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골퍼들이 무섭다
한국인은 통이 큰 편이다. 통이 크다 보니 집도 자동차도 가전제품도 큰 것을 좋아한다. 음식을 차려도 푸짐하고 노는 것도 질펀하게 논다. 통이 작은 걸 표현할 때 ‘째째하다’거나 ‘밴댕이 속’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은 일단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는다.
이처럼 통이 크다 보니 골프장에서도 통 큰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첫 홀에서 화끈하게 OB를 내고 나더니 ‘저 스몰 하나 쓰겠습니다.’ 하는 사람을 보았다. 동반자들은 내막도 모른 채 ‘예, 좋습니다.’ 했다. 꼬치꼬치 캐물으면 통 작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스몰이 ‘스스로 멀리건을 주는 것’이라는 말은 그때 처음 알았다.
첫 홀에서 한 사람이 파를 하면 스코어 카드에는 네 명 모두 파를 적어 놓는다. 소위 ‘일파만파’룰을 적용한 것이다. ‘무파만파’도 있다. 파 한 사람이 없어도 그냥 모두 파로 적어 놓는 것이다. ‘피파’도 있다. 피 본 사람도 파로 적어 준다는 말이다.
어떤 통 큰 사람은 이 시간 현재 전국 골프장 어느 한 곳에서라도 파가 나오면 우리는 모두 파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뒤질세라 이 순간 지구촌 어디에선가 파 한 사람 한명이라도 있으면 우리 모두가 파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다.
얼마 전 친목회에서 1박2일로 지방 골프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다른 조에서 친 사람이 스코어 카드를 내 놓는데 이븐파를 기록한 것이었다. 평소 실력이 90타를 넘는 것을 알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동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그는 몇 번 친 공이든지 일단 그린에 공이 올라오면 버디 퍼트로 인정해 달라고 하더니 들어가면 버디고 안 들어가면 파라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스코어 카드에 모두 파를 기록해 놓았다는 것이다.
평소 기행에 가까운 엉뚱한 행동을 잘 하는 분이라 그냥 웃고 말았지만 정말 간만 큰 것이 아니라 창의력과 상상력까지 합쳐져서 나타난 일이다.
요즘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는 단순한 스킨스 게임은 싫증이 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조폭게임을 한다. 보기를 하면 직전 홀에서 따간 돈을 물어내고 더블보기를 하면 지금까지 따간 돈을 다 물어낸다. 게다가 버디를 한 사람은 지금까지 따 간 사람의 돈을 모두 빼앗아 간다. 이런 무지막지한 룰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면 그래서 조폭 아니냐고 태연히 대꾸한다.
흔히 한국인은 순발력과 열정이 뛰어난 민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류도 생겼고 골프도 잘 친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요즘 한국인들은 순발력과 열정뿐만 아니라 담력까지 커졌다.
일본 사람보다 더 큰 집에 살고 미국 사람보다 더 잘 먹고 산다. 물론 유럽사람보다 더 큰 차를 타고 다닌다.
‘대박’과 ‘올인’을 좋아하고 ‘묻지마 투자’도 서슴지 않는다. 해방 후 60년간 대체로 간 큰 사람이 돈도 벌고 출세도 하다 보니 어느새 모두 간이 커진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일본은 신문호외까지 발행하면서 충격에 빠졌고 미국과 서방 세계는 리스크 대응을 위해 분주했지만 우리나라만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담담한 편이었다. 간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가장 충격을 받아야 할 나라가 이처럼 담담한 태도를 보이자 서방측 기자들에게는 이것도 뉴스거리였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걸이나 개는 인기가 없다. 최소한 윷은 해야 하고 아니면 차라리 모나 도를 택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계속해서 간 큰 행동, 그리고 통 큰 짓만 계속해서는 사회가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정석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 작은 일에 감동 받고 작은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작은 성취에서도 보람을 느끼고 인정해 주는 것, 상식이 통하고 존중받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선진국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골프장에 오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중산층 이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골프장 문화까지 너무 통이 커진 것은 애석한 일이다. 골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룰을 지키고 좋은 매너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골퍼들은 골프 룰은 잘 모르는 채 내기 룰만 화끈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내기 금액도 만만치 않다.
조폭 게임하느라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 보다는 골프장 곳곳에 피어 있는 작은 야생화를 보면서 행복을 느끼고 풀벌레 한 마리를 보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는 18홀을 끝내고 탕 안에 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 있는 골퍼들이 많았다. 이 분들에게는 탕이 바로 라운드 후에 마음을 정리하는 19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탕 안에서는 재래시장보다 더 소란한 소음이 난무할 뿐이다.
요즘 나는 골프장에서 간이 작은 사람, 그리고 통이 작은 사람만 만나면 너무나 반갑고 존경스럽다.
<김은기>
'골프기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골프의 시작은 예절에서부터 (0) | 2009.02.02 |
---|---|
새해 골프는 3심과 함께 (0) | 2009.02.02 |
장타 - 지면 각도 5도로 임팩트 (0) | 2009.01.30 |
싱글로 가는 10가지 방법 - '장타' 치고 싶으면 몸부터 (0) | 2009.01.29 |
골프존, 스크린골프로 매출 1000억 클럽 가입 (0) | 2009.01.28 |