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과의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5차전에서 패한 김정훈 북한 감독의 불만이 화제다.
그는 어제 숙소에서 식사를 한 뒤 3명의 선수가 배탈이 났다면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런 음모론에 대해 어제 정대세의 골 논란과 관련 북한에 일부 동정의 눈길을 보내던 네티즌들조차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북한 음식에 약을 탄단 말인가.”
특히 북측의 호텔은 조총련에서 사전 답사까지 한 뒤 잡은 것이며 음식과 음료까지 북에서 공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국 국민들은 더구나 어이없어 하고 있다.
남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북에서 살아 본 기자는 김정훈 감독의 발언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됐다.
그 발언 접하는 순간 “저 감독이 참 머리 좋구나...역시 살 줄 아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살펴보자.
북한은 1일 오전에 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 리명국(평양시) 김명길(압록강) 등이 복통과 구토 증세를 보였다며 FIFA에 제3국에서의 경기를 요청했다.
즉 ‘정대세의 배탈이 남측 책임이고 현재 데려온 골키퍼 2명이 모두 아픈 상황이라 경기가 불가, 추후 제3국에서 경기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FIFA는 경기를 진행하는데 무리가 없다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은 복통을 호소한 정대세에 혈액 검사를 권유했지만 거부했다. 북한 선수단을 검진한 나영무 스포츠 의학 전문의는 “김명길, 리명국 골키퍼의 경우 안정된 상태로 장염 및 기타 증세로 보기 힘들다. 정대세는 촉진시 배에 뚜렷한 압통이 없었으며 타진시 장의 가스가 차 있는 소견을 보이지 않았다. 청진시 다소 장음이 항진돼 있었다. 결과적으로 세균성 장염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당연하다. 배탈 논란은 김 감독의 작품이다. 본인이 생각해냈는지(그랬다면 상당히 머리가 좋다), 아니면 윗선의 지시인지는 모르겠지만 경기를 질 때를 대비한 보험이다.
자기 스스로도 경기 연장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3국 개최지 변경은 더구나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제스처를 취해야 했을까.
옛날부터 북한에선 한국과의 경기를 지면 사실 선수나 감독들이 돌아가 무사치 못했다.
지금은 이게 상당히 완화됐지만 그래도 “적과의 전투”에서 패한 패장이고 패잔병으로 보는 시각은 여전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비해 배탈 논란을 만들어 냄으로써 김 감독은 핑계거리를 만들어냈다.
배탈논란은 사실 한국에 한 것 보다는 북한 지도자를 향해 한 변명이다.
자, 그가 하려던 진짜 속뜻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지도자 동지, 남조선의 나쁜 놈들이 우리 선수들의 음식에 뭘 뿌렸고 결과 선수들이 배탈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러니 좀 봐주십시오. 사실 최상의 컨디션이면 지지 않았겠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적들의 야비한 책동을 만천하에 당당하게 고발해 톡톡히 망신도 줬습니다. 또 공정성을 위해서는 다음번에는 서울에서 경기하지 말고 3국에서 해야 된다는 명분도 남겼습니다.”
김 감독은 평양 돌아가서도 경위서에서 배탈이 났다고 분명히 우겨댈 것이다.
여기에 덤으로 정대세의 골 논란 비디오를 갖고 가서 “적들의 주심까지 매수해서 우리가 이겼던 경기를 놓쳤습니다.”고 주장할 것이다.
결국 “경기에서 진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남조선 원수들의 교묘한 책동 때문이다. 날 용서해달라”는 메시지를 지도부에 보낸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살 수 있는지 본능으로 체득한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변명거리가 충분해서 김정훈 감독은 크게 처벌받지 않을 수 있겠다.
북한 지도부 입장에서 볼 때 “적진에서 골도 넣었는데 적에게 매수된 심판이 경기 결과를 돌려놨고 배탈까지 만났다고 하니 이건 정상참작이 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긴 해도 김 감독은 다음 번 이란이나 사우디 전은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면 영웅이고 과거 실수는 묻어질 수 있지만 결국 실패하면 노동당의 조사관들이 “남조선에서 배탈 만났다는 것도 거짓이지”하고 과거까지 꼼꼼히 캐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훈 감독이 화날 만하다. 자신의 신상에 그늘이 닥쳤는데 누가 불안하지 않을 수 있으며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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