떡없어"
조지 프리드먼 美 안보전략가 "지금 사춘기… 전성기 눈앞"

65년 전 8월 15일. 우리가 광복절로 기억하는 이날 세계가 지켜본 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몰락만은 아니었다. 히로시마의 핵폭발 뒤에는 또 다른 역사적 의미가 숨어 있었다. 대서양과 태평양,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의 양쪽에서 모두 승리를 거머쥔 미국이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미국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 미국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미국의 돈과 기술로 공장과 도시가 다시 세워지고, 세계적인 자유 무역과 시장 경제의 틀이 놓여졌다. 소련과의 이념 경쟁 속에서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서방 세계의 안전과 경제적 번영을 약속했다.

미국의 힘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절정에 달하는 듯 보였다. 사람들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노래했다. 미국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쇠락(衰落)할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의 정치·경제·군사적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위기 이후 마이너스 성장으로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음은 물론이고, 기축통화로서 미 달러화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이는 군사력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의 해외 주둔 및 파병 규모가 일부 축소되고 있다.

물론 미국의 경제·군사력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압도적이다. 현재 미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전체의 4분의 1에 이르며,
일본, 독일, 중국, 영국을 합친 것보다 크다. 미국의 국방비는 전세계 국방비 총액의 절반이 넘고, 중국은 미국의 7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장의 속도 면에서는 미국의 모멘텀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중국 경제가 지금의 속도로 성장한다면 2030년에는 GDP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물론 지금같은 고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많다.

과연 미국은 몰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만약 미국이 몰락한다면 중국이 그 대안인가? 아니면 아직 미국의 시대는 다하지 않았는데도 성급한 선동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일까? Weekly BIZ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수많은 문제와 연결돼 있는 미국이라는 팩터(factor)를 점검해 보기로 했다.

사실 미국 쇠락론의 등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0~1980년대에도 유행한 바 있다. 당시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사람이 폴 케네디(Kennedy)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이다. 그는 1987년에 쓴 ≪강대국의 흥망≫에서 미국의 시대가 저물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미국의 힘은 쇠퇴하기는커녕 더욱 강해지지 않았던가?

최근 방한한 케네디 교수에게 이 첫 질문을 던지자 그는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영국식 악센트에 낮고 느릿한 말투로 이어진 그의 긴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동안 미국이 쇠락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 것은 생각보다 빠른 소련의 붕괴와 일본의 경기 침체로 군사적·경제적 라이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만성적인 재정 적자, 중국의 부상이라는 세 가지 사건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세상은 미국의 단일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옮겨갈 것이며, 중국은 매우 중요한 플레이어가 될 것이다."

국제정치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명인 존 아이켄베리(Ikenberry)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세상이 다극 체제로 변한다는 데는 케네디 교수와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패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그 영향력은 향후 수십년간 굳건할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힘 쪽에 보다 무게중심을 뒀다. 그는 "사실 우리는 미국의 세력 약화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고, 중국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해 왔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패권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주장의 극단에는 미국의 안보전략가인 조지 프리드먼(Friedman)이 있다. 그는 지난해 쓴 ≪100년 후(The Next 100 years)≫라는 책에서 "미국은 지금 사춘기를 겪고 있으며 더욱 안정적이고 강력한 성년기가 눈앞에 있다. 미국의 시대는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그는 "중국이 차세대 패권국이 될 것이란 생각은 환상일 뿐"이라며 "중국은 내부적 위기로 붕괴할 가능성이 있으며, 미국의 맞수가 되기는커녕 미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美 제국의 봄날은 갔다

"소모적인 전쟁· 만성 적자· 中 성장에 내리막"  

"이라크·아프간 전쟁으로 힘 너무 빼… 제국의 '과대팽창' 인해 쇠락 길 걸어"
"앞선 과학·기술도 경쟁국에 추격당해… 막대한 재정·무역 적자가 발목 잡을 것"

"권력의 축은 이제 美서 동아시아로 이동… 美, 다극체제 인정하고 제 역할 찾아야"
"中의 최대 강점은 강력한 중앙집권시스템… 국제무대서 키플레이어 될 수밖에 없어"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폴 케네디(Kennedy) 교수는 "≪강대국의 흥망≫이 출판된 지 23년이 지난 지금까지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내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이 아직까지도 설득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얘기였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힘은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1991년 소련이 예상보다 빨리 붕괴됐고, 일본은 장기적인 경제 침체에 봉착했습니다. 미국에 군사적·경제적 도전자가 사라졌다는 의미죠. 동시에 미국 경제는 연 3~4%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미래가 장밋빛으로 보인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미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세 가지 사건이 터졌습니다.

