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녀’ 오은선, 남성들만의 영역에 오르다
정상까지 단 10m, 안나푸르나는 쉽게 문을 열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던 오은선 대장이 작심한 듯 정상을 향해 기어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태극기를 펼쳐들었다. 그곳에 오른 최초의 여성, 자랑스러운 한국의 딸이었다.
'철녀' 오은선 대장은 무산소 등정을 고집해온 산악인이다. 14좌 중 에베레스트와 K2 등 2개 봉우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산소로 올랐다.
'철녀' 오은선 대장은 무산소 등정을 고집해온 산악인이다. 14좌 중 에베레스트와 K2 등 2개 봉우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산소로 올랐다.
국내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엄홍길씨는 "오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세계 등반사에 영원히 기록될 큰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오 대장의 아버지 수만씨(69)와 어머니 최순내씨(64)는 서울 중랑구 면목7동 자택에서 TV를 통해 딸의 등정 상황을 지켜보다 정상에 오르자 서로 껴안고 기쁨을 나눴다.
히말라야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성의 영역이었다. 한국 여성 산악인들이 주축이 된 등반대가 히말라야를 처음 찾은 건 93년. 여성으로만 구성된 원정대가 에베레스트로 향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지현옥, 최오순, 김순주씨 등 3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 14좌 등정 도전의 고비마다 사고를 당하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현옥씨는 99년 4월 안나푸르나 정상을 등정하고 하산 중 실종됐다. 평소 지현옥씨를 존경해왔던 오 대장은 이번 산행에 앞서서도 안나푸르나에 있는 지씨의 추모비를 찾았다.
오 대장은 또 작년 7월 낭가파르바트에서 숨진 고미영 대장(당시 42세)의 사진을 품에 안고 가서 안나푸르나 정상에 묻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 대장의 위업이 가능했다.
오 대장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란 핸디캡도 극복했다. 금수강산이지만 2000m 넘는 산이 없는 나라에서 여성으로서 14좌 최초 등정이라는 쾌거를 이룬 셈이다.
오 대장은 이번에도 불굴의 의지를 어김없이 보여줬다. 예전 에베레스트에서는 탈진해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시샤팡마에서는 굴러온 얼음 덩어리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 안나푸르나에서도 악천후로 일정이 연기되는 등 악전고투했다.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오 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산악계에서는 '무산소 등정'과 함께 오 대장의 '속공 등반'도 높이 사고 있다. 속공 등반이란 최소한의 짐으로 캠프를 구축한 뒤 현지에서 캠프 1, 2, 3을 오가면서 적응훈련을 하다 이른 시간 내에 정상에 오르는 등반법이다. 등반대 수를 줄일 수 있어 경비부담이 적고, 빨리 오를 수 있다. 대원과 셰르파가 장비를 차근차근 캠프로 옮기며 캠프 4에서 정상에 도전하는 극지법에 비해 위험부담이 크다.
현재 세계 산악계의 흐름은 알피니즘. 알피니즘이란 탐험의 의미를 되살려 무산소로, 남이 닦아놓은 길을 가지 않고 신루트로 가는 등반법을 뜻하는데, 오 대장은 '알피니즘 속공 등반'을 고집해왔고, 이번 등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이번 완등으로 지난해 칸첸중가 등정 성공 여부 논란이 재점화됐다. 영국 BBC는 23일 히말라야 고봉 등정 공인과 관련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미국인 엘리자베스 하울리가 칸체중가 등정을 '논란인 상태(disputed)'로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하울리는 오 대장과 최초의 여성 14좌 완등 기록을 다투는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으로부터 견해를 들은 뒤 이같이 기록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등정은 TV생중계가 돼 애초에 논란의 여지를 없앴다.
< 최병준 기자 bj@kyunghyang.com >
히말라야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성의 영역이었다. 한국 여성 산악인들이 주축이 된 등반대가 히말라야를 처음 찾은 건 93년. 여성으로만 구성된 원정대가 에베레스트로 향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지만 지현옥, 최오순, 김순주씨 등 3명이 등정에 성공했다.
이후 14좌 등정 도전의 고비마다 사고를 당하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현옥씨는 99년 4월 안나푸르나 정상을 등정하고 하산 중 실종됐다. 평소 지현옥씨를 존경해왔던 오 대장은 이번 산행에 앞서서도 안나푸르나에 있는 지씨의 추모비를 찾았다.
오 대장은 또 작년 7월 낭가파르바트에서 숨진 고미영 대장(당시 42세)의 사진을 품에 안고 가서 안나푸르나 정상에 묻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 대장의 위업이 가능했다.
오 대장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이란 핸디캡도 극복했다. 금수강산이지만 2000m 넘는 산이 없는 나라에서 여성으로서 14좌 최초 등정이라는 쾌거를 이룬 셈이다.
