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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상식이야기

용산 재개발과 전봇대 뽑기

惟石정순삼 2009. 2. 6. 09:32

용산 재개발과 전봇대 뽑기

"용산 참사는 속도전이 부른 禍…

이해 얽힌 재개발사업은 전봇대 뽑듯이마냥 밀어붙일 수 없어"

용산 재개발 참사로 온 사회가 시끄럽다. 철거민들이 공정한 수사를 요구하면서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청사 로비를 점거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참사를 야기한 원인을 둘러싸고 네 탓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이념 싸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네르바 구속 논란에 이어 용산 재개발 참사,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 등으로 가뜩이나 세계 경제 위기 속에 움츠러들고 있는 우리 사회는 춥고 암담한 미로에서 방향타마저 상실한 느낌이다.

용산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그야말로 말단지엽적인 문제다.

용산 참사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제2, 제3 참사를 막는 지혜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용산뿐만 아니라 왕십리 가재울 등 전국 1000여 곳에 이르는 뉴타운과 재개발 현장에서 언제든지 똑같거나 유사한 참사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경찰청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온 국민이 양편으로 갈라져 싸울 것인가. 참사의 근인을 규명하기 위해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참사 뿌리에 대해 살펴보자.

용산 참사 원인은 무엇보다도 '재개발 이익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다. 현행 제도는 토지 소유자와 개발에 참여한 건설업체가 개발이익을 독식하는 구조다. 주택 세입자는 과거 '딱지'로 불리던 입주권제도에서 시작해 공공임대주택 우선공급 등으로 보상제도가 나름대로 발전해왔으나 상가 세입자 보상책은 아직 턱없이 비현실적이다.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에 달하는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무시하는 영업손실 보상과 이주비 때문에 어느 사업지역에서든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시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으로 밀려나는 저소득 서민 삶을 배려하는 정책적인 대안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럽다. 국토해양부도 상가 세입자 우선임차권 부여, 휴업보상금 현실화, 조합 외부감사제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 아이들의 땅따먹기 놀이에도 공평한 룰과 규칙이 있듯이 이번엔 제대로 해야 한다.

또 다른 원인은 속도전이다. 어떤 사업이든지 '속도'가 중요하지만 막대한 개발자금이 투입되는 재개발사업에서 사업기간은 개발이익 크기를 좌우한다.

사업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건설업체와 조합(땅주인)은 노련하고 실력 있는 철거업체와 정비업체를 고용한다. 재개발사업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진행되는지 감독하고 이해당사자 간 싸움을 중재해야 하는 구청도 이런저런 이유(개발 실적, 세수 확대 혹은 건설업계와 조합 측 로비)로 속도에 얽매이게 된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구역지정에서 관리처분인가까지 평균 40개월 걸리는 인허가 과정이 용산4구역에서는 불과 25개월 만에 끝난 것은 해당 구청의 적극적인 행정지원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재개발사업은 이해관계가 상충되지 않는 '전봇대 뽑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불편을 참고 청계천 복원에 협조해주신 시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가능하게 했던 업적인 청계천 복원이 끝나고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밝힌 소감이다.

5.8㎞에 달하는 청계천 복원공사를 2년3개월 만에 완공했을 때, 당시 이 시장이 보여준 성과는 청계천 복원 '속도'보다는 사업 과정에서 보여준 갈등해결 능력이었다. 복원을 반대하던 20만명에 이르는 상인들을 수천 번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벌이면서 갈등을 조율하는 리더십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줬기 때문이다.

백척간두 위기에 처해 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빠른 속도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지만 모든 일을 전봇대 뽑듯이 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사회부 = 윤형식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