첫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미국의 자원이 허비되고 있습니다. 강대국이 쇠락하는 전형적 원인인 '제국의 과대 팽창(imperial overstretch)'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둘째, 미국 경제의 만성적 적자입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 미국은 아시아 국가에 대해 의존적인 채무국이 됐습니다. 셋째는 중국의 부상입니다. 특히 지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국가 채무가 급증하면서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 됐습니다.

미국이 아직 세계 최강국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이 쇠락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미국은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미국 자체의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아시아 국가, 특히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 및 저평가된 중국의 위안화 때문이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얼마 전 조 바이든(Biden) 부통령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막대한 재정적자의 책임을 공화당에 떠넘긴 것도 비슷합니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미국의 쇠퇴를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요."

■강대국의 자리바꿈은 매우 자연스런 변화

―조지프 나이(Nye) 교수 같은 분들은 "미국은 쉽사리 쇠퇴하지 않을 것이며, 오랫동안 그 힘을 유지할 것"이라는 반론을 폅니다.

"이에 대해선 두 가지를 말하고 싶군요. 첫째, 경제나 과학의 영역에서 강대국의 장기간에 걸친 자리바꿈은 매우 자연적인 변화라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 그 흐름을 살펴보면 500년 전 아시아 국가에서 지중해 국가로, 300년 전에는 지중해 국가에서 영국과 프랑스로, 이어 20세기 초반에는 영국에서 미국 동부로, 20세기 후반에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해 왔습니다. 그러한 힘이 이제는 미국 서부에서 중국·일본·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는 겁니다. 레닌의 '불균등 발전 법칙(uneven pace of development)'을 떠올려보면 좀 더 쉽게 이해될 듯합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로 인해 국제적인 힘의 균형이 유지되기 어려운데, 이는 국가의 도덕성과는 무관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겁니다.

둘째, 힘의 균형에 있어서 '상대성(relativity)'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은 압도적으로 강한 경제와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아시아가 더 빨리 성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직장을 잃지 않는 한 경제가 쇠퇴한다는 것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막상 실직을 하게 되면 거시적인 경제 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그는 "미국에 중요한 것은 그런 상대적인 쇠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하느냐에 지혜를 모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와 차기 정부는 이러한 국제정세의 흐름에 당황하거나 참담해하지 않아야 하며,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당면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첫째, 막대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를 줄여야 합니다. 둘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국제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항입니다. 철군이 작전의 실패나 후퇴로 비쳐서는 안되기 때문이죠. 미국과 동맹국들의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미국은 첨단 과학과 기술 혁신의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미국이 쉽게 쇠퇴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논거입니다.

"물론 그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들과 연구소를 갖고 있지요. 하지만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만이 아닙니다. 일본·한국·인도 같은 나라도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뤄내 거세게 미국을 뒤쫓고 있죠. 그리고 과학·기술 분야의 리더십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시장의 승리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은 미국에서 발명됐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인 이득은 핀란드의 노키아가 챙겨갔죠. 자동차 시장을 보세요. 아시아와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가 미국보다 훨씬 경쟁력 있지 않나요? 미국의 혁신적 발명품들은 다른 국가에서 금세 모방됩니다. 그리고 미국 외의 국가들이 더 성공을 거둡니다."

―말씀대로라면 교수님이 1980년대 미국의 경쟁자로 언급했던 일본이나 독일이 지금 미국의 뒤를 잇는 강국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뭔가요?

"일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에즈라 포겔(Ezra F. Vogel)의 ≪세계 제일 일본:미국을 위한 교훈(Japan As Number one: Lesson for America)≫을 기억할 겁니다. 책 제목이 보여주듯 일본은 1950년부터 1980년대까지 눈부신 성장을 이룬 신흥 강국이었죠. 그러나 막대한 자본과 풍부한 고급 인력과 같은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버블 붕괴와 이후 장기간에 걸친 경제침체가 일본의 발목을 잡고, 아직 여파가 남아 있습니다. 일본은 미래의 강국이 되기 위한 전략이 부족했고,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경우는 분명히 유럽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구원투수 역할도 해야 합니다. 독일은 그런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요. 독일은 단일국가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선은 유럽의 문제가 독일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미국, 1등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을 순리로 받아들여야

―한때 미국의 뒤를 이을 다음 강대국으로 중국과 EU를 많이 꼽았습니다.

