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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강국' 코리아의 발원지 군자리골프장

惟石정순삼 2009. 10. 10. 01:26

 

양용은이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는 드라마를 연출한 한국 골프의 여명기는 서울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었던 군자리 골프코스에서 출발했다. 군자리 골프장은 일본강점기에 지어졌으나, 영친왕이 부지와 건설비를 후원했고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정규 18홀로 복원돼, 제1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 등 각종 국내 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군자리' 골프코스 이름은 당시 행정구역에서 유래했다. 1927년 골프 애호가들이 조선에도 18홀 정규 코스를 지닌 골프장 짓기를 간청하자, 영친왕은 경기도 고양시 뚝도면 군자리에 있던 땅 30만평을 내놓았다. 구한말(舊韓末) 왕실의 말과 양을 사육하던 곳이다. 또 건설비로 2만원을 내놓고 3년간 보조금으로 매년 5000원씩을 하사했다. 영친왕도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1929년 18홀 코스(파 69·6160야드)로 완공된 군자리 골프장은 이듬해 경성골프구락부가 직접 운영하면서 조선 골프의 중심지가 됐다. 2차대전으로 폐장했던 군자리 골프장은 1950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복원된다. "미군들이 한국에 골프장이 없어 휴일이면 오키나와에서 골프를 즐긴다"는 얘기를 들은 이 대통령이 '국가안보'를 위해서 결심했다고 한다.

 
                                      군자리 골프장.

한국 프로골퍼 1호인 연덕춘의 설계로 복원된 군자리 골프코스는, 한 달 만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됐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 군자리 골프코스의 복구를 지시했고, 18홀 6750야드의 정규 골프장으로 복원됐다. 운영은 서울컨트리클럽이 맡았다. 18년간 한국 골프의 맥을 이어오던 군자리 골프코스는 1972년 10월 "어린이들이 뛰어놀 곳이 필요하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어린이대공원에 자리를 넘겨 주었다.

광복 전 최초의 골프장은 1921년 개장한 효창원 골프장으로 당시 철도국 산하 조선호텔 이용객을 위한 부속시설이었다. 2300야드 9홀 규모였다. 이후 청량리 골프코스(1924년)가 건설됐고, 대구 평양 부산 원산에 골프 코스가 생겼다. 또 1887년 원산항 근처에 상주하던 영국 세관원들이 6홀짜리 간이코스를 지어 즐겼다는 일본 기록도 있다.

1960년대 경제 개발기에 국내 첫 민간자본으로 지어진 한양컨트리클럽이 1964년 문을 열었고, 1965년엔 제주컨트리클럽, 1966년 태릉과 뉴코리아, 1967년 관악, 1968년 안양컨트리클럽이 속속 개장했다. 1980년대 40여곳이던 골프장은, 지난해 310개(회원제 182곳, 퍼블릭 128곳)로 늘었다. 지난해 연인원 2400만명이 골프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