오 대장은 이번에도 불굴의 의지를 어김없이 보여줬다. 예전 에베레스트에서는 탈진해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시샤팡마에서는 굴러온 얼음 덩어리에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다. 안나푸르나에서도 악천후로 일정이 연기되는 등 악전고투했다.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오 대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산악계에서는 '무산소 등정'과 함께 오 대장의 '속공 등반'도 높이 사고 있다. 속공 등반이란 최소한의 짐으로 캠프를 구축한 뒤 현지에서 캠프 1, 2, 3을 오가면서 적응훈련을 하다 이른 시간 내에 정상에 오르는 등반법이다. 등반대 수를 줄일 수 있어 경비부담이 적고, 빨리 오를 수 있다. 대원과 셰르파가 장비를 차근차근 캠프로 옮기며 캠프 4에서 정상에 도전하는 극지법에 비해 위험부담이 크다.
현재 세계 산악계의 흐름은 알피니즘. 알피니즘이란 탐험의 의미를 되살려 무산소로, 남이 닦아놓은 길을 가지 않고 신루트로 가는 등반법을 뜻하는데, 오 대장은 '알피니즘 속공 등반'을 고집해왔고, 이번 등정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이번 완등으로 지난해 칸첸중가 등정 성공 여부 논란이 재점화됐다. 영국 BBC는 23일 히말라야 고봉 등정 공인과 관련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미국인 엘리자베스 하울리가 칸체중가 등정을 '논란인 상태(disputed)'로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하울리는 오 대장과 최초의 여성 14좌 완등 기록을 다투는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으로부터 견해를 들은 뒤 이같이 기록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등정은 TV생중계가 돼 애초에 논란의 여지를 없앴다.
< 최병준 기자 bj@kyunghyang.com >
히말라야 14좌 완등 20명 중 대한민국이 4명, 고산 등반 세계 최강
오은선 대장이 8000m 이상 봉우리 14개를 모두 등정한 최초의 여성이 됐다. 오 대장의 등정은 개인 신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됐다. 유럽 선진국이 주도했던 고산 등반의 세계사를 해발 2000m가 넘는 산 하나 없는 나라에서 다시 쓴 것이다.
◆대한민국은 산악 최강국=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사람은 오 대장을 포함해 20명밖에 없다. 국적으로 따지면 11개 국가다. 대부분이 이탈리아·폴란드·스페인 등 유럽의 전통 강호고, 아시아에선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만이 14좌 완등국에 올라 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4좌 완등 기록에 더해 2005년 박영석 대장이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2007년엔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16좌를 처음으로 완등했다. 그리고 오은선 대장이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 기록까지 세우며 산악 최강국의 명성을 이어간 것이다. ◆국가대표 등반=남한 최고봉은 1950m의 한라산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고산 등반 세계 최강국이다. 이에 대해 엄홍길 대장은 “우리나라엔 고산 등반 자체가 없다”며 “그래서 열망이 더 컸고, 한국인 특유의 승부 근성을 자극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고산 등반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됐다. 이른바 국가대표를 선발해 육성·지원한 것이다. 대한산악연맹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해외 고산 원정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고(故) 고상돈 대장의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1977년)이다.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진행된 K2 원정대는 엄청난 규모로 화제가 됐다. 산악인 200여 명을 대상으로 4년이나 훈련을 시켜 최종 19명의 대표선수를 선발했다.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은 “한국 원정대는 개인의 명예보다는 국위 선양을 먼저 생각해 왔다”며 “한국의 알피니스트는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고 산을 오른다”고 강조했다. ◆활발한 시장과 탄탄한 인프라=산림청 산하 한국등산지원센터가 2008년 실시한 등산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을 찾는 사람은 1560만 명, 두 달에 한 번 이상 산을 찾는 사람은 1886만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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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스피드 놀라워” |
오이아르사발이 히말라야 고봉(高峰)을 모두 오른 뒤 찾은 곳은 다시 히말라야였다. 세계 최초로 14좌 재등에 도전하는 그에게 히말라야는 인생이다. 안나푸르나는 그의 두 번째 14좌 완등의 10번째 산이다. 베이스캠프(4200m)에서 만난 그는 “안나푸르나는 내가 첫 14좌 완등을 이룰 때 마지막으로 올랐던 산이다.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고 했다. 오은선에 대해선 “칸첸중가에서 처음 만났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매우 강한 사람”이라며 “그의 스피드는 놀라운 수준”이라고 칭찬했다. 오이아르사발은 지난해까지 오은선의 경쟁자 에두르네 파사반의 등반 파트너였다. 그는 파사반과의 결별 이유에 대해 “지나치게 언론 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맘에 안 들었다”고 설명했다. 오은선을 만나면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만 돌아서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는 둘의 경쟁에 대해선 높게 평가했다. 그는 “도전은 칭송하면서 경쟁을 비난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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