"중국과 EU는 아주 다른 동물과도 같습니다. 중국은 아마도 호랑이에 비유할 수 있겠죠. 중국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원화된 리더십에 의한 의사결정과 문화적 통합이 바로 그것입니다.

강력한 중앙정부에 의한 의사결정은 매우 큰 영향력이 있으며 단호하고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정부에 강력한 힘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입니다. 중앙집중화된 공산당의 강력한 힘은 단호하지만, 매우 신중한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국경지역과 타이완 문제, 그리고 미국과의 위안화 문제에 있어서 신중하며 서두르지 않는 모습입니다. 제가 보기에 중국 정부는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습니다. 영국의 몰락, 독일의 히틀러 등의 역사적인 예를 통해서 중국은 급격한 변화는 결국 몰락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중국의 문제는 그 내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로의 인구 집중, 심각한 환경오염, 다양한 민족주의, 젊은 층에서 물질주의와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는 데 따른 사회통제의 어려움 같은 것입니다. 앞으로 중국이 세계적 패권국이 되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반면 유럽연합의 경우는 27개 회원국으로 이루어진 연합으로 단일 외교정책을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제외하고는 각기 군사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신속하고 결정적인 행동을 추진하는 데에는 아직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적인 이질성 및 지역적인 격차 등으로 인해 단일 국가와 같은 힘을 유지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부상하면서 세계 최강국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미국의 렌터카 시장에는 1등 회사인 허츠(Hertz)와 2등 회사인 에이비스(Avis)가 있습니다. 그런데 에이비스의 슬로건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2등이 더 잘 한다(No.2 works better)'는 겁니다.

미국은 1등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라고 하면 항상 3~5개국이 함께 경쟁하면서 견제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미국과 같이 한 국가가 다른 모든 국가를 압도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미국의 단일 체제가 다극 체제로 이동해가는 현 정세는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거대한 권력 투쟁에 의해 순리대로 그 지위가 이동하는 것이죠. 이는 미국에도 결코 끔찍한 일이 아닙니다. 미국은 아시아와 중국으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것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국은 어차피 국제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국 정부는 외부 문제에 초점을 맞출 상황이 아닙니다. 북한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골치 아픈 나라입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죠. 국제사회가 북한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다극 외교를 추진하면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해가야 합니다. 북한 문제는 절대 혼자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6자 회담 이상의 다자 회담을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한국의 미래는 북한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고 슬기롭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美 패권은 죽지 않는다

"中 빈곤·불평등 여전… 美 대체하긴 역부족"


"美, 경제·군사 등 모든 분야서 압도적… 힘은 약해졌지만 영향력은 지속될 것"
"中도 美중심의 시스템 속에서 발전해 수퍼파워 되기까진 오랜 시간 걸릴 듯"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존 아이켄베리(Ikenberry)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학자로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2000년대 중반 '악의 축'으로 압축되는 부시 행정부의 대(對)이슬람 강경 노선에 대해 "세계 평화는 고사하고 미국의 고립만 자초하는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해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 시절 정책자문팀에 핵심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경희대 강의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 이로 인한 동북아시아 정세의 변화에 대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빠른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중국의 부상은 예상보다 느릴 것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부상이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기존 세계 정치·경제의 질서를 흔들어 놓는 것 같은데요.

"우리는 권력이 변화하는 시기에 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국의 부상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권력 변화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죠. 유럽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상대적인 침체가 동아시아에 다른 힘의 등장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미국 중심의 일극적 세계에서 다극적·다자적 세계로의 회귀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대, 중국의 시대로 단정지을 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역할이 모두 중대해진다는 의미죠. 제 생각도 같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가 경제적·군사적 강국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의 부상을 눈여겨봐야 하겠지만 그 과정은 예상보다 느릴 것입니다. 미국의 지위가 약화되고 새로운 권력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특유의 패권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패권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될 겁니다. 그리고 중국은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모색해야 할 겁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은 더욱 확연해 보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세력 약화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고, 중국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해 왔습니다. 그게 더 재미있거든요. 하지만 미국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미국은 여전히 특유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경제·군사·기술면에서 선두에 있지요.

