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냉소적 유산
그건 즉흥적 제안이었다 "재미 좀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李 대통령은 진지한 분이다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라
중요한 사회적 논점에 관해선 사람들의 의견이 엇갈리게 마련이다. 바로 그 점이 해결책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 세종시에 관해선 여론이 그렇게 엇갈리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세종시의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미 상당히 진척된 대규모 사업인데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사정은 무얼까. 세종시가 냉소적 계산에서 태어났고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계산이 놓은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세종시는 200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수도의 충청도 이전'이라는 공약을 내놓으면서 생겨났다. 그의 공약은 충청도의 표를 얻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즉흥적 제안이었고 실제적 바탕이 전혀 없었다. 그의 계산은 들어맞아서, 그는 선거에서 이겼고 스스로 "재미 좀 보았다"고 인정했다. 그의 공약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판정되었지만, 그는 정부 부처의 일부를 충청도로 옮기는 편법을 추진했고, 마침내 17개 부처 가운데 9개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처럼 정부 부처를 나누는 것은 수도를 아예 옮기는 방안보다 오히려 못하다. 한곳에 모여 있어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기적 조직을 일부러 쪼개어 다른 지역에 두는 일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지리는 너무 근본적 조건이어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통신과 교통의 발전 덕분에 지리적 거리가 강요하는 제약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지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공장이든, 연구소든, 상점이든 한군데 모여서 집단(cluster)을 이루는 현상이 그 점을 잘 말해준다. 반면에 정부 부처를 지방에 두어서 나오는 혜택은 미미하다.
처음부터 수도 이전을 반대해온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지적대로, 정부 청사가 들어선 과천시의 역사는 세종시의 앞날을 보여준다. 현재 세종로에는 10개 부처가 그리고 과천에는 7개 부처가 있다. 세종로와 과천은 그리 멀지 않지만, 그 작은 거리는 큰 비용과 비효율을 강요한다. 그런 증거들 가운데 하나는 과천 부처마다 세종로 부근에 따로 둔 사무실이다. 과천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먼 세종시로 옮겨갔을 경우, 지리적 거리가 강요할 비용은 당연히 클 것이다. 반면에 정부 청사의 이전에 따른 경제적 혜택은 나오지 않았다. 청사의 공무원들은 서울 도심에서 살고 소비해서, 과천엔 상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김 지사는 "원안대로 갈 경우 (…)세종시는 평일 밤이나 주말만 되면 유령 도시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세종시를 계획대로 세우자는 주장은 대체로 중단에 따른 부작용들을 근거로 삼는다. 이미 투자된 자원이 아깝고 법적 문제가 논란을 부르리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비용은 일회적이어서, 세종시가 강요할 영구적 비용과는 성격과 규모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런 경우엔 이미 이루어진 투자가 아깝다고 계속 헛되게 투자하는 '콩코드 오류(Concord fallacy)'를 경계해야 한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세종시 사업은 비용과 혜택에서 너무 차이가 나서,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업은 계획대로 나아가고 누구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왜 그런가?
세종시의 건설에서 나올 이익은 인근의 소수에게 집중되고 비용은 나머지 국민들에게 널리 분산된다. 따라서 이익을 볼 소수는 세종시에 반대하는 정치가들엔 무조건 반대할 터이다. 그러나 비용은 널리 분산되었으므로, 세종시에 반대하는 정치가들을 그것 때문에 지지할 국민들은 얼마 되지 않을 터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종시에 반대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정치가들에겐 '정치적 자살'에 가깝다. 작은 이익을 위해 뭉친 소수가 큰 비용을 질 다수를 정치적으로 누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노 대통령의 냉소적 계산이었다.
우리가 이런 덫에서 벗어나려면,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그만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초연할 수 있고, 자연히 세종시가 두고두고 우리 사회에 강요할 비용에 대해 고뇌할 만큼 긴 시평(time horizon)을 지닐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만이 세종시의 원안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다.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금 정부가 고려하는 대안들은 상당히 현실적이라고 평가된다.
이 대통령은 진지한 사람이다. 그에겐 냉소적인 면이 없다. 진지함이야 늘 좋은 성품이지만, 이번 경우엔 특히 큰 자산이니, 냉소엔 진지함으로 대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현실적 자료들을 내놓고 진지하게 국민들을 설득한다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냉소적으로 남긴 부정적 유산 하나를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상상식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예인 광풍과 백조의 고통 (0) | 2009.09.30 |
---|---|
탄생 10돌 맞는 비아그라 오해와 진실 10가지 (0) | 2009.09.24 |
정지민, 'PD수첩 왜곡 보도' 책 출간…"나는 피해자…너무 어이없어 책 써" (0) | 2009.09.16 |
갑자기 느려진 PC… 무엇이 문제일까? (0) | 2009.09.11 |
정예부대 공격말고… 포위된 군대는 길 터줘라 (0) | 2009.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