미국이 유지하고 있는 국제 체제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특이합니다. 미국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나라보다도 많은 동맹국을 갖고 있습니다. 안보를 위한 동맹관계는 미국의 경제적 힘과 맞물려 미국의 달러화가 세계 중심 통화가 되는 데 확실한 바탕이 되었습니다. 동맹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네트워크도 큰 힘이 됩니다. 미국 사회는 이민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유럽·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반면 중국은 미국에 대응할 만한 강력한 국제관계가 없습니다. 이번엔 경제를 볼까요? 현재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아직 선진국의 20%에 불과한 국가입니다. 중국의 노령화 인구는 미래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경제 성장은 저임금 근로자들이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만드는 평이한 성장입니다. 중국은 앞으로 세계적 수준의 기술과 대학을 어떻게 보유할 것인가가 문제이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겁니다. 물론 중국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 큰 발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분야를 성장시키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싱가포르·인도 같은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미국의 국력이 쉽게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성장할수록 주변국은 미국이 더 필요해진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중국에 대해 또 하나의 의견이 있다"면서 말을 이어갔다.

"중국이 성장할수록 주변국들, 즉 한국·일본·호주 등이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중국과 정치·경제적으로 가까워질수록 중국을 견제할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성장이 결코 미국을 아시아에서 몰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죠.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아시아에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해 중국으로 하여금 주변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도록 할 겁니다.

한 가지 분명히 밝혀야 할 점은 중국의 경제 성장이 결코 내수경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를 주변국들은 중국에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중국은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수혜국입니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글로벌 경제체제에 편입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글로벌 경제체제는 미국을 비롯해 독일과 일본 등 여러 국가가 함께 형성한 것입니다. WTO나 유엔 안보리에서의 역할을 볼 때 중국은 지금의 국제체제에서 이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국은 지금 국제 질서의 수혜자이지 피해자가 아닙니다. 중국은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 게임을 해야 하며 우리도 그 게임에 응해야 합니다."

―중국이 내부적인 문제로 분열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중국 같은 대국(大國)이 붕괴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중국의 경제 성장은 앞으로 둔화될 것이고,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중국이 성숙한 현대 산업사회로 바뀌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아직 중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받기에는 불안정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내수경제를 키우고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붕괴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세계적 강국 사이에서 변화를 겪어 왔고 그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앞으로 다시금 강대국들 간의 각축전 속에 뛰어들게 됐는데, 한국의 전략은 과연 어떠해야 하나요.

"이 시기에는 모두가 혼란스럽습니다.(웃음) 하지만 최근 천안함사건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제 느낌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사건 중에 한국 정부가 취한 행동은 침착하고도 정치력 있는 전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적 지원을 유엔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사건 분석을 위한 조사단을 구성하고 정보를 수집하는가 하면 도발적이지 않은 수준에서도 확고한 자세를 보여줬습니다.

보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한국은 이제 중견국가(regional middle power)가 아니라 중요한 전 지구적 행위자(global actor)로서 비안보 분야를 포함하여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11월 서울에서 G20 정상회담 개최를 이루어낸 성과가 좋은 예입니다." 


"美의 시대, 최소 100년은 더 간다"

조지 프리드먼 美안보 전략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많은 이들이 미국의 미래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안보 전략가인 조지 프리드먼(Friedman)의 주장은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기까지 한다. 그는 ≪100년 후(The Next 100 years)≫에서 앞으로 적어도 100년은 미국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1999년 코소보 전쟁의 발발을 미리 예측하는 등 그가 국제 문제에 대한 높은 적중률(자체 평가에 따르면 80% 수준)을 보여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그의 논리는 단순명쾌하다. 무엇보다 미국과 다른 국가들 간의 국력 차가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경제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각각 2.8배와 2.9배 더 크다. 만약 미국 경제가 매년 2.5%씩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중국은 8.25% 이상씩 성장해야만 그 격차를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지금의 고성장세를 수십년간 유지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결국 중국 경제가 미국만큼 커지려면 여러 세대가 흘러야 한다.

군사력은 더 압도적이다. 미국의 군비 지출은 전 세계 군비의 절반을 넘는다. 미국은 1945년 이래 대서양과 태평양을 비롯한 전 세계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해군력은 나머지 전 세계의 그것을 합친 것보다 크다.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이슬람도,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을 견제할 만한 세력이 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슬람 세계는 분열됐고, 러시아는 고질적 국내 문제와 빈약한 인프라로 인해 장기적 생존이 불투명하다"고 보고 있다. 그는 미국의 가장 큰 경쟁자로 부각되고 있는 중국 역시 "종이호랑이"라며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경제 성장속도가 느려지면서 빈부 격차와 같은 내부 문제로 중앙정부의 힘이 약화되고, 2020년께 나라가 여럿으로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중국은 "스테로이드를 투입한 일본"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경유착에 의해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돼 부실 채권이 급속히 늘어났다. 또한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